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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해도 해도 너무하네.

by 레일라J


매일같이 핑거푸드를 만들어내느라 진이 빠지던 이유식 시기가 지났다.

남편과 내가 먹는 밥을 맛나게 받아먹는 아이를 보니, 일반식은 아무래도 쉬울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하. 지. 만.

상대는 내 아이. 모유도 이유식도 애먹인 내 아이였다.

아이는 엄청 까탈스러웠다. 조금 식으면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고 고기도 보드랍게 찌거나 굽지 않으면 입에도 대지 않더니 어느 날부터는 고기를 먹지 않으려 했다.

아이 때문에 우리 집 식탁은 온통 풀밭. 아이는 나물을 맛나게 먹었다. 매일 같이 아이가 먹어도 될만한 나물들을 찾아보고 듬성듬성 다진 고기도 채워 넣어 단백질을 보충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기기 막히게도 고기들을 속속들이 골라냈다. 정말 이리도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먹는 양도 적은 데다가 먹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주력으로 뭘 좋아하냐를 꼽을 수도 없으니 이런저런 시도를 다해보고, 아이가 입원했을 적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다 가져다주고 들이밀기가 바빴다. 그런 아이가 성장이 쑥쑥 잘 될 리가 만무했다. 병원에서 아이의 전체 영양상태를 확인하고 아이에게 맞는 영양제를 찾아다 먹이고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때 아이가 다니던 병원의 클리닉 이름이 무려 '자주 아픈 아이 클리닉'이었다.


아이의 몸상태를 확인하고 알았던 점은 아이는 자다가 꼭 물을 먹으려고 깼었다. 나름대로 수면 습관이 잘 들어 일찍 자고 오래 자는데 꼭 중간에 아이가 일어나 물을 먹는 것이었다. 영양상태를 확인하며 모발검사로 아이의 몸속에 있는 중금속 관련 항목들을 확인하는데 아이는 성장에 정말 중요한 아연이 부족했고, 아연 부족으로 자다가 깨며 물을 찾는 것이었다. 그날부로 아이는 보통 아이들의 2배 되는 양의 아연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고 3개월 후 검사에서는 아이의 아연수치가 정상치에 딱 도달했다고 했다. (이것 또한 보통의 아이들은 2배 치를 먹으면 이미 높게 나와야 하는데 우리 아이는 수치가 정상수치에 겨우 도달한 것을 보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놀라셨었다.)



우리 아이는 꾸준히 안 먹었다. 그러다 기관을 다니면서는 좋아하는 생선을 나오는 날만 잘 먹는다는 말을 들었고, 거의 점심을 잘 먹지 않다시피 하여 집에 돌아와 늘 밥을 다시 먹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선 나도 그런대로 두게 되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80년대 생인 나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아동학대라고 말할 수 있는 심한 체벌과 훈육으로 컸던 세대인데,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늦은 7살 5월에 처음으로 기관을 갔었고 그 기관에서 먹는 것으로 학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이가 먹는 것을 안 좋아하는 것은 나를 닮은 것인데, 어릴 적 나 또한 무척 작고 뱃고래가 작은 아이였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기관에 갔을 때 그곳은 하원 전에 늘 제과점서 사온 소보루, 크림빵, 단팥빵 중 한 개와 우유 200ml를 먹고 책을 읽는 규칙이 있었다. 입이 짧고 위가 작은 아이가 빵 한 개와 우유를 다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는데 기관에서라고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반절을 먹겠다고 부탁을 해도 소리를 지르던 선생님이 무서워 매일을 꾸역꾸역 먹고 헛구역질을 하던 날들이 반복되다 결국, 나는 교실의 작은 책상 위에 먹던 빵과 우유를 다 게워냈다.

그 순간 내 뒤통수에 소리를 지르던 선생님. 그리고 곧바로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온 시큼한 냄새가 나던 걸레레, "네가 닦아!"라고 하던 그 날카롭던 목소리. 울면서 작은 손으로 내가 게워낸 것들을 닦아내고 책을 읽던 친구들에게 눈초리를 받으며 혼자 걸레를 빨러 가면서도 욕을 먹던 그날. 그다음 날부터 빵을 먹는 시간이 오면 너무 긴장이 되고 무서웠다. 그러다 생각난 방법. 빵을 먹다가 입에 빵을 잔뜩 문채로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하고 가서 다 뱉어낸 날들. 그런 날들이 내게는 너무 무섭고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라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빵 한 개와 우유를 먹는 다 먹어내는 것을 못한다. 그래서 늘 어딘가에서 빵과 우유를 주면 목이 메더라도 빵만 꾸역꾸역 먹고 우유를 열지 못했다. 빵은 먹다가 남아도 가방에 넣을 수 있지만, 우유는 끝까지 다 먹어야 해서 늘 남기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있다. 내 안의 일곱 살 아이가 결국은 그 부분은 극복을 못하고 마흔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런 엄마이기에 아이가 기관에서 먹는 걸로 강요받지 않았음 하는 생각이 커서 아이의 기관 선생님들에게 먹는 것으로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내가 집에 와 다시 밥을 먹이더라도 먹는 상황을 유연하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두 번째 기관에서는 이모선생님이 노력해서 먹게 도와주었는데 문제는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학교는 기관처럼 맵지 않은 음식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매운 음식도 더러 섞여 나오는데 아이는 음식을 먹기 싫어했고 늘 학교에 상담을 하러 가면 아이의 잘 안 먹는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처음으로 아이의 먹는 문제에 대해 도움을 주시기 시작했다.

이전 담임 선생님들은 '잘 안 먹네요' ,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하시는 게 다였지만, 3학년 담임선생님은 본인도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마르셨기에 우리 아이의 마음을 아신다며 아이가 잘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게 자리를 조율해 주시고 아이가 잘 먹는 날엔 아이를 따로 불러 간식으로 보상을 챙겨주셨다. 3학년 내내 먹는 문제는 걱정해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지고 잘 먹어서 한시름을 놓았는데... 4학년이 된 올해. 학교에서 밥을 한 톨도 먹지 않고 앉아서 떠들고 놀다 밥을 고스란히 버리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것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구나를 알았다.


아이가 다니는 성장클리닉에서 최근 아이의 성장 추이가 너무 좋지 않아서 식이에 더 신경을 쓰라고 하여 매일 소고기를 구워먹이고, 매일 같이 식간에 단백질 셰이크까지 챙겨 먹여가며 아이의 영양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아이가 점심에 다이어트하는 사람처럼 배를 곪게 두고 있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진짜 아이에게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나 그날밤 아이를 무지 혼내고 하루에 무조건 5숟가락을 먹고 오기로 약속을 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잘 먹는다고 내게 말해두고 안 먹고 있던 아이에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그나마, 그 이후로 하루에 5숟가락을 정말 먹는다고 하는데 이아이는 나처럼 평생 음식에 시큰둥하면 어쩌지 왜 하필이면 이런 걸 날 닮았을까라는 생각에 매일같이 마음 한편이 무겁다. 잘 먹어야 잘 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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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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