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보채듯 끝도 없이 울어대는 오리 소리에 잠을 깨니, 정작 고집을 부리고 있던 건 어둠. 그래봤자 조만간 해는 떠오를 테라, 삐거덕 쿵 삐거덕 쿵쿵 오리만큼 요란하게 계단을 내려와 삐이익 오래된 나무 대문을 열었다. 이번엔 안개가 첩첩, 몸을 내밀자마자 하얀 유령에 삼켜졌다.
그야말로 물안개는 포식자였다. 나그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곳 할슈타트뿐 아니라 건너편 섬들과 호수도 농밀한 물안개에 사로잡혀 미동 없이 엎드러져 있었다. 어제의 선착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물안개 잔뜩 실은 나룻배들이 물길 따라 갈팡질팡 노질만 했다.
그래도 떠오르는 시간을 당해낼 순 없는 법, 물안개가 점점 옅어지는 사이 홀로 깨어 있는 소리를 찾아 마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메인 광장에서 어제의 교구 성당을 지나 산머리 높이까지 올라서니 귀가 멍멍해지도록 세찬 소리, 그것은 희붐한 가로등 건너 한시도 잠든 적 없는 폭포였다. 뎅그렁 뎅그렁,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니는 아래 성당 종소리에 마을도 서서히 깨어났다.
이 마을에서라면 순전한 얼굴로 살아질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라면 이웃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염소를 키우거나 소젖 짜는 아낙네가 되어 호수와 소금광산을 찾아 때로는 스키를 타러오는 손님들을 맞아 이불도 널며 수굿하게 살아질 거라 생각됐다. 해 걸음에 맞춰 일어나고 노동하고 잠 들며, 셈에 약해도 난처해하지 않고 크게 아픈 데 없이 오래도록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생각이 우수수 떠올랐다.
물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동화를 짓던 마음은 날렵하게 종적을 감췄다. 해 그림자 밟아 떠날 객을 위해 오리가 울기 전부터 소시지와 치즈를 준비하고 베이컨과 야채를 구워 과일과 빵과 우유와 함께 차린, 앞치마 앞으로 주름 잡힌 두 손을 오므린 아주머니가 부족한 게 없는지 살피고 계셨다.
드디어 국경을 넘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숙소를 떠나 호숫가 시든 앵초꽃을 지날 때, 베어 문 사과 조각을 던져 날아가는 백조를 찍으려던 카메라맨이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남의 먹잇감을 낚으려던 거위한테 인정사정없는 백조가 고고한 여인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나로선 그다지 실망스럽지 않은 게 더 놀라웠다. 낮에는 백조로 지내다 밤마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는 공주가 그녀를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 마법이 풀리고 알콩달콩 살게 되었다는 건 어린 날 알고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그 이후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별로 비밀스럽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을 이야기. 쓰여지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버스 정류장에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맨 사내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앵글 앞에 물안개를 한 꺼풀씩 벗고 있는 할슈타트가 있었다. 거기, 문명의 시간을 쉬이 허락하지 않아 오래되고 오래된 마을이 박제된 듯 잔잔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제 호수의 아웃라인이 분명해지면 여객선이 움직일 차례, 그보다 발빠른 관광버스가 현대사회에서 박리된 삶을 찾는 관광객들을 몰고 왔다. 여기 삶도 동화를 짓기엔 버겁겠구나.
비록 호박마차는 아니었지만, 오스트리아산 CK 셔틀 버스를 타면 체코의 또 다른 동화 마을에 닿을 수 있다는 게 적잖은 위로가 되던 아침이었다.
#2 어린 날의 영웅들을 찾아서
“체스키 크룸로프는 지금으로부터 3시간 후 도착입니다.”
안내를 마친 CK 셔틀 기사가 500리터 물통을 건넸다. 픽업 승객은 총 7명, 대학생으로부터 쉰 살을 앞둔 아줌마까지 다양한 연배와 국적의 사람들이 한 곳을 목표로 움직일 찰나였다.
솔직히 동화가 시시해진 나이, 동화 마을에 간다고 이들처럼 들뜰 계제는 아녔다. 게다가 아주 오래된 그 일이 일어난 이후 한두 걸음 뒷걸음치다 어느새 동화의 바깥, 동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세상에 서 있으니 당연했다. 다만 오래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지, 그게 가끔 궁금하긴 했다.
그날따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유난했다. 경찰에게 말한 대로, 일찌감치 함석덧문까지 모조리 닫은 엄마가 하루를 정리하고 있을 때 신경질적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쌀을 배달해 달한 전화였다. 아버지도 외출하신 밤 아무래도 어린 딸을 혼자 두기 뭣하셨는지 다음날로 배달을 미루려던 엄마와, 다음날 아침거리가 없다는 전화 저쪽이 한참 실랑이를 벌였던 것 같다. <작은 아씨들>의 조가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해진 내가 다음 페이지를 넘겼던 것도 같다.
