1997 - IMF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개같은 자식들!”


숙희는 한국은행에 입사해서 10년을 넘게 일하면서 은행 사람들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은행 사람들은 모두가 분노에 차 있었다. 평소에 옆사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모두들 전화기를 부술 듯이 집어던지고 머리를 쥐어짰다.


1997년 해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정부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렸고,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것처럼 되었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힘들지는 이제 살면서 알게 될 것’이라는 말로 임기를 시작했다.


얼마 뒤 숙희가 지수를 찾아왔다. 지수는 수진이를 낳고 서초동 집을 정리하고 쌍문동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신호가 있었어”

“그래? 그럼 이걸 너희들은 몇 달 전부터 알았다는 거야?”

“뭐 ~ 꼭 그런 건 아니고, 다들 이렇게 될까 봐 그동안 별 짓을 다해봤는데 결국 어쩔 수 없게 되니까 그냥 나자빠지더라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니?”

“글쎄다. 내가 뭘 알겠냐만은 하여튼 분명한 건 다 망했다는 거구 그걸 누가 집어 먹냐는 거지. 지금 미국 자본이 그걸 먹으려 하거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뭘 어째 우리 같은 서민들이 뭘 하겠어! 그냥 사는 거지 뭐~ 애라 모르겠다”


앉아 있던 숙희가 지수 앞에 벌러덩 누웠다. 숙희는 옆으로 누워 지수를 한 참 바라보다 눈을 몇 번 깜빡 기더니 어렵게 입을 떼었다.


“지수야!”

“응?”

“나 사실 이번에 은행에서 영국 대학으로 가는 1년짜리 연수 프로그램을 제안받았거든. 우리 같이 갈까?”

“뭔 소리야 뜬금없이 갑자기 영국 연수라니?”

“응 아마도 내가 비서실에 있다 보니까 이번 일로 말이 샐 수도 있고 10년 차도 넘겼으니 이참에 유배 보내듯이 서비스하는 것 같아”

“헐”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자 수진이는 부모님한테 잠시 맡기고 한 일 년만 다녀오자. 너도 이것저것 정리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숙희가 가고 나서 서희와 종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지수에게 말했다.


“다녀와라. 그래야 네가 산다. 가서 다 잊고 새 삶을 찾아와!”

“그래 엄마 말이 맞다. 우리가 아직은 충분히 수진이를 돌볼 수 있어. 지금 아니면 이런 기회 없다. 다 잊고 다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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