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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대근육 발달

by 레일라J


아이의 첫 영유아 검진때 아이의 대근육이 너무 느려 아이가 뒤집기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어떤 것을 해야할지 너무 어려웠다. 같이 일을 했던 치료 선생님들께 자문도 구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뒤져보아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만히 누워서 노는 아이를 운동을 시킬 수도 없고 어쩌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 때는 몰랐다 이것이 우리아들의 느린 대근육으로 인한 비애의 서막임을.


기관을 다니면서도 아이는 대근육이 느리다보니 운동에 관심이 영 없었다.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활동에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기질적으로 겁이 많은 것도 한 몫하긴 했지만, 그보다도 아이는 자신이 몸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을 빨리 캐치했고 그러다보니 시도도 하기 전에 신체활동들에 있어 포기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하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서도 아이들이 뛰어 놀 때 아이는 한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모래놀이를 하거나 곤충이나 풀을 관찰했다.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슁슁 위아래로 날아다닐 때 우리 아이는 "엄마 밀어주세요"를 외쳤다. 어떤날은 아이에게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서 그네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첬다. 앞뒤로 그네가 움직일 때 그 바운스에 맞춰서 다리를 앞뒤로 접고 펴보라고, 반동을 이용하라고.

하지만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팔다리를 반동으로 움직이기는 커녕, 아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얼마나 웃기던지, 그렇게 한참을 못타더니 아이는 이제 주변의 남자친구들은 그네를 많이 타지 않는 3학년 후반이 되어서야 그네 타는 방법과 재미를 알았더랬다.


게다가 달리기는 얼마나 못하던지 팔과 다리를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고 팔랑팔랑. 정말 종이인형이 저런 모습으로 뛰는 걸까 하는 모습으로 뛰어다녔다. 속도도 느리고 자세조차 엉성하여 오래 달리거나 빨리 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아이들끼리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언제나 꼴찌. 하지만 속상해하지 않았다. 자신이 운동을 못하느 것은 이미 받아들인지 오래였다.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를 축구클럽에 보내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공을 컨트롤을 못하고 달리지를 못하니 축구하는 같은 편 아이들을 구경하며 필드를 산책하고 있었다. 같이 경기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한것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반을 축구를 다녔는데도 아이는 축구가 늘지 않았다. 그저 세레모니를 배워왔다. 자기가 속한 팀이 골을 넣으면 같이 세레모니만 열심히 했다. 민폐가 민폐가, 이런 민폐가 있을 수가 없었다.


달리기의 모양새가 그나마 괜찮아진 것은 3학년의 어느날, 태권도를 다녀온 아이가 "엄마 저 그동안 제가 달리는 자세가 이상했던걸 알았어요" 라며 자신의 새로운 달리기 자세를 보여주며 뛰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학습적으론 늘 뛰어난 내 아이는 대근육 발달이 내 생각보다 2년이상 뒤쳐져 있음을. 그래서 자기 방식대로 깨닫고 그 시기가 되면 그 수행 과제를 천천히 해내고 있었다.


내가 잊고 있었지만 9월 중순에 태어난 아이는 12월 첫날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했고

11개월이 되었을 때 잡고 일어섰고, 9개월이 되었을 때 배를 밀고 기어다녔다.

늘, 몸으로 하는 것들은 느린 아이였다. 아이의 시간을 인정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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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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