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할거야, 난 성공할 남자니까.
“자 오늘도 미라클 모닝 시작합니다. 회원님들 준비 되셨나요?”
“네 출석합니다.”
“네 출석합니다.”
“굿모닝~~~”
새벽 5시에 일어나 눈꺼풀이 짬짬했다. 그래도 미라클 모닝 회원분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기지개를 폈다. 핸드폰을 세워 카메라에 책상이 보이게 세팅했다.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 취업과 동시에 시작했기에 거의 3개월 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일어나는 건 힘이 들었다.
“initiative, disruptive, elaborate…”
오늘 외워야 할 영어단어를 빼곡히 적어두었다. 차라리 수학 문제를 푸는 게 더 쉬울 것 같은데 항상 내 컴플렉스는 영어였다. 단어 외우는 건 재미가 없었다. 외워도 늘 까먹었고 막상 영어로 대화할라 치면 기본적인 수준만 넘어서도 버벅거렸다. 옆 자리 파인애플 대리는 외국인 임원과도 농담따먹기 하던데. 난 언제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나.
“수고하셨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네 회장님 좋은 하루~”
“오늘도 화이팅 하세요들!”
미라클 모닝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를 껐다. 우렁차게 한 번 더 기지개를 폈다. 어둑했던 창 밖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출근 전에 헬스장에 들르려면 서둘러야 했다.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넣은 나이키 가방을 어깨에 맸다. 캡 모자를 쓰고 현관에 나섰다.
“라임씨, 이 보고서 말이야. 이따가 나랑 리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언제가 괜찮으세요?”
“내가 10시에 회의가 있으니 11시에 볼까.”
“네 그러시죠, 11시에 회의실 예약해 놓겠습니다.”
“그래. 잠깐만 얘기하자고.”
“네, 그런데 부장님.”
“어, 라임씨 왜?”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물어봤다.
“12시 점심시간에 제가 운동을 갔다오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 합니다.”
“…어?”
이럴 땐 넉살맞아야 해. 바보 같이 해맑게 웃었다.
“제가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허리 운동을 매일 하고 있거든요. 엊그제 무거운 걸 들다가…”
“아 알았어 알았어. 리뷰 빨리 하고 점심시간에 운동 가겠다는 거지?”
빨간펜 부장이 약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라임씨 점심시간인데 당연히 보장해 줘야지. 아무튼 이따가 봐.”
“넵!!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고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옆 자리 파인애플 대리가 웃음을 꾹 참고 입을 씰룩이고 있었다.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에서 나는 일종의 ‘빌런’이었다. 점심시간은 칼같이 지켰고 야근은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면전에서 험한 소리도 들었다.
“쯔쯔, 요즘 세대들은 다 그런가?”
“손해를 절대 안 보려고 하면 안 돼. 라임씨.”
하지만 초반 몇 개월이 지나자 ’라임이는 원래 그런 애‘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퇴근 할 때 뒤통수에 대고 ’요즘 애들은 야근 절대 안하려고 하잖아~‘라고 말을 듣는 일도 없어졌다.
부끄럽고 불편한 건 잠깐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내가 필요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원이니까.
시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빨간펜 부장과 파인애플 대리가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했다. 사원증을 찍고 문 밖으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슈카월드 유튜브를 틀었다. 동시에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화폐전쟁>
미라클 모닝 회원 중 한 분이 추천해 준 책이었다. 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이론 외에 실전, 그리고 국제 정세를 다룬 책이라 꽤 재미있게 잘 읽혔다. 책은 전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화폐의 역할에 대해… 가끔씩 줄도 긋고 마음에 드는 부분은 메모도 했다.
”엄마, 나 다녀왔어요.“
”우리 라임이 왔어? 저녁은 안 먹었지?“
”응, 나 배고파.“
”갈치 구워놨어. 손 씻고 식탁에 앉아.“
부모님 덕에 나는 부모님과 같은 집에 살며 내 월급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다. 취업한 직후 호기롭게 ’생활비 좀 보탤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꾹 참았다.
두 분은 다행히 나에게 금전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성수동 지역주택조합이 크게 문제되어 집안이 들썩들썩했을 때 조차 부모님은 나에게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조합이 건설사와 분쟁이 생겼고 파국으로 치달았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중간에 어찌 어찌 빠져나오신 듯 했다. 손실이 컸지만 두 분은 꽤 의연했다.
“IMF도 견뎠는데 뭐~”
위기를 같이 이겨낸 부부의 끈끈한 동지애였다.
”엄마 갈치 완전 맛있네, 어디서 샀어?“
가끔씩 고마운 마음에 아들로서 애교를 부리며 립서비스를 하곤 했다. 딱 요 정도가 내 애교의 최대치이긴 했지만.
“미라클모닝회원 여러분,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생산적인 하루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네 방장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네 방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꽉 차있었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운동도 목표치만큼 채웠다. 영어 단어도 잘 외웠고 화폐전쟁도 목표한 진도보다 훨씬 많이 읽었다. 미라클 모닝회 덕분이야.
그런데..
단톡방에서 하루 마감 인사를 타이핑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문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미라클 모닝 회장이었다.
뭐지? 왠 장문의 메시지?
“그런데 미라클 모닝 회원 여러분, 공유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은, 이렇게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고, 어차피 알려질 거 미라클 모닝 회원 분들에게는 제가 직접 알려드리는 것이…”
아 뭐야, 잘렸잖아. 앞에 내용이 이렇게 길어.
전체 메시지 보기를 눌렀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 회원 ‘부자여우91’님과 제가 사귀게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뭐어어??
“저번 오프라인 모임에서 워낙 인상이 좋으셨고, 많은 가치관이 참 잘 맞았고…”
아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그러나 미라클 모닝 운영에는 어떠한 영향이나 변화도 없음을…”
……
회장이 자꾸 오프라인 모임을 추진하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특정 여자 회원에게 유독 친절한 것이 눈에 보였지만, 나야 미라클 모닝만 잘 유지되면 되니까.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단톡방에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두 분이 사귀시는 데 어떻게 변화가 없을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불편하시지 않을까요.”
......
단톡방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불편하다는 말은 뺄 걸 그랬나.
방장이 뭔가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었다.
“전혀 영향 없게 운영 할겁니다. 그런데 ‘부자워너비424’님, 전에부터 좀 느꼈는데 젊은 분이 너무 돈 얘기만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저희가 자기계발로 모인 것이긴 하지만 좀 뾰족하신 것 같습니다.”
뭐?? 무어어어???
“저희도 노력을 많이 할 테지만요, 아무래도 많이 불편하실 것 같으면 다른 모임을 찾으시는 것도 서로를 위해 좋지 않을까 하네요.”
머리에서 씩씩 김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방장과 맞서서 화를 내고 싸우는 건 좀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래서…
그냥 조용히 단톡방을 나왔다.
모든 건 다시 제자리에 그대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래, 맘에 안들면 그냥 나가고 새 모임 찾으면 되지.
이런 관계가 나랑 잘 맞아.
나에게는 이런 공동체가 잘 안 맞는 것일지도 몰라.
난 아직 갈길이 많다구.
겨우 이런 미라클 모닝회 하나 때문에 일희일비 할 수는 없어.
그 방장놈 처음부터 첫인상이 별로였어. 내 촉이 맞았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원래 회계 공부를 한 시간 정도 하다 자려고 했는데 마음이 틀어져버렸다. 콧김을 뿜으며 씩씩거리면서 내 방의 천장을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내일은 그럼 좀 늦게 일어나도 되겠네.
아 몰라, 그냥 오늘은 좀 쉬자.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