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깨나 순한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 연차 0의 신입엄마는 내가 그걸 알턱이 있나.
때맞춰해야 하는 수유도, 낮잠을 재우기도, 새벽에 우는 아이도, 종종 부리는 떼도 너무 어려워 그저 버거웠다.
아이와 하루 꼬박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은 힘들고 무료한 데다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은 늘 감사를 해야 한다. 일상에서 주는 무료함과 평범함이 주는 감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다. 허나 꼭 사람은 어려운 일을 겪고 나야 내가 그동안 누린 안온함에 감사를 하니. 참 이리 미련할 수가 있나.
아이가 70일이 채 안되었던 어느 날.
아이 몸에서 작은 멍과 같은 자반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옆, 발, 목 뒤, 엉덩이..
하얀 피부에 빨간 자반은 자꾸 눈에 거슬리고 그렇잖아도 예민한 나의 신경을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틀째 지켜보던 밤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싶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인터넷을 뒤졌다.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좋지 않은 일이기에 이것만은 아니길 제발 아니길 바라며 남편에게 다음날 출근을 안 할 수 있는지 부탁하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다니는 소아과에 갔더니 선생님께서도 증상이 여기서 볼 것이 아닌 것 같다며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병원 두 군데에서 모두 이 어린아이를 봐줄 선생님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간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바로 보자마자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어린 아기는 채혈실이 아니라 소아병동으로 올라가 채혈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내 피를 뽑는 것도 내 눈으로 못 보는 나는 차마 채혈을 하는 아이를 따라갈 수 없어 남편이 아이를 안고 소아병동의 채혈실로 갔고 나는 동동거리며 아이와 남편을 기다렸다. 옷이 다 풀어헤쳐진 채로 손과 발에 잔뜩 드레싱을 붙이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줄줄 났다. 이게 무슨 일일까 이건 꿈이 아닐까. 진짜 우리 아기가 아픈 건 아니겠지란 생각에 마음이 터져나가고 울렁거려 서있기가 힘들었다.
아이의 담당의는 보통 이 정도 또래 아기의 혈소판은 15000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는 1000도 안 되는 상황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장 입원을 하여 면역글로불린을 투약해야 하고, 울려도, 안아도, 떨어뜨려도, 세게 잡아도 안된다고 했다. 아이가 몸에 힘을 주는 순간 장기의 어느 부분이 터지고 지혈이 안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 조심 또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아이의 생애 첫 입원.
그리고 엄마로서의 첫 간병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회사에 이야기하여 입원 기간 내 함께 지내며 잔신부름들을 하고 나는 아이를 돌봤다.
자꾸만 모유를 먹던 아이를 채혈해야 한다며 데리고 가기를 반복하자 아이는 급기야 모유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유당 알레르기가 있어 시판 분유를 (국내외 제품 할 것 없이 다 먹여봤었다) 먹으면 얼굴과 목에 엄청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기에 아이를 먹일 수 있는 선택지는 모유뿐이었는데 아이는 수유를 거부했다.
아이의 혈소판 수치를 20000 정도로 올린 후 퇴원을 했다.
2주에 한 번씩, 달에 한 번씩, 석 달에 한 번씩, 년에 한번씩 반복하던 통원을 거쳐 아이의 혈소판이 안정되었고 혹시 모를 만성빈혈의 위험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어린내이던 아이는 계속 수유를 거부했다.
초보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낮동안은 유축하여 수저로 입안에 흘려 넣어주기를 반복하고 새벽에는 잠자는 아이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잠결에 수유를 해주었다. 매일이 눈물바다였다. 왜 나는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이리도 어려울까. 왜 수유조차 너는 이리도 거부하고 힘들게 하는 걸까. 나의 어떤 점이 이리도 부족한 걸까 너를 향한 원망보다도 나를 자책하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는 나날들이 길어졌다.
아이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수유 거부를 안 하고 잘 먹어주기 시작했다.
고마워서 잘 먹어주어서 갑자기 그간의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잘 먹어주는 것만도 이리 고맙고 애틋하다니.
이 어리고 어린,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이 모유를 배불리 먹고 배가 통통이 나와있는 걸 보니 안도가 되었다.
이제서야 살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네 엄마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