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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뒤통수만 보여주는 아이

by 레일라J


등원 시간에 아이들을 보면 재차 뒤돌아 “엄마 안녕!”하며 손을 흔들기 마련이었는데 우리 아이는 안 그랬다.


4살에 처음 기관을 다니기 시작하고, 적응과 입원, 다시 또 적응의 도돌이표를 내내 찍는 동안 아이는 입구에서 안 들어간다고 울고 들어가 교실에서도 한참을 울고 했지만 들어가는 동안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냉정하다 싶게 앞만 보고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이 이름을 부르는 어떤 날에는 그리 불렀는데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 아이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거 돌아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엄마 얼굴 한 번을 안 봐주네 싶었다.


아이와 나란히 교실에 들어가는 다른 아이들은 현관에서 부모님이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방긋방긋 웃으며 뒤돌아보며 인사해 주는 모습이 그렇게나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넌 엄마 얼굴도 안 봐주는 거야?!




처음 기관에서도 옮긴 기관에서도 아이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같았다. 이젠 기관에 들어가며 울지 않는 나이임에도 아이는 앞만 보고 걸어갔다. 손 한 번 흔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아이가 6살 즈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그간 내게 뒤돌아 보지 않던 이유를 알았다.

뒤를 돌아본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 얼굴을 본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이와 같은 기관에서 일하는 내 동생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내가

"ㅇㅇ아! 오늘 잘 지내! 안녕!" 하고 뒤에서 말을 하고 있을 때마다 입을 앙 물고, 눈에 힘을 주고 들어가곤 했다고 한다. 내가 부르는 자체가 아이에게 울음 버튼이었고, 나는 이제야 아이의 마음을 알았다. 엄마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니 뒤돌아볼 수가 없던 것이었는데 엄마는 그 마음도 모르고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서운해만 하고 있던 것이었다. 엄마인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 후로 나는 아이를 한번 더 부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다만 아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학교를 입학하고는 불안한 마음에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좋은 하루 보내! 선생님 말씀 잘 들어! 밥 잘 먹어야 해!" 말을 해도 아이는 역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 아이의 뒤통수가 사라지고 저 멀리의 실루엣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이 뒤돌아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 네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정신승리(?)를 하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날들이었다.


2학년이 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이야기해 주고 아이를 들여보냈다. 교문 앞에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고 뒤돌아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음날도, 그리고 또 다음날도 아이는 교문을 지나 중반쯤 걸어가서는 뒤를 돌아보고는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아이의 돌아보는 얼굴을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서야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 뒤돌아서 엄마를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을 만큼 마음이 자라 있었다.

마음이 단단해져서 이제 엄마를 돌아보아도 엄마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만큼 자라나, 이제는 엄마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 수 있게 되었다.


또다시 나는 아이의 시간과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다름을 느꼈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단단하게 자라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기다려주기만 하면 아이는 자기의 시간대로 쑥쑥 자라나 내게 새로운 잎사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제 매일 같이 헤어질 때마다 뒤를 돌아 하트도 쏴주고, 손도 크게 흔들어주며 간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 돌아보는 순간의 내 아이의 얼굴을 이제 실컷 본다.

그 모습에서 아이가 내게서 멀어져 가는 날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서로가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게 이젠 내가 내 자리에서 아이의 흔드는 손을 기쁘게 바라보아줄 차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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