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밀려오는 고난을 마주할 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쭈욱 들어왔던 울 엄마의 "소원이 없겠다." 시리즈가 있다.
"우리 자식들 따뜻한 물로 실컷 씻길 수 있는 집에 살면 소원이 없겠다."
온수 보일러와 욕실이 있는 집에 살게 되자, "여기저기 이사 안 다니게, 내 집 한 칸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셨다.
집 한 칸이 생겨서 좀 살만한가 싶으니, 동생이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 놈의 자식, 고등학교라도 무사히 졸업하면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정신을 좀 차리는 가 싶으니 아빠가 안 마시던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걱정이 시작되었다. "저 놈의 술 담배 좀 끊으면 내가 소원이 없겠다."
60대를 넘어서부터야, 인생은 원래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신 건지 엄마는 더 이상 소원 타령은 하지 않으신다.
대신
"늘 감사해라"
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상황이든 지금보다 더 불행 해 질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고 감사해라. 조그만 것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해라."
우리 엄마는 배움이 짧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명한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엄마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선배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고난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는 없었다. 크고 작은 문제와 갈등이 파도처럼 끊이질 않고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물며,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가족, 회사, 단체 등의 조직을 꾸려가는 데 있어 안정적인 시기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한 가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다가온다.
하나의 파도가 사라지고, 저 쪽에서 또 하나의 파도가 다가오는 게 보일 때마다 아직도 내 마음은 두렵다.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남 탓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파도가 지나고 나면 내가 더 단단해 지리라는 걸. 물결에 맞서 싸우기보다 파도를 타고 넘어서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라는 것도.
아직은 비틀비틀 균형감이 부족하고, 단단히 서기 위한 근력도 부족하지만.... 두려움만 떨쳐내면 나는 언젠가 훌륭한 파도타기 선수가 될 것이다. 거센 풍랑도 "어디 한번 넘어 볼까?" 하고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나를 단련하는 - 다시 말해 시시때때로 마주치는 두려움의 감정을 떨쳐 버릴 수 있게 하는 -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과 글쓰기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옴~ ' 하고 명상을 할 수도 있지만, 조용한 곳을 걸으며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 밍그류린포체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이나 감정을 차단하지 말고 그저 내가 숨을 들이쉬고 내 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자각하는 것. 그것도 명상이다.
종종 동네 숲을 걷는다.
온갖 싱그러운 것들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으며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반복하면 내 몸에 좋은 에너지가 꽉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어떤 일이라도 담담히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차분한 마음이 생긴다.
오늘은 이렇게 앉아 끄적끄적 글을 쓴다.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거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 때. 있었던 일들과 내 감정의 흐름을 들여다보며 글로 써내려가다 보면, 제 3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어 더 이상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내 주변을 둘러보면, 엄마의 말씀대로 온통 감사할 것 투성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깜짝 놀라 한 참을 서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나는 왜 지금에야 본 거지?
불과 7년 전 서울에 다세대 주택가 한 복판에 살 때, 창문을 열었을 때 전신주와 옆 집 담벼락 대신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라도 있으면 참 좋겠다. 기도하던 적이 있는데.
소원성취를 해 놓고도 감사한 걸 모르고
더 가지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투덜투덜 살고 있구나.
2017년 11월에 쓴 글
- 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