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Jul 13. 2020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장들

우리가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2010



 그 어떤 대단한 것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간의 소중함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김연수 작가의 <우리가 보낸 순간> 은 아름다웠던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사랑, 또 사랑 같은 것들. 소소하지만 짙은 그 감정들을 문장 속에서 다시 느끼곤 했기에 만약 내가 문명을 등지고 사는 때가 오더라도 이 책만큼은 꼭 간직하리라 다짐했었다.



 <우리가 보낸 순간>의 제목 그대로 '우리'란, '우리'만 알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사적의 의미를 지닌다. 어쩌다 나는 그토록 많은 순간의 기억들을 추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 마음상자 속에 가득 담겨있는 조각들은 각자 고유한 빛을 내며 지금의 나를 울리고 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아름다운 오늘 하루를 살게 하는 것이다. 어쩌다 내가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 흔적들을 지난 내 연인들과 인연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도 나의 아름다운 한 면모를 간직하고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신형철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라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문장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 속에도, 버스 창문 밖에 스쳐 지나가는 간판 위에도, 나를 떠올리며 적혔을 편지글에도, 학생들의 에세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문장들은 늘 발견되었고 내게 다시 한번 쓰였다. 나에겐 그 말들이 쓴다, 라는 표현보다 그 말들이 내게로부터 쓰였다, 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말들이 어느 날 내게 불현듯 왔고, 나는 그 덕분에 숨 쉴 수 있었으니까.



 아름다운 것은 상대성만을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 기준에서 절대적인 것은 자연이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전쟁도 미움도 결국은 자연 앞에서 무수히 으스러진다. 광활한 바다 위 지는 고운 노을빛, 숲 속 빽빽이 서있는 소나무들의 말소리, 풍경을 스치고 가는 바람 소리 등..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유일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자연이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그 지점 어딘가에서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며 서있을 수밖에.



    자괴감이 들어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토닥이며 말한다. 또다시 불안해질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 스스로 이러한 감정들이 다시 찾아오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감정의 홍수가 나를 덮치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가장 큰 이유로는 이 시간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서. 잘하고 또 잘하고 싶은데,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고뇌가 겹쳐 한데 엉클어져 엉망으로 나를 괴롭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얻는 고찰들이 일상의 원동력이 될 때가 많지만, 잔잔한 파도 같은 무의미한 자극에도 무뎌질 만큼 자괴감에 익숙해지는 이런 날이면 문득, 모두 포기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곳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잠깐 충족시켜주는 것일 뿐, 내가 이끌어갈 운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더듬더듬 책을 향해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주었던 문장들을 찾는다.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희망을 품고 있는 빛나는 문장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기어간다. 그런 문장들이 이끌어 올려주는 나의 가벼운 좌절감은 먹에 담긴 붓 머리처럼 서서히 향을 품고, 나의 포근한 배갯잎이 되어주기도 하고, 더운 날엔 시원한 바람이 되어 뒷덜미를 간지럽히기도 한다. 한참동안을 그 문장들 틈에 조용히 그리고 깊이 빠져있다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삶의 고단함에 찌든 향에, 때론 사랑이 남기는 먹먹함에, 이별이 주는 자유로움에, 애도가 선사하는 품위에, 연대에 건네는 마음에... 우리는 몸부림치며 살아내는 거니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우리는 그렇게 또, 아름다운 글을 단단히 붙들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니까.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장들을 찾아서, 오늘 하루 또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 (對話, dialogue)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