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이크도 못 마시고 화장도 못한 날

by 게으른루틴

하루의 시작은 대개 정해진 루틴으로 움직인다.
눈을 뜨고, 가볍게 세수하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쉐이크를 한 포 마시며
“그래, 오늘도 해보자”라고 다짐하는 게
나만의 아침 의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출발 시간에 가까웠고,
세수도 대충, 화장은 포기.
냉장고 문을 열고 쉐이크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오늘 아침에는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거 같았다.

오늘, 내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더 창백하고,
거울에 비친 모습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단정하지 않은 나, 꾸며지지 않은 나.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게
괜히 주눅 들게 만들었다.

시골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도
괜히 시선을 피하게 되고,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내가 오늘 하루 얼마나 엉망인지를
사람들이 다 알아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나는 생각보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쉐이크 하나, 화장 하나 못했다고
내 하루가 실패한 건 아니었다.
물론 내 감정은 여전히 울렁거렸고,
거울을 피하고 싶은 날이었지만,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오늘은 그냥,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쉐이크도 못 마시고,
화장도 못했지만,
나는 오늘을 살아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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