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 그 알량한 케이크 조각이 달팽이 등껍질 모양 잇대어진 계단을 내려다봤다. 아찔했다. 차라리 진짜 케이크라면 야금야금 먹어치우기라도 할 텐데, 경사진 계단이 되레 캐리어를 거꾸러뜨리고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쩌렁쩌렁한 체코어는 덩치 좋은 두 관리인의 존재를 알려줬지만, 새벽의 까무러칠 소란을 떠올리면 도와 달란 말이 영 나오질 않았다.
점점 조심성을 잃어가는 새벽 소음에 방문을 열었을 때, 한차례 시찰을 마친 건넌방 커플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문을 닫았다. 계단 그 아래쪽으로는 삑삐거덕 계단을 오르내리고 쾅쾅 현관문을 여닫으며 자는 사람 다 깨울 양 목청껏 대화를 나누는 두 여자가 보였다. 펜션 관리인들의 일과가 지나치게 일찍 시작되었을 뿐, 큰일이 난 건 아녔다.
그래도 그렇지, 해도 잠든 이 마당에 한마디 보탤까 어쩔까. 그때 눈이 마주쳤고, 아래쪽에서 먼저 "굿모닝"이랬다. “새벽 5시예요.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입이 떨어지기 전에 손을 마주 흔들었다. 오래된 마을에서 함께 늙어갈 저 여인들의 바지런함 때문에 이 집이 낡아 버려지지 않고 객을 품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굿모닝~, 어딜 가나 밥벌이는 소란하기 짝이 없구나.
그래도, 그래도… 참다 못해 거리로 나왔더니, 숙소 밖은 숫제 무음에 가까운 정적의 아침. 간혹 텅 빈 거리로 낙엽 구르는 소리와 함께 묵은 생각이 몰려왔다.
집을 떠난 지 열흘하고도 이틀째, 여행의 중간 기착지인 프라하로 떠나는 날이었다. 예전처럼 이번에도 체코 프라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두고 꽤나 망설였다. 두 도시는 마치 <고독한 기타맨> 하면 <불청객>, 자우림 하면 크랜베리, 고흐 하면 고갱, 임화 하면 백석, 홍상수 하면 고레에다 히로카, 짜장면 하면 짬뽕 하는 식이었다. 결국 둘 다 보고 싶었단 얘기다.
지극히 사적인 선택지 중 어쨌거나 프라하가 살아남았다. 청년 시절 교사 발령을 앞둔 고향 후배와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겨우 하루를 머문 프라하였다. 그때 점찍어둔 마리오네트 인형이 떠올랐다. 남겨진 것은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가 곱절이나 나이를 먹었듯 그 도시의 강산도 두어 번은 바뀌었을 텐데, 까를교 지나 어느 이름 모를 가게를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만.
크건 작건 기념품 하나도 사지 못하게 했던 후배는 공동 경비 관리자였다. 그 친구와 여행 설계자였던 나는 매일같이 길 위에서 이과대와 문과대만큼의 물리적 거리를 겪었다. 선배였던 내가 좀 더 품을 걸, 지난날을 후회해도 소용없다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산악열차를 타고 오른 스위스 융프라우를 함께 내려오고,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자의 길을 나란히 걷고, 바르셀로나에서 플라멩코를 보러 갔다 디스코를 췄던 추억만큼은 그녀의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기도 했다.
여행은 취향의 구두합의로 완주했지만, 삶의 결이 다른 두 사람이 오래도록 알고 지내긴 수월치 않았다. 서로 다른 괄호 속 수식이 되어 상관 않고 살아가는 두 여행자 중 한 사람만 다시 여행길, 숙소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아슬아슬 계단을 다 내려와 1층에 팔랑대는 게시판 포스트잇을 읽었다.
“I'll remember you.[(당신의 불친절을) 잊지 않을게요.]”, “I'll want to come back here![(동화 마을에 걸맞는 다른 숙소를 찾아) 다시 오고 싶네요!]”, “Thanks for your kindness.[(너무 일찍 깨워준) 당신의 친절엔 감사해요.]. 새벽 소음에 분풀이하듯 오역하다 피식 웃었다. 나이가 든다고 절로 아량이 생기는 건 아녔다.
#2 굿 럭
앳된 청년의 호위를 받으며 어제의 CK 셔틀에 올랐을 때, 뒷자리 아저씨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전부여서 피크닉 가듯 호젓한 기분, 들뜬 건 청년 기사도 마찬가지였는지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보니 타일러의 ‘Holding out for a hero’가 울렸고, 치지지직, 영화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의 주연배우 다이안 레인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이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I need a hero, I’m holding out for a hero ’till the morning light.~”
어라, 허밍하는 목소리가 또 있네.
