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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달 Sep 14. 2019

위험한 행로

_출발 전, 서울

#도발    

퓨즈가 끊.어.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이상 징후는 4년 전부터였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고 그로부터 10년 전의 삶으로 곤두박질칠 무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불청객. 마흔 무렵 얻은 쌍둥이 아들이 마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해였다.

쟁쟁쟁 매미 소리 때문이었을까, 고향 초등학교 운동장 그늘 우람한 단풍나무 아래 왁자지껄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프로펠러처럼 생긴 열매를 누가 더 멀리 날려 보낼지 내기 중이었다. 마침 차례가 된 내 미니비행기는 파란 하늘을 한참이나 뱅글뱅글 곡예하고도 떨어질 요량이 없었다. 퍼뜩 뜨거운 해에 눈을 감았다 손차양한 후 다시 눈을 떴다 싶을 때, 꿈 속 비행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안방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대략 반년이 지난 어느 아침에 발병한 어지럼증으로, 술에 잔뜩 취한 사람마냥 오른쪽 왼쪽 갈지자를 그어대며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짐작대로였다. 평형추 역할을 하는 귀의 돌이 빠졌다. 당장 이석증 치료를 위해 간이침대로 옮겨졌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고글 따위를 둘러쓰자 주술사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육신은 사육제 희생물 같았다.   

몇 차례 뒤로 넘어뜨리면 그러는 대로, 의사의 손에 내맡겨진 몸은 오른쪽 왼쪽 고개를 깊이 돌려 교정을 거친 후에야 겨우 중심을 잡게 되었다. 물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닥을 헛디디듯 개운치 않은 기분과 이 때문에 토할 듯한 울렁증은 이후로도 2~3주의 시간이 까마득히 흐른 다음에야 말끔히 사라졌다.


그렇게 발발한 이석증은 해가 갈수록 잦아졌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이석증은 질주하던 삶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그다지 여유로울 수 없던 차에 생리적 현상에 의한 삶의 단락을 마주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나이를 셈해 보곤 했다. 갱년기가 코앞이었다.

즈음 친구네 한의원을 찾아갔다. 에너지가 방전됐으니 잘 먹고 잘 자면 낫는댔다. 하지만 젊은 날 겪지 못했던 불면증에 밤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밤바다 집어등 켜지듯 머릿속이 환해지고, 빛으로 달겨드는 물고기처럼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 걱정에 소소한 집안 사정이 몰려왔다.

이석증은 제 몸을 아끼라는 신의 메시지였다. 그러므로 신이 주신 몸을 함부로 한 채무라도 갚듯, 당장의 일을 줄이고 쉬엄쉬엄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당장 직장을 관두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혹 이명과 같은 전조 증상이 닥치면 끼니마다 영양식으로 제 몸을 대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센 풍랑에 배 바닥까지 훑는 듯한, 구토를 동반한 어지럼증이 발병했다. 하필 오래도록 계획한 여행을 앞두고 이런 일이…. 속절없이 나이 듦을 한탄하고 신을 원망하며 달력을 뒤적였다. 한 달 남짓, 그것도 나 홀로 자유여행을 계획했는데 이 일을 어쩐다? 나이가 짐이 될 차에 어쩌자고 낯설고 물선 저 너머 길 위의 삶을 결심했을까, 후회까지 덮쳤다.  

구태의연한 아이들 걱정도 기습했다. 아직 엄마 젖무덤을 만지작거리다 잠드는 쌍둥이. 이 아이들을 집안일 도통 손 익지 않은 남편에게 짐짝 부리듯 던져놓고 떠나도 될까? D-Day 7일 전, 출발 일에 그려진 동그라미가 눈앞에서 뱅그르르 돌았다. 엄마의 부재를 원망하듯 때마침 쌍둥이는 감기를 된통 앓고 있었다.   



#망설임

 “한 달씩이나? 애들은 어쩌려고요?”

“아저씨는 괜찮다 하세요?”

“시댁에서는 뭐라 하지 않으시고요?”

작정한 안식휴가를 염두하며 수개월 전 회사 일을 조율할 때, 하나같이 휘둥그레 남의 집안을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 연휴 가족 여행을 계획한 것도 아니요, 엄마이자 아내이자 맏며느리 역할을 철지난 옷 버리듯 내팽개치고 혼자 떠나는 마흔아홉 아줌마가 제정신으로 보일 리 없겠다.