승자는 전화 저쪽이었나, 엄마가 금고를 대충 잠근 후 가게 불을 켰다. 한두어 단락도 채 나아가지 못했을 때 좀 무겁겠다 싶은 쌀푸대를 진 엄마가 집을 잘 지키라 말했다. 생각보다 비는 거세서, 함석덧문 중앙으로 난 쪽문이 열리자마자 빗소리에 그 말은뭉텅 잘려 나갔다. 그때 안쪽으로 문을 걸어 잠그려다 다음 문장만 읽고, 그 다음 문장만 읽고 하며 미룬 게 화근이 됐다.
눈앞에 어룽대던 깊은 가슴골은 흰 속옷 차림의 안나네 엄마임이 분명해졌다. 무슨 일일까 짐작할 새 없이, 애가 깨어났다며 소리치는 아줌마 너머 엄마가 보였다. 나를 보는 건지 그 너머의 시공간을 어림하는 건지, 초점을 잃고 헤매는 엄마.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책을 읽다 그만, 자장가가 된 빗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동안 가겟집 안방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내게도 몇 가지를 묻던 경찰은 금고 외 도둑맞은 물건은 없는지 엄마와 함께 군데군데 살폈고, 가게 빈틈을 채우고 선 이웃 어른들은 잠시 난리통을 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수군거렸다.
“그래도 애가 살아 있어 천만다행이에요.”
진창길을 나선 걸 후회하던 엄마를 위로했던 건 안나네 엄마였다. 그러고 보니 덮었던 이불에 운동화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가게 안방 여닫이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림을 든 안나네. 윗동네에 양옥집을 따로 마련한 후 세를 놓았던 가겟집 안채에 들어온 이 가족 중 또래였던 안나와 그 동생 분도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세상 순박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동네 청년의 것으로 밝혀진 그 발자국은 비록 범인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긴 했으나, 공포의 낙인이 되고 말았다. 잠자던 내가 눈을 떴을 때 안나네 엄마의 철렁이던 가슴이 아니라 도둑의 눈이었더라면,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더라면 등의 허구가 가겟집 앞 평상에서 동네 아줌마들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빚어질 때마다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동화 속 악당은 어리숙하거나 주인공들이 의당 해치울 종이인형 같은 거였지만, 현실의 도둑은 우리집을 난장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강도로도 변할 수 있는 감당하기 버거운 진짜 사람 거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빌린 동화책에도 찍혔던 도둑의 커다란 발자국이 야릇한 얼룩만 남겼을 뿐인데도 안나네는 서둘러 이사를 준비했다.
집에 널렸던 찐쌀과 찐콩을 들고 가겟집 안채에 놀러 가면 <성서 이야기>를 빼놓고 모든 책을 빌려 줬던 안나네였다. 덕분에 문맥 너머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났고, 사랑과 그리움, 굳센 마음 등을 언어적으로나마 추렴했다. 결국 이 모든 세계를 지고 안나네는 떠나버렸지만 말이다.
“휴, 나쁜 사람이 죽어 정말 다행이야.”
“바보야, 주인공은 원래 죽지 않거든!”
책 읽기보다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쌍둥이와 마블판 액션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의 얘기다. 히어로물의 특성상, 적이라 설정된 상대와의 싸움에서 아(我)의 폭력과 살생은 ‘일방적으로’ 옳았다. 선악이란 이분적 사고가 통용되지 않는 어른의 세계에 사는 엄마여서 과연 선한 폭력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뚤레뚤레 앞질렀다.
그 영화 속 아이들 좋아하는 우주전쟁 근사하게 해치우는 지구 전사나 마법 세계 영웅에 비하자면, 내 어린 영웅들은 낭만적 모험가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들의 정의로움과 용기와 세상에 대한 믿음은생의 주인공으로 나설 때 분투할 기초 체력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떠난 후 언니들의 세계를 탐닉했지만, 그들만큼 무작정 믿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좀 더 오래 그들과 지냈더라면 지금과 달리 살아졌을까 궁금한 거였다.
많은 이야기를 실은 8인승 벤츠의 엔진 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마침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체코로 들어섰다. 지나는 광고판 글자가 달라지고 더 높아진 위도를 증언하듯 하얀 자작나무가 지나갔다. 그 하얀 나무껍질을 벗겨, 동화 마을에 아직 머물고 있을지 모를 어린 영웅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3 은유의 시간
정확히 3시간 만에,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로부터 체코 남부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본 대로 중세의 성과 그곳을 S자로 휘감아 흐르는 블타바 강, 그 양안으로 주황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은 동화책 그림보다 예뻤고, 게다가 실제였다. 물론 오자마자 만난 첫 주민인 호텔 매니저의 불친절과, 사진보다 추레한 숙소도 현실이었다.
