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와schwa 그리고 멍

15 비우면 문득 생기는 일

by 서희복

/ə/로 표기되는 소리 슈와schwa는 히브리어에서 온 비우다는 의미다. 독일어를 거쳐 영어 소리 표기에서 소리 없음이나 매우 약하게 흔적만 가지라는 표식이다.


매번 비우라면서 항상 채우려고 발버둥이다. 멍 때리고 있으면 큰 일이라도 난 듯 어른들이 핀잔한다. 근데요 그게요 사는데 꼭 필요한 거라니까요. 아무리 말해도 멍과 시간 낭비를 동일시하는 자본주의의 고약한 버릇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멍 때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공부하라고 닦달당해 본 적도 없다.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남겨주신 나의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했던 질문만큼이나 아오는 표정의 다양한 감정들은 점차 사회로부터 피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 같았다. 사전이나 책에 기대어 질문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러면서 익숙해진 멍은 사는 시간을 평온하게 재편했다.


깊게 더 먼 멍을 하면 할수록 몰입의 순도가 높아진다. 은근히 온도가 오르며 혼자의 에너지를 최적으로 끌어올려 지각 자극들을 흡수한다. 그들이 들어오는 길목을 밝히며 흠씬 두드려 맞은 멍은 불쏘시개가 되어 화라락 자신을 태우고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남는 더 단단한 내가 세상으로 나간다.


말을 하기 전 짙은 침묵은 생각을 멈춘 것이 아니라 잠시 세계와의 연결을 내려놓는 것이다. 마음껏 비우고 그 없음, 슈와schwa의 상태를 유지한다. 인식과 사고의 길을 새로 낸다. 멍은 사이를 벌리고 여백을 만든다. 수많은 여백 사이에 상상을 끼우고 창의적인 에너지로 새로 태어난다. 몰입의 문을 열고 억압받지 않는 무한한 능력을 자라게 한다.


멍한 비움과 없음의 슈와schwa가 연합하여 상상력과 창의력의 문을 열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멍 사이의 지끈한 인식들 슈와schwa에 맞서며 요란하게 바빴던 때를 되새긴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답답한 마음과 몸을 바로 하려 애썼던 기억이 겹친다. 방해의 순간은 두통으로 쉽게 이어진다.



어떤 작가의 멍 때릴 시간에 슬쩍 올라타보는 하루다.


그의 몰입과는 또 다른 나만의 흐름에 집중한다. 나의 비어 없다는 흔적은 심오한 멍을 지나 나의 생계와 생존을 쥐락펴락하는 진한 몰입의 시리즈로 수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