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책 덕분이야 ,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큰 세계 하나가 확장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책에서 접한 이야기들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는데 어떤 날은 귀가 아플 지경이었으나 영상매체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익하기에 남편과 나는 언제나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나도 아이가 읽은 책이 궁금해져 책장을 한 번씩 더 열어보곤 했다.
아이의 책은 장르를 넘나들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이미 생겨있어서 그런 책 위주로 읽으면서도 어떤 날은 학습만화도 한두 권 곁들여 읽다가 어떤 날은 과학적인 관심이 많아져 어린이 도서관이 아닌 일반 도서관의 자연과학 서가에 가서 어른들도 머리가 아플만한 책들을 이만큼 쌓아다가 몇 날 며칠을 읽고 또 읽어댔다.
서점에 가면 으레 과학 관련 서가를 찾아가 책을 사달라 졸라서 이게 맞나 하는 고민을 하다 아이의 수준에 그나마 맞을 책을 겨우겨우 타협하여 사주기도 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남편이 아이에게 책을 뺏으며 그만 읽으라고 했을 정도였다. 뒷내용이 궁금하다며 주말 하루를 내내 소파에 앉아서 책만 읽는 아이를 보고 남편은 뭐 이런 아이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독과 취미가 독서인 것은 초등학교를 가자 빛을 발했다.
1학년부터 4학년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기 초 부모상담을 들어가면 선생님들께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가 책을 정말 많이 읽더라고요. 독서 습관이 너무 잘 잡혀있어요:"였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아이의 칭찬은 원체 기분이 좋은 것이지만 거기다 독서습관이 잘 잡힌 아이라는 칭찬을 학기 초부터 듣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읽어대는 독서는 아이의 머릿속에 다양한 방대한 배경지식을 쌓아가는 큰 계기가 되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들이 있다는 것을 툭툭 던지는 시답잖은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알게 되고, 과학체험이나 역사 수업 등을 하러 가거나, 다큐멘터리와 같은 것들을 시청할 때 알게 되었다. 아이의 선생님들께서도 수업 중 아이가 발표할 때 그 많은 배경지식을 영상이 아니라 책에서 습득한 지식인 것을 기특해하고 신기해하셨고 단단하게 쌓여있는 배경지식에 놀라기도 하셨다.
물론, 아이도 나도 욕심이 있어서 아이가 집에 와서 문제집을 풀고 공부도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웬만한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일이었다. 국어뿐만 아니라, 사회와 과학은 당연하거니와 요즘은 수학도 웬만한 문해력이 없으면 문제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었으니 성격 급한 우리 아이는 문제를 슥보고 다시 정독해서 문제를 읽어내며 늘 좋은 점수를 받아오곤 했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게 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라고. 그러다 보니 학원은 다니지 않고 집에서 책을 많이 읽고 자기가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체력이 늘 부족한 우리 아이에게 이것은 우리가 서로 좋은 관계로 살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이렇게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는 끊임없이 검색을 하고 도서관을 다녔다.
아이가 학교에 가있을 때 이런저런 책들을 다양하게 찾아보고, 그 책들을 한 계정당 5권씩의 한도를 꽉꽉 채워서 대여 신청을 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관내의 모든 도서관들의 책을 집 인근도서관으로 받아볼 수 있는 상호대차 시스템이 있어서 그것을 백분 활용하였다. 책이 오는 날은 백팩을 메고 나가 15권의 책을 모두 등에 지고 집에 왔다. 뚜벅이인 내게 겨울과 여름에 이런 책 배달은 너무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책을 빌려오면 아이는 단숨에 책을 읽어내고 "엄마! 너무 재미있어요!"를 연신 말했으니 이쯤이야 힘든 일도 아녔다. 가끔은 아이의 취향에 맞지 않는 책도 더러 있기도 했지만 아이는 그런 책들을 읽고 혹평을 하긴 했어도 꼭꼭 다 읽어주었다. 대신, 끝에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붙이면서...
독서와 문해력이 아이들 교육에 가장 큰 화두가 된 요즘. 관심이 많은 엄마로서 관련 강좌나 글들을 많이 읽고 보게 되는데 저학년에 책을 잘 읽던 아이들이 3-4학년에 들어오면서부터 휴대폰에 빠지면서 영상과 게임에 더 가까워지고, 학원들을 순회하다 결국 책을 읽을 시간도 없어지고, 흥미까지 떨어지기에 지금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모든 글과 강좌의 요점이었다.
지금 이 시기는 아이에게 다시 못 올 시간이니 내가 더 아이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환경을 만들어서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자라게 해주는 것. 중, 고등에 가서도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을 때에도 지금처럼 휴식을 책으로 하는 아이가 되게끔. 그게 엄마인 내가 뒤에서 계속해줘야 할 가장 큰 서포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