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참 바보 같은 분이셨다. 가족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활력이 강한 신여성이셨다. 여성의 몸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되게 일하셨다. 6남매를 먹여 살리셨다. 1950년대 시대가 가져오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할머니는 항상 인간성을 잃지 않으셨다. 할머니를 바보 같다고 한 이유는 그분은 누구에게든 퍼주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에 맞지 않는 어떤 사람이든 신뢰하는 그런 분이셨다. 현실은 잔인하다. 착하고 미련한 사람에게 삶은 자비가 없다. 전쟁통에 죽어버린 어린 딸, 할머니의 다리를 절게 만든 미군 부대가 일으킨 교통사고, 장남 양아치 아들의 뒷수습.. 그 뒤에도 할머니가 겪은 비극은 수없이 많다. 내가 들은 것만 해도 고생길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편히 쉬질 못하셨다.
80세가 넘으신 할머니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나를 항상 돌봐주셨다. 나는 엄마보단 할머니에게 안기곤 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부모님은 내게 정서적인 사랑을 주진 못하셨다. 내게 진짜 부모님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왠지 모르게 나를 정말 사랑하셨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건강이 악화되고, 중환자실에서 마지막까지 나를 기다리시고는 며칠 뒤 돌아가셨다.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단지 내가 손자이기 때문에 그런 건 줄 알았다. 어떤 할머니든 손자를 자식보다 사랑하기 때문일까.
1년 전에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큰 이모의 생애를 인터뷰하여 과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마냥 좋아 보이던 할머니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지옥에서 살고 계신 것이었다. 할머니도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장남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 취급을 받던 할머니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셨다. 집에서 쫓겨나 아이를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우리 집에서 지내셨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집착이었다. 할머니가 삶을 계속 살아가시는 이유는 나를 기르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성숙한 사랑이 아니다.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내게 상처를 주었지 않은가. 나는 언제나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세상은 할머니처럼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난 언제나 할머니를 찾고 있었다.
이제는 성숙한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희생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방임도 아니다. 성숙한 사랑이란 균형이다. 절제된 사랑 속에서 아이는 독립심과 안정감을 갖는다. 어린 시절에 얻은 경험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나도 이제 성숙한 사랑을 추구한다. 집착도 무관심도 아닌 독립과 애착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언제나 내 가슴 한 켠에는 할머니의 집착이 남아 있다. 가끔은 미성숙한 사랑이 그립다.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