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회귀분석을 처음 배웠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게 말이 되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함수가 아니다.세상은 방정식에 가깝다. 방정식도 함수가 되기도 하지만, 연립방정식으로 보는 세상은 엄청 복잡하다. 그러면 어떤 결론이 나와야 할까? 세상을 숫자로 보기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난 현상학적 접근이 이론적 접근보다 문제해결에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복잡한 방식을 고수하든지 간에. 그러나 사람들은 편리하고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한 숫자로 세상을 전부 파악하려고 한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이다.
숫자는 세상을 전부 표현할 수 없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텍스트와 숫자가 세상을 나타내는 원리는 동일하다. 숫자라고 더 신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숫자로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믿는 멍청이들은 폭력을 행사한다. 시험 점수는 업무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다. 시험점수가 의미하는 것은 해당 시험을 잘 봤다는 의미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이윤은 과거의 함수를 따르지 않는다. 주가는 어제와 다르다. 이들을 완벽하게 나타내는 함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이 회사의 가치를 모두 평가하고 있지 않다. 인텔, 맥도널드, 보잉, 삼성 등이 경쟁력을 잃은 이유도 그와 같다. 회계연도 하나의 매출, 이윤, 지출 등은 회사의 경쟁력을 전부 나타낼 수 없다. 숙련된 기술자가 갖는 노하우와, 동기를 부여하는 기업 문화, 사장의 리더십 와 같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회사의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숫자와 회계가 가지는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비전과 혁신만으로는 회사를 경영할 수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숫자는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비유하고 표현하는 언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눈 감은 채로 코끼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만 고수하는 순간 숫자가 주는 폭력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지 형식이 아니다.
이 글을 발행하려던 참에 삼성전자의 왕좌가 무너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술적으로 sk하이닉스와 대만 tscm에게 밀리기 시작하여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언론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면 경직된 조직문화, 각자도생식 경쟁, 기술팀의 약한 발언권 등이라 한다. 재무와 경영을 전공한 임원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니 기술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고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 역시 숫자로 조직을 이해하는 방식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이다. 전문성과 과도한 업무량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수로만 세상을 파악하면, 결국 이면에 나타난 것들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애초에 숫자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