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서 오는 무력감을 즐기자.
방 안은 너저분했다.
바닥부터 책상 위까지 물건이 빼곡했다.
그중 연사 버튼이 눌러진 카메라는
멈출 줄 모른 채 고장이 나버렸다.
찍힌 사진들은 물에 젖어버렸고
피사체는 나를 외면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잠시 붙이기로 했다.
그제서야 시간이 잠시 흘렀다.
일어난 뒤에도 모든 물건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활짝 열린 방문은
눈 앞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보지 못한 척 눈을 돌렸다.
창문을 보니
해는 쨍쨍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하루가 너무 많이 남았다.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여자 친구를 기다리며 이 시를 썼다. 실제 방 안을 생각하면서 복잡한 내 머릿속을 표현하고자 생각하며 써 내려갔다. 귀국하는 날짜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들은 너무도 길었다. 내 전역 날짜도 이렇게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긴 시간이었다. 그때 기다림이 왜 힘들었나 돌이켜보면 무력감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뭔가 할 수 없는 상황들이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조금 수월했겠지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마음을 편히 먹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놀이동산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일조차도 쉽지 않다. 만약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면 기다림은 더욱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마치 면접 결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데 요즘은 기다릴 만한 일이 전혀 없다. 늘 똑같은 일상. 한 달의 기다림 후 여자 친구와의 이른 아침부터 재회의 기쁨이 사뭇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