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완 Jul 18. 2023

여전히 번역은 ing

반백조를 버티게 해 준 힘  

영어 번역은 숨고를 통해서 시작했다고 언급했었다. 첫 고객은 개인이었고 영한 영상번역이었다. 개인들은 영문이력서, 논문초록, 학교 과제 등의 번역 요청 건이, 회사에서는 내부 문서나 회사 소개서 등의 번역 요청 건이 소소하게 들어왔다. 번역을 시작하고 두 달 뒤에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사업부에서 번역이 필요하다며 연결을 해 주었고, 브이로그 자막 등 여러 건의 번역을 진행했는데 번역 단가를 형편없게 쳐줘서 봉사했다 셈 치고 그만두었다. 편의점 알바가 차라리 나을 판이었다. 그래도 운 좋게 정기적인 일감을 주는 기업 고객 두 군데가 생겼다. 한 회사에서는 소셜 플랫폼에 대한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한영 번역을 맡겨주셔서 매일 평일 기준으로 오전에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고 다른 회사에서는 내부 뉴스레터와 프로젝트 소개 문서를 매달 여러 건씩 맡겨주었다. 두 군데의 기업 고객 덕분에 번역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매달 50만 원~70만 원 정도의 꾸준한 수입이 생겼다. 해가 바뀌고 나서는 단가를 협상해서 매월 평균 70만 원~100만 원 이상의 고정 수입이 생겼다. 그 외에도 숨고 바로견적 서비스를 이용해서 계속 다른 번역 일감도 수주했다. 바로견적 서비스는 자동으로 발송되며 수수료가 나가기 때문에 바쁠 때는 중지 버튼을 누르면 견적서가 발송되지 않는다. 


번역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는데 나는 영한 번역보다 한영 번역에 강했다. 회사 다니면서도 번역을 알바로 해볼까 하는 생각에 번역업체에 지원했다가 영한 번역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접었다고 이전에도 언급했었는데 한영 번역은 다른 이야기였다. 숨고를 통해 약 1년 정도 번역 경험을 한 뒤에 번역업체에도 프리랜서 번역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한영 번역은 테스트 합격률이 높았던 것이다. 번역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플리토 앱에서도 영한 번역은 떨어지고 한영 번역으로 붙었고, 보이스루와 글나무에도 한영 번역으로 합격했다. 웹툰을 좋아해서 웹툰 번역으로 유명한 아이유노에도 지원했었는데 떨어졌었고 최근에 다시 지원했는데 이번에는 붙었다. 작년에는 번역을 나름 열심히 해서 300만 원 정도의 수입도 들어왔었다. 물론, 이 때는 운 좋게도 한 기업 고객에서 긴급 번역을 요청해 단가를 엄청 세게 쳐줬던 경우의 수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했던 번역은 대부분 문서 번역이었는데 번역할 때는 집중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직장인이 하루 8시간씩 평일 내내 일하는 것처럼 번역에 시간을 전부 할애할 수는 없다. 직장인처럼 풀타임으로 몇 달 번역했다가는 병원에 실려갔던지 좀비처럼 집에 뻗어있던지 했을 것 같고 삶의 질이 너무 떨어졌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프로젝트로 금융 관련된 문서 번역을 했는데 오후 내내 번역을 해야 할 정도의 양이었고, 매일 오전에는 소셜 플랫폼 뉴스 모니터링 번역을 하고 있었기에 거의 하루종일 번역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금융 프로젝트는 단가가 낮은 걸 알고도 경력 상 참여했었는데 막상 번역을 하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돼서 편의점 알바 수준도 안 되는 급여를 받는 꼴이었다. 그래도 번역 문서의 퀄리티가 우선이다. 실력이 허락하는 선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납품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프로젝트 중간에 번역을 더 맡아줄 수 있냐며 연락이 왔고 지금 단가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원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맞춰서 올려주었다. 투입한 노력과 시간에 비해 급여는 아쉬운 수준이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속도도 빨라질 테니 같은 단가여도 시간을 단축한다면 이득이 될 것이다.  


번역도 여기저기서 주는 대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어느 정도 좁혀서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 속도도 빨라지고 퀄리티도 높아진다. 당연히 단가도 협상해서 올릴 수 있다. 뭣도 모를 때는 나도 출판번역을 생각했었고 연습 삼아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누구나 무료로 도서를 읽을 수 있는 웹사이트로 저작권이 만료된 미국 원서가 많음)에서 번역을 해보려고 했는데 영한 번역이 취약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한영 번역에 집중하고 있고 한영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숨고나 플리토 등의 앱은 활용하고 있지 않다. 전업으로 할 거면 번역 업체를 통해 테스트를 보고 프리랜서 계약을 여러 군데 맺어 두는 편이 낫다. 그리고 문서 번역만 하면 뇌가 너무 피로하고 재미없어서 지금은 지양하고 있고, 영상 번역과 웹툰 번역 분야로 옮기려고 영화를 쉐도잉 하며 생활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합격한 아이유노에서 곧 웹툰 번역을 시작할 것 같다. 올여름에 한 달간 해외에 있을 예정이라 적극적으로 번역을 못하고 있는데 가을부터는 다시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헤드헌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