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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Sep 09. 2023

로펌 라이프에는 빡셈과 빡셈과 빡셈이 있다.

멋있는 빡셈과 보람 있는 빡셈과 숙성되어 피하고 싶은 빡셈이 있다.

2022년에 대형 로펌 태평양, 광장, 세종, 율촌 등의 1년 차 변호사 연봉이 '1억 5천만원'으로 인상되었다(관련 언론보도 링크). 세후로 1억원 쯤 되니, 매월 급여계좌에 1천만원 정도가 입금된다. 매일 30만원씩 꼬박 써도 월말에 100만원이 남을 정도로 큰 돈이다. 문제는 돈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저렇게 큰 급여를 받아보진 못했지만, 저녁에도 주말에도 출근해서 돈을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은 비슷했다.



로펌의 첫 출근을 앞두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와 ‘내가 버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교차하였다. 빡세고 빡세다는 것을 3번의 법무법인 인턴십을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야만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강남에서 일한다는 것, 멋진 옷을 입고, 어려운 일을 하며, 변호사답게 일한다는 것. 누구나 잘 알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고자 한다.

      

로펌과 로스쿨은 오전, 오후, 저녁을 꽉 채워 일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근시각이 10시 전후이고 퇴근시각도 23시 전후이다. 로스쿨에서 수험생활로 보냈던 생활패턴 '그대로' 로펌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전에 재판 갔다가, 오후에 의뢰인 미팅했다가, 저녁에 밀린 서면을 쓰면, 하루가 다 간다. 가끔은 퇴근길에는 치맥이 기다리고 있다.      


민법 공부하고 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형소법 공부하듯이, 민사사건 서면 쓰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형사사건 서면을 쓴다. 업무와 업무 사이에 약간의 짬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업무량이 많다. 주말에도 열람실에 가서 공부했듯이, 사무실에 출근해서 서면을 쓴다. 의외로 많은 변호사님들이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을 한다. 수험생활처럼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로펌에는 긴 방학이 없다. 연 2회 휴정기인 극성수기에 5일짜리 휴가를 간다. 뒤집어 보면 1년에 딱 “10일” 외에는 매일 일을 하는 것이다.


한편, 학업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개강과 학점으로 그 시점이 분명하다. 그런데 변호사 업무는 그렇지 않다. 준비서면 초안을 납품한 것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다. 그 초안은 수차례의 수정ㆍ보완 단계를 앞두고 있다. 초안을 납품하고 잠수를 타버리면 안 되는 이유이다.


로스쿨에서는 “법리”에 해박해야 하지만, 로펌에서는 “팩트”에 해박해야 한다. 특히 신입 변호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시간순으로 그리고 이해관계자 별로 “팩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팩트”는 당연한 팩트가 있고, 증거가 필요한 팩트가 있다. 증거를 찾고 검증하는 것도 “팩트”의 영역이다. 사실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다면, 법리 적용은 어렵지 않다(팀 전체가 같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로스쿨에서는 '법리'에 해박해야 하지만, 로펌에서는 '팩트'에 해박해야 한다.


로스쿨에서 시험이나 과제에서 실수를 하면 그것은 학점으로 직결된다. 즉 실수를 수습할 수 없다. 그런데 실무에서 '실수'는 대부분 수습 가능하다. 물론, 불변기간 도과와 같은 실수는 그럴 수 없지만, 일반적인 업무수행 과정(서면작성 및 검토 등)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대부분 수습이 가능하다. ‘실수’는 얼마나 빨리 수습하느냐가 관건이지, 실수 그 자체가 절대악이 아니다. 실수에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빨리 보고하고 잘 수습하면 된다.


한편, 로펌은 일반기업과도 다른 점이 꽤 있다. 연초에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배정된 예산으로 계획된 사업을 수행하는 일반기업과 달리, 고객 중심의 로펌은 구체적인 업무계획이 있을 수 없다. 고객에게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고객의 상황에 맞추어, 눈높이에 맞추어 일을 한다. 그래서 업무량의 편차가 심하다. 업무량은 ‘조금 바쁨’과 ‘미치도록 바쁨’ 사이를 오고 간다. 그래서 이번 주말 계획한 ‘캠핑’은 ‘타이핑’으로 바뀔 수 있다.      


로펌은 일반기업에 비해 조직 구조가 매우 유연하다. 

팀장 – 과장 – 실장 - 기관장 등 정형화된 수직적인 보고체계가 아니라, 사건마다 팀 구성이 다르고 이에 따라 보고체계도 달라진다. 나도 로펌에서 일할 때 10명이 넘는 파트너 변호사들과 각기 다른 사건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10명의 교수님이 부여한 각기 다른 과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다른 팀의 파트너 변호사가 함께 일하자고 연락을 주기도 한다. 반갑지 않다.


신입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함께 일하고 싶은 파트너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파트너 변호사가 생긴다. 일하고 싶은 파트너 쉽게 일할 변호사를 구한다. 일하기 싫은 파트너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먼저 5년 차 변호사에게 연락했다가, 3년 차에게도 연락했다가, 마지막으로 1년 차 신입 변호사에게도 연락을 한다. 신입 변호사에게 가장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맥락을 알고 있어야 한다. 현살적으로 모든 파트너 변호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 경험으로 로펌은 일반기업에 비해 복리후생과 탕비실이 훨씬 좋았다. 매년 수십만원의 비싼 건강검진을 제공하고, 탕비실의 음료수와 다과도 훌륭했다. 필기도구와 사무용품 지원도 인상적이었다. 재판을 갈 때 차량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7~8년 차에는 해외 유학이나 국내 연수를 전액 지원해주기도 한다. 유학(연수) 다녀오면 곧 파트너가 된다. 일반기업에 비해 승진(승급)도 빠른 편이다.      


로펌은 빡센만큼 성장도 빠르고 압축적이다. 주 40시간 일하는 변호사와 80시간 일하는 변호사의 성장은 같을 수 없다. 수많은 사건을 담당한 만큼,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쉽다. 박사학위 연구 주제도 구하기 쉽다. 일정 규모 이상의 로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사건도 있고, 전문 분야의 대가와 함께 일할 수 있기도 하다. 로펌 경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1. 로펌과 로스쿨은 오전, 오후, 저녁을 모두 일하면서 보낸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2. 로스쿨에서는 “법리”에 해박해야 하지만, 로펌에서는 “팩트”에 해박해야 한다.

3. 로펌은 빡센만큼 성장도 빠르고 압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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