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상담을 갔던 날.
진짜 내아이가 초등학생이고, 내가 진짜 학부모라는 마음이 실감이 났더랬다. 마치 아이를 낳고 'ㅇㅇ엄마' 또는 '어머니' 라고 부르는 호칭이 너무 생경하여 나를 호명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딴청을 부렸던 날이 생각이 났다.
나처럼 외동아이를 키우시고 뭣보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크신 분이라는 것을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느껴져 마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7살에 이모가 담임인 때에도 지적을 받아 풀배터리까지 진행한 전적이 있는데 기관을 졸업하고 학교를 입학했다고 그 산만함이 지워졌을리 만무했다.
아이는 전처럼 다른 아이들이 말을 할 때 끼어들진 않지만, 앉아있기를 힘들어했고 (이유인즉슨 작은 체구이기에 의자가 너무 높다는 것이었으며) 쉴새없이 손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손장난을 치다가 어떤날에는 가방에 달린 좋아하는 포켓몬 피규어를 떼어내 수업시간 내내 만지고 있어 지적을 받았다고, 워낙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게 1학년인 모습에도 두드러지게 보이나 글을 쓰는건 너무 엉망으로 성의가 없는 모습이 보인다고 정말 에둘러 좋게 포장하여 말씀해주시지만 나는 내 아이의 엄마니까 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수업을 참여하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눈 앞에 훤히 그림이 그려졌다.
상담을 하고 학교를 나섰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복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만약 작년에 아이가 이모선생님과 1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1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이런 말들을 듣고,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어찌할지를 모르고 허우적댔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이미 7살에 후드려 맞아봤으니 덜 아프고, 또 아이가 커가고 있으니 잘 잡아서 온전한 사람(?) 하나 만든다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보고 또 다잡고 학원을 다녀온 아이를 만나자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 수천번 이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속상한 마음에 자꾸만 화가 튀어나오며 아이에게 가시 돋친 말들을 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으니 천천히 도와주며 그런 행동들을 소거 시켜나가야하는데 그땐 그저 그 상황이 싫기만 하고 아이가 대체 왜 또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힘들고 짜증이 났다.
아이가 들고왔던 국어 책의 엉망진창인 글씨들을 처음부터 배운 곳까지 모두 싹다 지우고 주말 내내 다시 새로 써서 갔다. 후일담으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진짜 너무 놀라셨다고 이렇게까지해서 글씨를 다 지우고 다시 다 써오는 것은 생각도 못했었다고 이야길 들었었다.
집에서 아이가 놀 때마다 모래놀이를 할 수있게 뭉쳐지는 모래놀이 세트를 구입해서 아이가 원할 때마다 거실 한켠에 꺼내두고 실컷 가지고 놀게 하며 손장난으로 풀 행위들을 하교 후 실컷 풀게 했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 바른 자세로 앉고 의자가 정 높으면 발받침까지 구입해 가져다 주겠노라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점차 좋아졌다. 2학기 상담에 가서도 같은 문제들이 다소 남아있긴 했지만 그래도 1학기의 평에 비하면 한층 좋아졌다.
다만, 늘 어려워하던 친구에 대한 문제가 또 붉어졌다.
아이는 아이 포함 3명의 남자아이와 어울렸는데 아이의 서툰 사회성 때문에 자꾸만 다툼이 일어나고 서운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상황에서 자기의 할말도 하지 못하고 꽁해 있기만 했다. 한 문제가 잠잠해지니 새로운 문제가 또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로인한 나의 피로감도 이젠 극에 달했다. 그래도 아이와 어울리는 아이 중 한 엄마는 지금까지도 나와 가장 친밀하게 지낼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객관화를 하여 아직 어린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중간치를 잡아갔지만 한 아이의 엄마는 끝까지 자기 아이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음을 우기고, 끝내 아이들도 그아이와 멀어지고 어른들 또한 그 엄마의 태도 때문에 결국 멀어질 수박에 없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차라리 아이들과 어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멀어짐이 맞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사회생활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사건은 2학년 때 진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