그나마 숙소의 쪽창을 열었을 땐 <소공녀> 세라가 머물던 다락방 같은 정취가 느껴졌고, 가까운 성 비투스 성당에 들면서는 <플랜다스의 개> 파트라슈를 만날 것만 같았다. 물론 네로가 맨발로 찾아든 곳은 벨기에 안트베르펜 대성당이고, 이곳은 플랜다스 지방의 양귀비꽃 들판이며 화가 루벤스의 연고지가 아녔지만 말이다. 그저 파란 하늘 수직으로 쭉 뻗은 첨탑과 그물형 볼트 천장이 닮은꼴이어서 목 뻐근해지도록 올려다봤다. 당연하게도, 네로가 죽기 전 파트라슈와 함께 바라봤던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대신 성모와 비투스 성인의 유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시청사가 있는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에 도착하니, 보헤미안 복장의 무리가 민속춤을 추며 돈을 걷고 있었다. 알싸한 가을의 정오, <성냥 파는 소녀>처럼 헐벗고 굶주려 보이진 않았지만 주머니 유로 동전을 떨구고 '이발사의 다리’를 건넜다. 웬 벌떼가 그리 많던지, 진동하는 냄새를 좇았더니 <꿀벌 나무>에서처럼 숲속 꿀벌나무가 아니라 굴뚝빵이라 불리는 뜨레들로 가게였다.
체코에서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성이자 세계 300대 건축물의 하나라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도착하자마자, 성의 전망대와 박물관을 두루 볼 수 있는 콤보 티켓을 구매했다. 총 162개 계단을 오르면 흐라데크, 이 마을 제일 높다는 고공 전망대는 '라푼젤’이 갇혔던 첨탑이라 오해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후덜덜 내려와 흐라드니 박물관, 이번엔 오디오 가이드를 청했는데 하필 남아 있는 건 모두 고장이랬다. 비트코프치 가문에 이어 로즘베르크 가문과 그렇고 그런 세월 지나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에 이르기까지, 성의 역사와 귀족들의 생활상을 두루뭉술 살피다 몹시 피곤해졌다. 먹고 자고 싸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영주의 정원을 거닐던 다정한 외국인 커플.
꽤나 북적였던 마을, 사람들은 무얼 기대하고 이곳을 찾았을까? 어린 영웅들을 만나 세상 꾀바르게 살아낼 지혜를 구하고자 했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오래된 마을일 뿐 하루치기 여행자에게 오래된 마음 하나 건네주지 않아 토라진 나는, 망토 다리를 건너고 <비밀의 정원>과 조금도 닮지 않은 ‘영주의 정원’을 거닐어 좀 더 깊숙이, 가을이 내려 황금연못이 된 연못 앞 벤치에 누웠다.
“똑바로 못 찍어?”
“애쓰고 있거든! 매번 자기 사진만 찍어 달래.”
한국 남녀가 옥신각신 티격태격 몇 분을 싸우는 통에 잠은 달아났고, 모자를 덧쓴 얼굴로 딱딱한 벤치에 잠든 척 누워 있자니 여간 힘든 게 아녔다. 부르르, 핸드폰을 꺼내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 남녀가 팔짱을 끼더니 총총 달아났다. 저녁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한국 아가씨의 톡이었다.
"여기서 찍을게요. 잠깐만요~."
저녁식사 후 함께 라트란 거리를 거닐던 아가씨가 미소를 준비했다. 혼자 여행객들은 기꺼이 서로의 사진사가 되어 주되, 사진 찍는 기술 따위로 다투지 않는다. 오래도록 변치 않은 세계에 대한 모종의 경외와, 변하는 세상을 쫓느라 잊어버린 각자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려 애쓸 뿐. 마침 앵글 속 아가씨가 어릴 적 내 모습마냥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활짝 웃었다. 어쩌면어린 영웅들은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서성이며 용기와 희망을 조언하고 있겠다. 비록 동화와 같을 순 없지만 선한 끝을 희구하며 살아가라며.
오래된 서점과 전통 수공예품점과 몇 세기 전 미물조차 보물로 둔갑시키는 앤티크 가게 들이 나란한 거리를 계속 걸었다. 어느덧 깊은 밤, 과거가 횡행하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조차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은유의 시간, 나의 어린 영웅들에게 띄웠던 편지는 당도했을지 어땠을지. 혹시나 뒤를 돌아봤을 땐 구구절절 현실을 알게 된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