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해방촌 부대찌개

서울대 교문에서 시작된 종교 모임

by 찬란

“거기 교복 입은 학생, 지금 서울대 면접보고 나온 것 맞나요?”

“네, (뻐기며) 그런데요?”

고3이 된 파인애플. 아직도 ‘뭔가 굉장한 걸 준비하는 나’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과학고 실패 이후, 일반고에 진학했다. 이후 심기일전해 착실히 내신 공부를 해 내며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워나갔다. 무눈치도 여전했고 헤르미온느짓도 여전했다. 어쨌건 내신 성적표를 무기삼아 나는 서울대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서울대 농대 어떠니?”

“네? 농대요? 음…”

담임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였다. 그녀는 전공란은 잘 살펴보지 않았다. 관심사는 오로지 대학교의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주력분야는 심플했다.


“이 대학교의 커트라인 제일 낮은 전공은 무엇인가“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 중 한 명은 울분을 터트렸다. 담임이 자기 얘기는 듣지도 않고 다른 학교 경영학과에 넣으라 강권했다는 것이었다.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은 담임을 향한 매캐한 분노를 피워냈다.

“내가 미술 실기 준비해야 해서 야자 빼달라 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내가 원서 쓰겠다고 하니까 그냥 고대 캠퍼스 경영학과 쓰라고 하더라? 미술 하는거 모르냐고 막 소리지를 뻔.”

“헐…”

그러나 나는 딱히 다른 친구들의 입시에 관심이 없었다. 나만 잘되면 되니까. 이글거리는 교실 속 경쟁의 열기는 늘 뜨거웠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원서를 쓰는 12월, 학생들의 히스테리는 날로 심해졌다. 하루는 반 친구 한 명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터트리고 조퇴하기도 했다.

”파인애플 너 서울대 면접 보러 간다며?“

”응, 불어불문학과.“

”너 불어 잘해?“

”아니…. 그냥 점수 맞춰 넣었어.“

”그럼 어떡해?“

”나도 모르겠어. 일단 가 보지 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서울대 연대 고대를 가지고 전공과 조합하여 발란스 게임을 했다. 서울대 연대 고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우리의 품평이 이어졌다. 간간히 양념처럼 담임 욕도 섞어가면서.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린 친구가 한양대학교에 수시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친구들은 ”어쩐지 걔 소리를 지른 거 사실은 하늘을 향해 기도제를 지낸 거 같더라.“라며 깨알같이 디스 했다.




서울대학교 면접 문제는 어려웠다. 난생 처음 보는 불어 원서 지문을 읽고 의견을 말해 보라 했다. 읽어도 읽어도 해독 불가였다. 과학고 실패의 PTSD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봉이 김선달 작전으로 가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18세기 제국주의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풀어놓자 면접관들이 뜨악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당당한 헛소리였다. 아 떨어졌구나, 생각하며 면접실에서 나왔다. 멍하니 걷다보니 건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 그 때…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면접 보고 나오신 거세요?“

”네 그런데요?“

젊은 남녀 두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차분하고 온순한 인상이었는데 교복을 입은 나를 보고 부랴부랴 따라온 듯 했다.

”저희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같이 모임을 만들고 있거든요.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난 입학 안 했는데. 오늘 면접 상태로 보건데 앞으로도 입학 할 가능성은 없을 텐데.

”어…네…그런데 무슨 모임…?“

”네 그냥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교도 맺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요. 다음주에 부대찌개 먹는 팀 있는데 생각 있으심 조인 어떠세요?“

”어…부대찌개요? 어…네. 그럼…“

번갯불에 콩 궈먹듯 연락처를 넘겼다. 그들은 다음 주 부대찌개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에게도 서울대학교 지인이 생겼다는 단순하고도 세속적인 뿌듯함. 내일 등교해서 친구들에게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자랑할 거리도 생겼다.


서울대 모임은 알고보니 종교 모임이었다. 해방촌에 유명한 부대찌개집에서 만났다. 나는 부대찌개를 처음 먹어본다고 하자 모임장인 오빠는 그릇에 햄도 덜어주고 라면도 올려주며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냄비 위로 분주히 국자로 건더기를 건지고 국물을 떠 냈다. 하얀 밥 위에 얹어먹는 푹 익은 대파와 스팸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맛있었다. 매콤하고 자극적인 감칠맛에 나는 혼이 쏙 빠져 모임장 오빠의 호구조사에 열렬히 응했다.

”파인애플씨는, 그럼 은평구에서 살고 있고…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음…그냥 뭐 별로 없어요. 하하하“

”그런데,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는 굉장히 중요한 고민거리인거 같아요.“

”그러게요. 하하하“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사무실 비슷한 곳에 들어가 함께 성경 공부를 하자고 했다. 성경을 읽고 나눠준 QT책에 있는 질문지에 대한 답을 작성했다. 토론도 이어졌다. 나름 철학적인 질문들이었기에 즐거웠다.

”그렇다면 과연, <전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데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아들을 바칠 수 있었던 것처럼…“

성경모임의 핵심이자 정수는 ‘기도제목 나누기’였다. 각자 지금 고민이나 힘든 부분에 대해서 나누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나의 변변찮은 사생활을 풀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 했다. 모임장 오빠는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눈물은 전염되어 나까지 훌쩍훌쩍이다 보니 금세 날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음 주에 만나요~“

좁은 골목길은 위험하다며 모임장 오빠가 역까지 데려다 주겠다 했다.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모임장 오빠는 나의 모습이 보기 좋다, 멋있다고 하며 나를 으쓱하게 했다. 역에 도착했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모임장 오빠는 나에게 준비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파인애플 씨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생각 있어요? 우리 성경 모임…“

”엇…그럼…“

나도 모르게 머릿속 생각이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계속 부대찌개 얻어먹을 수 있나요?“

모임장 오빠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더니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아 그래요…“ 유감을 감추지 못한 나의 실망감 가득한 대답에 당혹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뭐 원한다면 부대찌개를 자주 먹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더니 황급하게 이제 가 봐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이후 나는 그 모임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종교모임과 나와의 짧은 인연은 끝났다.

얻은 게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부대찌개에 입문하게 되었다.

취향 하나 남았다.






<오늘의 기부: 관악구 재가노인복지기관>


관악구에서 각자의 사연으로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께 설 선물을 전하는 기부에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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