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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Oct 04. 2022

한 직장에 오래 붙어있지 못 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프롤로그


"세상에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한 군데만 쪼아대는 딱따구리도 있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벌새도 있어요." - 엘리자베스 길버트


우리 70년대생들은 우직하고 성실한 딱따구리 같은 사람만이 인정받는 시대를 살아왔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여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일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늘 주변에 걱정을 끼쳤다.


나는 항공사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2개월간의 교육 과정을 거쳐, 정식 발령 후 4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물었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직장을 왜 금세 그만두었느냐고. 나는 거들먹거리며 대답했다. "이 일을 계속하면 5년 후에 나는 뭐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보니, 하루빨리 그만두는 게 좋겠더라고요."


그때는 나 자신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통장 잔고와 함께 침몰해갔다. 앞으로 뭘 하면서 살까? 지금 뭘 해야 5년 뒤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있을까? 고민의 나날을 보내다, 일단 벼룩시장을 뒤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종로에 있는 국내 최초 인터넷 카페였다. 그곳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나도 배낭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100만 원을 모아 호주로 떠났다.


왕복 항공권과 장거리 버스 패스를 사고 나니 무일푼 거지였다. 말이 배낭여행이지 사실상 불법 노동자였다. 날품팔이를 하며 농장을 떠돌다 보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진다. 그 후로 몇 년간 빈 손으로 세계를 떠돌았다. 순수한 여행을 한 적은 없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으로 일을 했다.


나는 한국과 여러 나라를 오가며 다양한 직종의 일을 경험했다. 일찌감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덕분에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에 파트타임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47세가 된 현재까지 해 본 일들을 대충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라이브 카페 서빙,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 길거리 잡지 판매원, 선거 운동원, 항공사 승무원, 인터넷 카페 (최초의 PC방) 아르바이트생, 호주 농장 노예, 영어 강사, 연예기획사 아이돌 매니저, 뉴욕 고깃집 서빙, 하와이 바텐더, 중소 악기회사 무역 직원, 뉴질랜드 주방 설거지 보조, 뉴질랜드 쌀국수 식당 서빙, 뉴질랜드 한인 신문사 기자. 그리고 열 번의 회사 창업 - 라이브 펍, 무역사무 대행업, 온라인 여성용 성인사이트, 불량식품 전문 쇼핑몰, 홍대 클럽, 게스트하우스, 영어 놀이방, 제주 한달살기집, 호주 한달살기집, 요가&차 라운지


글을 쓰다보니. 1940년대 백년설 선생님의 명곡, 나그네 설움의 가사 한 소절이 떠오른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 더 빨리 오르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길을 벗어나면 스스로가 처량해지고, 불안해지고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진다. 그저 모험을 좀 하는 것 뿐인데, 방황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이 길어질 수록 주변 사람들이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 이라며 불안을 강요한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하니?'

'나이를 생각해야지. 이게 그만 정착할 때도 됐잖니?'

'애들 커봐라. 돈 들어갈 데 투성이다.'

'노후 준비는 하고있니?'


주변 사람들 모두 직장을 갖고, 적금을 붓고, 아파트를 장만하며 단단한 지반으로 진입하고 있을때, 나 혼자만 여전히 꾸불 꾸불 앞이 보이지 않는 비포장 도로를 걷는 것 같아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는 길 끝에서 만나지 않는가. 어차피 우리는 다 죽지 않는가.' 그럼 또 다시, '그저 나 생긴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벌새 같은 사람이다. 세상의 다양한 일들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많은 것을 시도한다. 그래서, 늘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고, 한 분야의 대가가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벌새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며 다양한 꿀을 빨아 본 덕분에, 그 경험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사업을 잘 할 수 있게 됐다. 나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데 소홀이 한 일이 없고, 서른 살 중반부터는 양가 부모님과 회사 직원들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다. 이렇게 글로 쓸 얘기도 많다.


나는 인생에 미련이나 후회가 별로 없다. 누구나처럼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지만 억지로 한 일은, 가장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근무한 최초 4개월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평생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아이를 키워내고 가정을 꾸려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또한,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끊임없이 갈고닦는 사람들, 그래서 그 방면의 대가가 된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메시, 김연아, 강수진, 조수미,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름 모를 장인들. 나도 다음 생에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아니 이번 생도 꽤 남았으니 50대부터는 글쓰기에 전념하며 딱따구리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 살아도 다 괜찮다는 것이다. 딱따구리여도 좋고, 벌새여도 좋다. 혹은 딱따구리였다가 벌새였다가 다시 딱따구리가 되었다가... 또 벌새가 되어도 좋다.


한 순간 한 순간 나 자신에게 진실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종류의 삶도 흥미롭고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법이다. 나 자신에게 진실하기만 하다면!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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