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
너...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은 1980년대 한국이다.
박두만 형사(송강호)는 그 시대 한국 경찰 중 하나로,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내겠다는 집념 하에
조사 과정에서 방법이나 절차 등은 깡그리 무시하는 패기를 갖고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많은 사람들에게 ‘경찰 조사’란
그 한 마디처럼 무섭고 위협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공포의 이미지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소비되며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경찰서 갈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도 범죄 사건의 피해자 신분으로
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두 차례 방문했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점이 어려웠을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된다면,
조사실에 들어서기 전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내 경험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미 온몸이 굳어 있었고
머릿속은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담당 수사관은 남성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날카롭게 질문했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로 대응했고,
차가워 보이는 수사관에게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때는 몰랐다.
경찰에서 송치 의견으로 내 사건을 검찰에 보내려면,
당시에 그 수사관의 철저한 조사 덕(?)에
경찰서에서 낸 송치 의견서는 검찰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때의 치밀한 범죄 일람표와
증거 확보, 일관성 있었던 조서 구성으로
(자세한 내용은 글 하단 브런치북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를 참조해주시라.)
경찰서 문을 들어 설 때,
어떤 마음을 가지면 도움이 될 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해본다.
수사관에게 ‘나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방법은
크게 말하거나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침착하고 일관된 태도가 오히려 더 신뢰를 준다.
돌이켜 보면,
조사 과정에서 너무 방어적으로 맞서기보다
협조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임하는게 좋은 것 같다.
이건 상대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차원이 아니라
내 진술을 끝까지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태도다.
경찰 조서에 적힌 당신의 진술은
조서를 통해 문서화되고,
나중에 검찰, 법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만약 진술을 바꾸면
그것만으로 당신의 말 전체가 의심받을 수 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냥 기억이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낫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오히려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이 되는 순간,
당신의 전체 진술이 흔들릴 수 있다.
가능하다면 변호사와 함께,
그렇지 않다면 머릿속에 가상의 수사관을 떠올리며 연습해보자.
“왜 그때 거절하지 않았나요?”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건 아닌가요?”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실제로 조사는 이런 식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대답하려면
미리 질문들을 생각해 보며 연습한 게 도움이 된다.
사전에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 조사에서 훨씬 안정적인 진술이 가능하다.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의 진술 하나하나는 증거가 된다.
스스로를 방어하면서도 설득해야 한다.
그건 때로 너무 가혹한 일이지만,
한가지 더,
나에게는 인생이 달린 송사여도,
경찰분들에게 내 사건은
그저 일상적 업무 중 하나다.
그 중요도에 대한 마음의 차이 때문에
때로 서운할수도, 때로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 그런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얼마든지 품위 있게 대처 가능하니
떨지 말고, 화내지 말자.)
*제 이야기를 담은 연재 브런치북을 읽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수 있습니다.
용기 내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북]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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