“혼자 여행중이니?”
“응.”
“원더풀! 나도 혼자 여행 중이야. 반가워. 매트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유진이야.”
올드 팝송을 허밍하다 보면 매끈하게 그을린 중년 남성과도 허물없이 말을 트게 된다.
“프라하는 처음이야?”
“아니, 음, 전에 와봤어.”
햇수를 헤아리기엔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거니와, 흰머리 나는 나이임을 대놓고 떠벌리는 것 같아 대충 얼버무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건 젊을 때나 부리는 호기였다.
“난 액티비티 여행 프로그래머야.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일 때문에 유럽에서 산 지 꽤 오래됐지.”
“그뤠잇! 난 남한에서 왔어. 에디터인데, 안식년을 맞아 홀로 여행 중이야.”
“리얼리? 멋진 직업을 가졌구나.”
“너야말로…. 에디터는 알고 보면 극한 직업인걸.”
통상 야근에다 마감이면 종종대는 마음으로 집안일은 거들떠볼 새도 없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작가들과 거래처와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일정을 맞추지 못하는 후배들을 닦달하느라 못된 마녀가 되는 걸 어떻게 제 입으로 말하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견디다 못해 떠나온 홀로 여행을, 지나가는 길동무에게 굳이 들키기 싫었다.
팔의 알통을 세워 보이는 매트는 체코에서도 스카이다이빙, 열기구 체험, 보헤미안 스위스 국립공원 트레킹 등이 있다며 꼭 즐겨보라 권했다. 트레킹에 관심은 많았지만 일정이 짧고 이석증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는 얘기를, 또한 스치는 인연이라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않았다. 그때 백미러 속 이날의 기사 온드레이아와 눈이 마주쳤다.
“너는 어때?”
“뭐가?”
올드 팝송과 함께 신났던 고속도로에서 낙석이라도 맞은 듯한 눈빛으로 백미러 승객들을 쳐다보는 온드레이아.
“여행자를 데리고 오가다 보면 너도 종종 떠나고 싶을 것 같아.”
매트의 감상이었다.
“그러게. 매번 고속도로를 달리니, 여행자로 아무데나 떠돌고 싶지?”
운전을 못하는 내 생각이었다.
“글쎄, 여기저기 쏘다니는 건 이 일을 하며 충분히 그러고 있어서…. 프라하는 매번 공사 중이라 복잡하기만 하고, 난 내 고향에서 지내는 게 행복해. 운전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돈도 그럭저럭 벌고 있으니, 매일매일 문제없어.”
“원더풀!”/“그뤠잇!”
나른한 봄날 같던 고향의 삶으로부터 일찌감치 도망치려했던 나로서는 안드레이아가 진심 대단해 보였다. 무엇을 바라 서울로 떠나왔던지, 달리고 달려도 목은 마르고 주머니는 늘 부족했는데…. 탯줄 있던 자리가 근질근질한 쉰 무렵에서야 근거리 소소한 행복이 중요함을 깨달은 나에 비하면, 한참이나 현명한 젊은이였다.
“에브리싱 이즈 오케이?”
안델역 근처에서 '굿 럭'을 외치며 떠난 매트 외 온드레이아와 둘만 남은 CK 셔틀 버스가, 포크레인과 천공기를 피해 프라하 중심가를 곡예하듯 달릴 때였다. 호텔을 찾아 잠시 헤매는 건 오케이였지만, 고향으로부터 3시간 떨어진 대도심에 들어서자 대번 라디오 볼륨을 낮추고 희번득 거리를 살피며 핸들을 바짝 그러쥐는 안드레이아가 몹시 걱정됐다. 게다가화장실이 급했다.
“스톱!”
호텔을 발견하자마자 예약비 외 잔금을 챙겨둔 봉투를 건네고 부리나케 호텔 화장실로 달리던 중, 팁으로 주려던 코로나가 짤랑거렸다. 집 떠난 강아지마냥 쩔쩔매던 안드레이아가 귀향길 목 축일 정도의 푼돈, 한시바삐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그를 붙잡지 않는 게 좋겠지.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는 연륜을 쌓으려면 돌아가기도 하고 허튼 길도 가봐야지. 안드레이아라면 잘해낼 것 같았다.
#3 변화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
이른 체크인을 수락한 호텔 매니저가 쓰리베드룸으로 업그레이드까지 해주었다. 칵테일파티도 무난할 룸에 헤벌쭉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쪽은 바깥옷 입고 누울 침대로 정하고 또 한쪽은 진짜 잘 때 누울 침대로, 나머지 한쪽은…. 그래놓곤 아무 침대에나 벌러덩 누웠다. 넘쳐나도 나눌 사람이 없으면 더러 무감해진다.
