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왕따 사건

by 레일라J


2학년의 여름방학을 3일 앞둔 어느 날.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와 단골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우리 아이의 교실에서 어찌 지내는 가에 대한 질문 하는데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의 일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성향도 아니거니와, 또 친한 친구들 무리가 생긴 것을 알고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는 아이를 굳이 부추겨 물어보는 일도 없었다. 마음에 걸리지만 또 무슨 일이 있겠냐며 그날 저녁에도 이 이야기를 생각 저편으로 넘게 두고 아이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유난히 아이가 일어나기 힘들어하고 피곤해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다 꼭 안아주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학교를 못 가겠어요. 학교 가는 게 힘들어요”




아이의 입에서 처음 나는 소리였다.

갑자기 어제 아이 친구 엄마와 이야기 나눈 게 스쳐 지나갔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일이 있음 어서 다 털어놓으라고 채근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아이가 엉엉 울며 말한 이야기는 아이와 학기 초부터 친해진 A와 B. 내가 아이와 2학년 교실에서 가장 친하다고 굳게 믿던 그 아이들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A와 B 두 아이는 조용하게 앉아서 노는 걸 선호하는 우리 아이와 다르게 액션이 크고 거칠게 노는 놀이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처음에도 우리 아이도 그 아이들도 서로 중간점을 찾아 잘 지내다가 한 두 달 전부터 자신들이 좋아하는 만화에서 나오는 전투(?) 장면을 하고 놀고 싶은데, (그 만화 자체가 아이들이 보기에 유해하기에 우리 아이는 노출한 적이 없었다.) 우리 아이는 그 만화를 보지도 않았고 그 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두 아이는 다른 아이를 끼고는 자연스레 아이를 제외하고 놀기 시작했는데, 그때 혼자 있기 심심했던 아이는 교실 내의 다른 친구들 무리와 보드게임 등의 놀이를 하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A와 B 또한 다른 아이와 함께 전투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그게 아이들의 문제의 시작점이었다.


특히나 두 아이 중 A는 우리 아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 마뜩잖았던 것이다. 눈에 어지간히도 거슬린 것이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는 좋아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하는 놀이를 하자며 우리 아이에게 억지를 부렸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나는 정말 하기 싫으니 너희끼리 하라고 다른 거 할 때 같이 놀자고 하자 그날 그 순간부터 아이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밥 먹을 적에 번호 순대로 앉기에 A와 B와 우리 아이는 나란히 앉을 수밖에 없는데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의 말만 안 들리는 척을 했다 후에도 학급 내의 모든 활동에서 아이의 말과 행동은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째려보며 아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너는 나한테 말을 걸 자격도 없다"는 말로 아이를 울렸다. 그러다 자기가 놀 친구가 없는 시간이 되면 우리 아이에게 와서 친한 척을 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오면 또 우리 아이를 외면하고 괴롭혔다.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 어찌 저런 못된 말들을 배웠을까 의문이 들만큼의 언행과 욕설을 했다. 아이는 그래도 나와 친했던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 믿으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A에게 다가가려고 했다고 했다. A가 그런 행동을 지속하자 옆에 있던 B도 덩달아 우리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후에 이 상황을 알고 아이들의 영악함에 혀를 내둘렀는데 B는 학교 앞에서 우리 아이를 기다리는 나를 보면 굉장히 공손하고 착한 행동을 하며 우리 아이를 챙기는 시늉을 했고 내가 볼 수 없는 학교 안에서는 우리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아이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 간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하자 이러다 말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자기가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아이에게 씻고 밥 먹으라고 하고는 그 아침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고, 자기가 오늘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하셨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힘든 마음이었지만 꾹 참고 아이를 보냈다. 선생님과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그 아이에게 사과를 받으라고 이야기하고 아이를 교문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곧장 후문으로 달려갔다. A는 늘 지각 직전에 후문으로 등교를 한다. 난 오늘 그 아이를 잡을 것이다.



A야! 아줌마랑 이야기 좀 할까?



후문 앞에 다다르자 바로 위 횡단보도를 건너는 A가 보였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자 죄진 아이처럼 눈치를 보며 머쓱하게 인사를 한다. '그래 너 정말 죄지었구나?'라는 게 딱 보이는 얼굴이었다.

A에게 우리 아이에게 요즘 왜 그러냐고 물으려던 찰나 갑자기 A가 먼저 급하게 말을 한다.

