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3월.
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마음을 먹었다. 아이가 조금 크기도 하여 조금 수월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갈 생각에 우리 부부도 마음이 들떴다
여름나라를 가는 거지만 아이와 물놀이를 할 테이니 짐도 적잖이 있었다.
아이는 이번에도 현지 시간이 아닌 한국 시간으로 밥을 먹고 조식시간에는 끼니 사이의 간식을 먹었다. 먹는 양이 여전히 적은 편이지만 이유식 때에 비하면 아주 잘 먹는 편에 속했다.
찬바람을 쐬면 감기에 잘 걸리는 아이이기에 마스크를 가지고 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에 들어갈 때마다 마스크를 씌웠다 당시엔 팬데믹 이전이라 마스크가 그리 다양하지 않는 시기라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천마스크를 여러 개 들고 가 매일 같이 빨아가며 여행을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물놀이, 모래놀이도 실컷 시켜주고 야시장에서 조악하고 조잡스럽게 만들어진 장난감을 사서 하룻밤 재미나게 놀기도 하고, 아이는 굉장히 잘 지냈다. 우리도 수월하게 여행을 하며 아이의 성장과 우리 가족의 안온함을 감사했다.
워낙 몸이 약한 아이이기에 나는 여행 시마다 늘 체온계과 미리 처방받아오는 약들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베트남에 와서도 늘 핸드백에는 아이의 상비약과 체온계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남편과 짐을 싸며, 여기서도 한 번도 쓰지 않은 체온계를 보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커다란 캐리어 안에 체온계를 쏙 넣고 짐을 부쳤다. 기내에서 남편과 아이는 면세점에서 구입한 레고를 신나게 만들던 중 아이가 자꾸 쳐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이마에 내 입술을 살포시 데어보니 아이가 불덩이 었다. 하필!!!!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체온계가 없는 유일한 이때에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급하게 승무원을 불러 물어보니, 기내의 수은체온계도 선반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우리처럼 아이를 데리고 탑승한 승객들도 체온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승무원분들께서 돌아가며 가져다주시는 물티슈로 아이를 닦여가며 인천공항에 왔다. 공항에서 내렸을 때 아이는 너무 쳐져서 자꾸만 졸고 있었다.
자는 아이를 등에 업었다.
남편에게 모든 짐과 차 픽업을 맡기고 아이를 업고 일단 뛰었다. 기내에서 승무원님들이 알려주신 대로 지하에 있는 공항 내 응급의료센터에 갔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열을 재보더니 해열제를 처방해 주시곤 다른 증상은 확인도 않고 약을 주셨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소아를 다뤄본 적 없나 하고 그저 해열제만 받은 약을 들고 비싼 약 값을 지불하고 또 뛰고 뛰어 남편을 만났다.
웬일로 센스 있게 짐가방에서 미리 체온계를 꺼내둔 남편.
체온계를 받아 쥐고 아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집에 갔다. 돌아온 집에서는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다. 여행의 피로가 누적된 아이가 목이 부어서 열이 나던 거라 고열은 3일 만에 잡혔고, 그다음은 내가 앓아누웠다. 그 후로 우린 이젠 괜찮겠지 따위의 마음은 접었다. 아이에게 이제 괜찮은 일은 없다. 늘 방심 말고 대비를 해야 자의든 타의든 고의든 아니든, 뒤통수를 맞지 않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