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의 일기 No.5]
나는 세 자매 중 첫째다.
엄마는 옛날부터 '세 명'이 있어야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서 셋을 낳았다고 했다. 뭐 , 사실 별로 그런 계획으로 낳은 것 같지는 않지만 엄마가 우리를 셋으로 낳아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는 않다. 물론, 없는 집의 첫째는, 그것도 딸인 첫째는 별로 행복하지는 않다. 아들인 첫째가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가지되 현재의 현실로부터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는 것과 달리 없는 집의 딸인 첫째는 현실과는 떨어질 수 없다.
우리 세 자매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모님이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도 되는 줄 알 법한 진로를 선택해 살고 있다. 하나는 연령 대비 학벌 대비 평균 급여도 못 버는 한국어 강사, 하나는 뜨는 것 같지만 그렇게 보일 뿐인 인문학 분야에서 동분서주 하고 있는 공부하는 사람, 하나는 프리랜서 그림 작가.
나는 강사 벌이가 시원치 않아 원데이 클래스다 소셜 러닝이다 다른 푼돈 벌이를 찾아 헤매고 매달 과외 시수가 줄까 봐 벌벌 떤다. 공부하는 동생은 차비 빼면 별로 남는 것도 없겠지만 먼 거리에 있는 대학으로 강의를 나가고 그나마 취업과 관계 없는 인문학 수업은 다음 학기, 그 다음 학기를 기약할 수 없다. 그래도 부지런히 책을 쓰고 관련 특강을 하고 자신의 신념을 알리기 위해 도시의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림을 그리는 동생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의뢰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또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그 다양성에 놀랄 정도로 의뢰인에게 맞춰 그림을 그려 주는데 그렇다고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도 않고 디테일이 부족하지도 않은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자신의 그림을 MD로 판매할 수 있는 루트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게을러 보이지만 바쁘다.
며칠 전 동생이 친구와 디자인 한 에코백을 텀블벅에 올렸다. 요즘 재정 형편이 좋지 않아 다량을 사 줄 수 없는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단톡방 여기저기에 가지고 있는 여러 SNS 계정에 링크를 올리고 홍보를 부탁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셋 다 이렇게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일을 하지 못하고 매달 이달의 수입은 어찌 될까를 걱정할까. 어떻게 이렇게 한 집의 세 자식이 모두 한번의 취업을 통해 이후 몇 년의 생활을 기약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매번 자신을 증명하고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적더라도 그나마라도 따내서 최선을 다해 해내는 직업을 가졌을까. 과외 사이트를 헤매고, 원데이 클래스를 개설하고, 알음알음 특강을 다니고, 글을 기고하고, 자신의 작업을, 능력을 남들에게 알리고 판매하기 위해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만들고 민망함에 지인들에게 제대로 홍보도 못하고. 거절당하고 거부 당하고 좌절하고. 매번 서로를 걱정하고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아마 지쳤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직업의 불안정성과 비합리성에도 지치고 걱정하는 일에도 기대하는 일에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긴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도 습관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나와 자매들의 선택이 잘못 됐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그들의 다양한 직종을 받쳐 주지 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겠지. 갈수록 그런 직종과 노동이 늘어나는 것만 봐도.
그래도 자매들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은 그리고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