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여정은 항상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마 가족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의 관계는 그만큼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난이라는 생존의 시대에서 자란 부모(할머니?) 세대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모르고 자랐다.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이모는 47년생으로 3살 때 난리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셨다. 할머니와의 피난길에서 동생을 잃었지만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몰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울로 돌아오셔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사셨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운명은 장녀인 이모의 꿈을 앗아갔다. 이모는 중학교에 갈 수 없었다. 그 후 이모가 겪으신 우여곡절과 비극적인 삶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운명을바꿀 수 있었던 길도 있었다. 이모가 선택한 길은좋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이모가 까마득한 과거에 내린 결정이 아직도 이모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모가 낳은 아들, 사촌형은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형과 함께 이모 또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모는 사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의 생떼를 못 이겨 같이 살아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자 자격 신청에서 탈락하셨다. 이모가 단호하게 형을 내쳤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내친다면 이모는 괴로운 삶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마 내가 보기에도 절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모에게 마지막 남은 집착은 형이다. 이모는 형을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에 와서 엄마랑 대화할 때 맨날 볼멘소리를 한다. 형을 원망하는 소리를 하신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 형을 강하게 원망하는 만큼 이모는 형을 사랑하고 있다. 올바르지 못한 사랑은 상처를 준다. 형도 이모에게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이모는 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가끔씩 이모의 과거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느꼈다.
그래도 이모는 착하다. 가난하지만 여유가 날 때마다 내게 세뱃돈을 주시고 항상 진심으로 칭찬해 주신다. 안타깝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해피 엔딩을 내려주지만은 않는다. 이모가 다른 이모들처럼 부자였다면 어땠을까? 인생이 잔인한 이유는 결국 사람은 가난에 시달려도 사랑과 가치를찾기 때문이다. 이모는 형을 절대 버릴 수 없다. 사랑이라는 굵은 실이 그들을 떨어지지 못하도록 잡아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