부푼 기대와 달리 얼렁뚱땅 도착하고 만 프라하,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호텔에서 받은 지도는 보헤미아 왕국의 천 년을 지탱한 도시답게 익히 알려진 고색창연한 스폿이 표시되어 있었다.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3일간 볼거리를 주도면밀히 계획하다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두 번째 만남이니 느긋하게, 이 도시 어디와 해후해도 좋을 테야.
구시가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된 두 시간짜리 버스 투어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만석의 버스는 정각마다 돌아 나오는 12사도 인형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진작 붐볐던 구시청사 천문시계탑을 거쳐, 맞은편 80m 상당의 두 개 뾰족탑이 인상적인 틴 성당을 지났다. 그 옆으로 미색 로코코 양식의 골츠킨스키 궁전과 유려하게 뻗은 기둥마다 당초 문양 아로새겨진 성 니콜라스 성당도 지나고, 이제 유대교회당. 느리다면 느리고 빠르다면 빠르게 공화국 광장과 오베츠니 둠, 화약탑, 아직도 공사 중인 국립박물관을 순차적으로 지나더니 사연 많은 바츨라프 광장으로 들어섰다.
체코 보헤미아 왕국의 기초를 닦은 성 바츨라프 왕의 기마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은 오래 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카를 4세에 의해 프라하가 제국의 수도로 세워졌을 때 신시가지로 발전, 말을 거래하던 장소였단다. 또 합스부르크 제국에 합병되었던 체코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하면서 그 선언문을 낭독했던 곳이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 시위가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과거사 해설은 오디오의 깜냥이 아니었다. 이곳이 종전 후 들어선 공산 정권에 항거하던 민주화 시위와, 이를 소련 탱크가 짓밟은 1968년 프라하의 봄, 그리고 민주화를 향한 또 다른 시위였던 1989년 벨벳 혁명의 장소임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오디오는 무척 버벅거렸다. 마치 머나먼 도시의 뉴스 한 토막을 전하듯 어색한 번역의 기계음은 당시 젊은이들이 흘린 피를 나 몰라라 떠드는 변사 같았다.
게다가 달리는 투어여서 장소는 순식간에 바뀌었고, 마음만 급한 변사는 제 말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버스는 쉼없이 달렸다. 이제 프라하 시청을 지나고 댄싱 하우스를 힐끗 보여 준 후, 다리를 건너 현재 외교부 건물로 쓰인다는 로레타 성당을 지나고 대통령궁이 있는 프라하 성에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내려서는 버스 입구에는 돌아올 시간을 미리 감고 있는 종이 시계가 놓여 있었다. 40분 후 출발, 프라하성 정문 앞 스타벅스에서 목 축일 정도의 짬이었다. 휴~, 내 숨이 다 가빴다.
공원에 놓인, 다비트 체르니의 ‘엉덩이 깐 아기’ 부조.
“Hey, Hey, Hey, it's a beautiful day.”
다니엘 분의 <Beautiful Sunday>에 맞춰 은발의 여인이 몸을 흔들고 있는 이곳은 캄파 공원. 높낮이 없이 읊어대던 오디오 가이드 때문인지 오수(午睡) 때문인지, 시티 투어는 비몽사몽 끝났다. 그리고 이번엔 네 바퀴 대신 두 발로 구시가지에서 왕의 마차 행렬이 지났다는 거리를 뒤따라 까를교 건너여기 공원에 왔고, 오자마자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낙엽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젊은 내가 아니듯, 이 도시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프라하는 내가 추억했던 곰살맞은 도시가 아니라, 자본의 척후병에 둘러싸인 물색없는 장사꾼 같았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프라하 젊은이들을 보러 간 객에게 딴청 부리던 ‘존 레논의 벽’도 그렇거니와, 그 앞을 나뒹둘던 찌그러진 맥주 캔과 애송이들이 짓이겨 납작코가 된 담배꽁초도 예전과 한참 다른 프라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프라하를 프라하답게 만든 역사적 면면들이 더욱 고결하게 느껴졌고 이 공원의 평화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나는 어떨까? 예전의 순전한 패기와 열정은 사라졌지만, 좋았던 자신의 일부를 지키며 나아가고 있을까? 그리하여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퀼트 조각보처럼 제각각의 주말을 즐기는 공원에서 젊었던 나의 힙색을 탐하던 프라하 꼬마의 형편이 나아졌을지 어땠을지 궁금해하다, 그녀나 나나 좀 더 넓어지고 좀 더 깊어진 통속적인 아줌마로 살아가면 다행이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