"제가 오늘 태권도에서 파티 있는데 ㅇㅇ이 초대할 거였어요. 잘해주려고 했었어요."

도둑이 제발 저린 것이었다. 내가 자신 앞에 나타나 서 있으니 그전에 방실 방실 웃기만 하던 아이가 날보고는 갑자기 우리 아이를 잘해줄 거라는 둥 파티를 데려갈 거라는 둥의 소리를 해댔다.

" 너 우리 ㅇㅇ이 따돌리고 괴롭히고 나쁜 말 했지? 아줌마 다 알고 온 거야. 그리고 지금 너 학교 들어가면 너희 엄마랑 통화할 거야. 오늘 학교 가서 우리 ㅇㅇ이에게 사과해. 그리고 우리 ㅇㅇ이랑 놀지 마 친한 척도 하지 마"

"네 죄송해요"

A를 보내고 A의 엄마와 통화를 했다. 서로 좋게 봤기에 커피 한잔쯤 마실 수 있는 사이라 전화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내가 사람을 한참 잘못 본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의 가해 행동에 미안함은 일절 없고 자신의 아들이 서운해서 그랬을 거란다. 그저 그냥 넘어가라는데 어이가 없었다. 아 내가 상종을 말아야 하는구나.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사과를 받지 못한다면 이건 학폭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하교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A가 학교를 오자마자 자신에게 태권도 파티를 같이 가자는 둥 미안하다는 둥의 이상한 소리를 잔뜩 늘어놨고, 아무리 A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과는 파티를 가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친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했다. 어쩌면 내 아이가 나보다도 단단한 마음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2학년이었다면 , 아마 나는 나를 괴롭혔던 친구에게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듣고 더 미움받지 않고 싶어서 속도 없이 같이 간다고 그저 끌려갔을 것만 같은데, 아이는 나보다 나았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A와의 이야기 끝에 굳이 자신을 힘들게 한 친구에게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 아이가 자신을 왕따 시킨 것이 맞고, 자기를 힘들게 했고, 엄마가 찾아가자 핑계를 늘어놨다면 친구가 아닌 것이 맞다고 더 이상 마음 쓸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거진 두 달을 참아오던 일이 끝자마자 방학이 시작되었고 아이는 그 아이들과 마주 칠일이 없어 평안한 날들을 지냈다. 개학을 하고도 당당히 학교를 가서 새로 친해진 아이들과 재미있게 잘 지냈고 A는 더 이상 아이를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B는 자꾸만 눈치 없이 다시 친한 척을 시작했다. 아이는 너무 불편했고 B를 피해 다녔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이가 학교 앞에 와달래서 가 있는데 B가 아이에게 치근덕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B를 불렀다.

"B야. 너 혹시 1학기 때 우리 ㅇㅇ이 A랑 같이 따돌렸니?"

"네 맞아요"

세상 너무 당당한 목소리로 맞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 너무 했네? 너 우리 아이에게 사과는 했니?"

"아..? 했을 걸요?"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우리 아이가

"야! 네가 언제 사과를 했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말하자

"아 안 했나? 미안 미안해 됐지?"

저 말에 속이 뒤틀리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멀리서 B의 엄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줌마가 지금 너희 엄마에게 네가 우리 아이 왕따시킨 걸 말할 생각인데, 계속 그렇게 사과할 거니? 아줌마가 그냥 학폭까지 가야 하니?"

엄마가 무서웠던 걸까 학폭이 무서웠던 걸까. B는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더니 미안하다고 몇 번을 아이에게 사과를 했고, 나는 다시는 우리 아이 옆에 얼싼도 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지도 말라고 이야기했다.

B의 엄마와도 이야기하는 것이 옳았지만, A의 엄마에게도 실망을 한 전적이 있는지라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


두 아이에게 온전한 사과를 받고 엄마가 나서서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해결해 주는 것을 본 아이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괜찮아졌냐고 물었다. 아이는 후련해졌고, 엄마가 정말 말로만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서서 자신을 지켜주는 것에 고마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이 일을 계기로 변했다. 어릴 적에도 같이 놀던 친구기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이면 멈춰있던 아이가 이제는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왕따사건은 아이도 나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새로운 옹이가 하나 새로 생겼고, 아이는 그 옹이 덕분에 사람에게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찾았다.

아기가 또 자랐다. 성장했다. 마냥 아기가 아니었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13화12.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