그랬다. 그때의 삶은 간신히 이 칸을 집어넣으면 다른 칸이 튀어나오는, 뒤죽박죽 이가 잘 맞지 않는 서랍장 같았다. 성급하게 돌아오는 달마다의 대출 이자 납기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 격이라, 컴퓨터 처박힌 이력서를 복구하고 소싯적 한 줄에 아슬아슬 올라탔다. 재취업에 성공하고 보니,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를 저녁 늦게까지 돌볼 데가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을 맡겼더니, 이번에는 회사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1년 내내 넘쳐나는 일감으로 책상은 늘 북새통이었고, 마감에 쫓겨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순식간에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자정 무렵 사무실을 나서는 일도 다반사여서, 밤의 사막 깊은 모래를 빠져나가듯 무겁고 차가운 나날이었다.


삶의 시소가 한쪽으로 기울자, 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석증이 발병했고, 가정에도 이런저런 균열이 생겼다. 온힘을 다해 달렸건만 결국 비루한 삶이라니, 제정신일 리 없었다. 직장생활도, 가족과 부대끼는 시간조차도 강파르게만 여겨졌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되는 걸까. 잠깐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지만 가속도가 붙은 일상을 멈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거기, 한참 터울 진 친언니를 빼박은 얼굴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은 바야흐로 반 백 살을 향하고, 동안 귀밑 흰머리가 뭉텅 자랐다. 이제 정말 천천히 숨을 골라야 할 때,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지내고 달력을 찢듯 하루하루 지워가다 보면 언젠가 나는 사라질지도 몰라!

결심이 서고 나니 일사천리였다. 옴팡지게 휴가를 그러모으고 명절 연휴에 이어 안식휴가까지, 약 한 달 간 휴가를 다녀오겠다 회사에 선포했다. 남의 집 대문 안을 염려하는 반응과 달리, 시댁을 비롯한 가족은 위태한 호흡을 달래듯 나의 부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틈을 갖기로 하자 삶의 결은 금세 달라졌다. 짬짬이 대강의 일정을 짜고 비행기 티켓을 끊은 후 지역마다의 호텔을 예약하고 현지 교통편과 지역 정보까지 두루 알아봤다. 코르셋처럼 꽉 조였던 일상의 언저리 후크 하나 풀었을 뿐인데, 콩시루 같은 출근길에서도 내 안의 시간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꿈꾸던 시간에 닿기 직전, 이곳에 남겨질 사람들을 염려하며 잠깐 틈을 조였다. 빈자리 티 나는 걸 당연시하면 될 것을, 들숨날숨 균형을 잃고 뇌관을 건드렸으니 신이 보낸 손님이 당도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번에는 토하기까지 했네요.”

“죽을병은 아니니 너무 염려 마세요. 이전에도 예후가 좋았잖아요.”

잦은 이석증을 앓던 대학동기 어머니(!)에게 소개받은 어지럼증 전문 병원의 여의사 말이었다.

“그럼 여행은 가능할까요? 터키를 경유해서 크로아티아까지, 첫날 14시간 비행이 마음에 걸려요.”

“1주일밖에 안 남았네요. 지금 오른쪽 귀 전반 세반고리관 이석이 생긴 데다 기압차로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요. 아무래도 장거리 비행은 무리실 텐데….”

사형 선고는 면했지만, 입원을 권고 받았다. 하지만 퇴원 후 여행이라니 가당찮다. 이석 교정과 도수 치료를 겸해 매일같이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하고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빵, 빠앙! 자동차와 버스 경적이 뒤엉키는 도로 이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다가왔다 흩어지는 사람들의 물결이 제법 거칠었다.

천천히 약국으로 방향을 돌려 걷자, 의도치 않게 떨어졌을 가을 잎이 발아래에서 뭉개졌다. 꽃 피던 봄에 품었던 꿈도 낙엽마냥 툭 저버리는 걸까. 그때 부르르, 핸드폰이 울렸다. 회사에서 보낸 문자였다. 가슴으로 다시 사막의 모래바람이 일었다.   

