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겁이 많다.
내 아이가 겁이 많다는 말은 단순히 특정한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느낌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주변의 환경 변화에 대한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태도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볼 때에도 지레 짐작하여 선입견을 갖고 겁을 내다가 정말 마지못하여 한 입을 먹어보고 우와, 하던 경우가 더러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이가 이제 4학년이므로 알약을 먹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그렇다 보니 소아과는 특정한 일 아니면 가지 않고 요즘은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되고 데스크에서 접수할 때면 으레 "알약 먹지요?" 하고 물어보는 나이가 되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알약에도 크나큰 겁을 내고 있다.
2학년 말미부터 알약을 시도를 해왔는데, 병원서 처방받아 조제하는 약이 아닌 집에서 상비약으로 구비하고 있는 약으로 아주 작은 환부터 도전을 하기로 했더랬다. 그렇지만 결과는
완. 전. 실. 패.
아이는 그 환을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씹어먹었다.
환을 씹어먹으니 쓴맛이 엄청날 텐데도 울먹이며 약을 못 삼키겠어요 무서워요를 연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짜증이 솟는 기분이었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는 어릴 적 알약을 처음 먹었던 그때를 어렴풋이 기억을 한다. 늘 가루약을 먹으면 구토를 하기 일쑤이던 내가 처음으로 알약을 받아오던 날 뭐랄까 이젠 그 쓴맛을 더 이상 느껴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약을 받아오는 게 신이 났더랬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알약을 먹고 싶어 하는데도 부득불 가루약을 오랜 시간 고집해 오셨었는데 알약을 제대로 먹지 못할 거란 우려가 있으셨던 것 같았다.
알약을 꿀떡꿀떡 삼켜내니 약의 쓴맛도 느끼지 않고 약을 다 먹었다는 생각에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내게는 알약의 시대가 도래했고, 우리 남편은 어느 순간 자신이 알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에게 알약을 먹는 일은 유난 떨만치 큰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로도 우리 아이는 종종 알약을 시도했지만 끝은 울먹울먹 엔딩이었다.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진짜 알약은 안 되겠어...?"
내가 단골로 다니는 작은 동네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는 늘 우리를 환대해 주는 사장님과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 아이와 나는 심하진 않지만 약간의 알레르기가 있어서 강아지와 놀다 얼굴을 만지면 아이도 나도 재채기 릴레이가 이어지거나 눈이 가려워지곤 한다. 하지만 워낙 우리 둘 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며라도 강아지와 노는 것이 즐겁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하교를 하교 그 카페에서 나를 만났다. 하루 종일 강아지가 카페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오늘자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역시나 강아지와 놀다 20분쯤 지났을 무렵 아이는 재채기를 시작했다. 아이의 상비약을 챙겨 온지 알았는데 없는 것을 알고 난감해하던 중 내 가방 안에서 나의 알레르기 약을 발견했다. 1/3알 정도면 아이가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반을 갈라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이거 삼키기를 성공하면 강아지와 더 놀 수 있고 안 그럼 집에 그냥 가야 할 것 같아."
아이는 굳은 결심을 한. 정말 결연한 얼굴로(이게 대체 뭐라고) 알약을 받아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알약을 먹는 2가지 방법이라며, 나름의 설명을 해주었는데
첫 번째, 알약을 혀 위에 올려놓고 물을 마시면서 꿀떡 삼키기(엄마와 아빠가 하는 방식)
두 번째, 물을 입안 한가득 머금고 알약을 한알 퐁 넣어서 물에 띄워져 있는 알약을 꿀떡 삼키기(이모가 하는 방식)
아이는 두 번째 방식을 선택했다. 입안 가득 물을 넣고 알약을 퐁 넣은 아니가 내가 잠시만 이라는 듯 손을 들고 있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성공했어요!!"
그리도 어렵던 알약 먹기가 이렇게 갑자기 쓰윽 해결되다니,
강아지와 놀고 싶은 마음이 작용을 한 건지, 아님 물에 동동 띄운 알약이 해결을 한 건지 알 순 없지만 아이 스스로도 깨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퇴근한 아빠와 샤워를 하다가도 자랑을 하고, 자기 전에도 무용담 늘어놓듯 이야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한두 번만 더 시도하면 이제 알약의 세계로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