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성윤 Sep 09. 2024

잔혹한 운명: 사랑의 다른 의미


인생이라는 여정은 항상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마 가족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의 관계는 그만큼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난이라는 생존의 시대에서 자란 부모(할머니?) 세대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모르고 자랐다.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이모는 47년생으로 3살 때 난리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셨다. 할머니와의 피난길에서 동생을 잃었지만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몰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울로 돌아오셔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사셨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운명은 장녀인 이모의 꿈을 앗아갔다. 이모는 중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이모가 겪으신 우여곡절과 비극적인 삶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운명을 바꿀 있었던 길있었다. 이모가 선택한 길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이모가 까마득한 과거에 내린 결정이 아직도 이모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모가 낳은 아들, 사촌형은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형과 함께 이모 또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모는 사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의 생떼를 못 이겨 같이 살아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자 자격 신청에서 탈락하셨다. 이모가 단호하게 형을 내쳤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내친다면 이모는 괴로운 삶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마 내가 보기에도 절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모에게 마지막 남은 집착은 형이다. 이모는 형을 사랑한다. 사랑하니까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에 와서 엄마랑 대화할 때 맨날 볼멘소리를 한다. 형을 원망하는 소리를 하신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 형을 강하게 원망하는 만큼 이모는 형을 사랑하고 있다. 가족은 서로 상처를 준다. 형도 이모에게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이모는 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가끔씩 이모의 과거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느꼈다.


그래도 이모는 착하다. 가난하지만 여유가 날 때마다 내게 세뱃돈을 주시고 항상 진심으로 칭찬해 주신다. 안타깝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해피 엔딩을 내려주지만은 않는다. 이모가 다른 이모들처럼 부자였다면 어땠을까? 인생잔인한 이유는 결국 사람은 가난에 려도 사랑과 가치를  때문이다. 이모는 형을 절대 버릴 없다. 사랑이라는 굵은 실이 그들을 떨어지지 못하도록 잡아당기고 있다.



운명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원망해도

보이지 않는 실이 그들을 끌어당기네

같이 있어봐야 눈물만 날 뿐

왜 떨어지질 못하는


나이를 먹어도 부모와 자식은

여전히 부모와 자식

부모는 사랑을 주고 아이는 사랑을 바라네


사랑이 인생을 망가뜨렸어도

사람들은 결국 사랑만을 원하지

원망은 곧 사랑의 다른 이름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네




이전 08화 관료들이 결정하는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