  


#결심

“환불 수수료를 물어야 된다고요? 진단서를 떼서 보낼 참인데요?”

꿈을 접는 데도 대가가 필요하다니, 하는 수없이 수화기 너머 타인에게 병명을 또록또록 밝혀 말했다. 테러범의 인질극을 경고하듯, 비행 시 발발할지도 모를 증상을 위험천만하게 전하는 내가 우스꽝스러웠지만.

“손님, 어디 아프세요?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타신 걸 보니 어지럼증이신가?”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기사 아저씨는 아예 눈길을 고정하고 얼굴을 훑었다. 나이를 어림하는 모양이었다. 비행기 발권 취소에 따른 항공사의 답변을 다음 날 다시 듣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을 때에야 비로소 벌거벗겨진 느낌이 들었지만, 엎질러진 물. 참견하고 싶어 이죽대는 기사님의 입을 보다 못해 한숨처럼 “네.” 하고 답을 토하자마자 말이 섞였다. 아니, 그쪽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차저차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며 택시를 몰다 보니 어느덧 70세, 갑자기 막내 여동생이 암에 걸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게 1절이었다. 악다구니 쓰며 살 게 아니다 싶어 가족과 터키와 베트남 중국 등을 여행 다니다 보니 택시 안 구설수에 오르는 세상보다 훨씬 살 만하더라는 게 2절, 죽을 때까지 택시몰이 간간이 여행으로 간하며 맛나게 살겠다는 게 기나긴 3절이었다.

‘여행을 위해 건강해야 한다.’는 건지, ‘건강하니 여행도 하더라.’는 건지. 와중에 급히 연락해둔 친구의 한의원은 하필 추석 대목을 맞은 시장 한복판, 밀리는 차량에 진짜 인질로 잡힌 느낌이었다.

“여행 가면 싹 나을 거라니까요.”

변사의 흥에 반응을 보이지 않던 관객에게 택시비를 추렴하기 미안했던지, 아저씨는 한참 잊었던 내 형편에 덕담 한마디를 건넸다. 하지만 한의원 문을 열자마자 감초인지 뭔지 한약재 달이는 냄새와 더불어 불편한 몸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 표정에 택시 아저씨의 응원가는 금세 잊혀졌다.


“소화불량에 기혈이 어쩌고저쩌고…. 이 몸으로 어디를 간다고?”

울룩불룩 살을 뚫고 혈을 통하겠다며 침이 놓일 때마다, 내 오랜 꿈은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마침내 파이프 침대 커튼이 닫히고, 한 차례 시끌벅적한 소동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한 편 공포영화도 아니면서, 핀헤드처럼 머리 사방 침을 꽂은 채 눈을 감았다. 한의원으로 오던 길 유난히 펄떡이던 수유시장이 펼쳐졌다. 어깨를 부딪히며 급히 지나던 사람들은 평상시보다 수북한 좌판을 따져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곳에는 큼직하니 때깔 좋은 사과와 배와 감이며, 육지로 막 오른 듯 비늘 쨍쨍하던 참조기와 병어와 민어 등이 사람만큼 북적대고 있었다.

떠날 시간에 몰두하느라 정작 머무는 곳의 때에 대해 살필 겨를이 없었다. 추석이 코앞이었는데도 말이다.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대목 납품을 맞추느라, 연휴 전 일거리를 마감하느라 서두는 사람들. 예외 없이 축제를 맞은 사람들은 친지의 선물을 마련하고 빳빳한 용돈을 챙겨 간만 고향을 내려갈 생각에 한껏 흥이 오른 표정이었다.

이맘때 홀로 여행에 달리 가슴 부푼 아줌마를 바라보는 세상 시선이 곱지 않은 건 분명했다. 제멋대로의 사연을 만들어 쑥덕대는 동료도 있었다. 아무렴,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런데 아프고 보니 죄다 맥없어졌다.

그래도…, 이대로 여행을 포기하면 다시는 길을 나서지 못할 것 같아. 병에 사로잡히고 아내와 엄마와 며느리라는 역할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다 좌판 늘어진 생선 신세가 되겠지. 오오, 이 얼마나 위험한 행로인가. 그에 비하면 이번 비행은 더없이 안전지대로 이끌 것만 같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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