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Sep 24. 2021

요가하다가 뇌진탕 걸릴 뻔

드롭 백 컴업

오늘 아침, 선 자세에서 허리를 뒤로 꺾은 뒤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천천히 허리를 더 꺾어 손을 땅에 닿게 하는 드롭 백을 시도하다가 유도 선수처럼 육중한 소리를 내며 매트 바닥에 떨어졌다.


글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을 위해 짧은 영상을 보여드리자면 이렇다.

드롭백 컴업 (인스타 @yoga_in_jeju)


선생님은 내가 무안할까 봐 그랬는지 껄껄 웃으셨지만 속으로는 큰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셨는지도 모르겠다. 근 20년 가까이 요가원을 운영하셨으니 나 같은 사람을 여럿 겪으셨을 것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마음만 앞서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몸을 다치는 부류. 본인도 젊은 시절 친구들 앞에서 머리 서기를 보여주다가 목을 다쳐 6개월 넘게 쉬셨야 했다며 제발 무리하지 말고 보여주기 식 요가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일이 있다.


요가는 빠른 시일 안에 성취하려는 욕심, 나보다 잘하는 남과 비교하는 경쟁심을 가지고 하면 탈이 나기 쉬운 운동이다. 남을 보지 말고 온전히 내 몸의 자극과 호흡에만 집중해야 요가 아사나(포즈)가 약이 된다. 어떤 자세도 숨이 가빠질 정도로 하지 말고 깊게 숨을 쉴 수 있는 상태에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것이 힘들지 않게 유지될 정도가 되면 조금씩 단계를 높여 완성 자세로 향해 가는 것이다.


오늘 나의 드롭 백 낙하는 내 몸에 집중하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고수들의 동작을 흉내 내다가 벌어진 참사다. 그러다가 목이라도 다쳤으면 지도자인 선생님은 얼마나 난감해졌겠는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반복하시는데 말이지.


그게 늘 숙제다. 안전하고 편한 길만 가면 늘 그 자리에 머물 것 같은 조급한 마음. 새벽에 잠이 덜 깬 몸으로 집을 나설 땐 (만사가 귀찮은 탓도 있지만) '그냥 가서 앉아만 있자. 천천히 편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각오를 하는데 막상 매트 위에 앉으면 전의에 불타올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게 된다. 그러다 남들은 말로만 들어봤다는 요가 몸살을 앓기도 하고, 유도 선수처럼 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뒤로 꼬꾸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거듭해야 성장할 수 있다.'라는 오래된 인식이 습이 되어 요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주변의 요가하는 사람들에게 발전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처음엔 그게 칭찬인 줄 알았는데, 요가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글정적인 평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요가는 잘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을 가를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 그저 자기 몸을 들여다보며 집중하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집중하고 근력과 유연성을 단련시키다 보면 좀 더 많은 동작이 가능해지겠지만, 욕심으로 인해 집중이 흐려지고 속도 조절을 잘 못하면 다치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가원에서는 웬만큼 오래 수련한 사람이 아닌 이상 머리 서기 (살람바 시르스아사나)나 드롭 백 같은 것을 시키지 않는다. 무리한 동작을 하다가 다치면 모든 탓은 지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과감한 선생님들이 많은 편이다. 하타요가의 대부로 알려져 있는 한주훈 선생님 (이 분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쓰겠다.)의 직계 제자들이 지도하는 요가원들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의 하타 선생님은 모르긴 몰라도 현재 활동하시는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청년 시절부터 요가를 배우셨다는데, 지금은 60대 중반쯤 되셨으니 수련의 세월과 내공이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하타 선생님은 요가를 지도하실 때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신다. 처음에는 왜 손수 동작을 보여주시지 않나? 사실 본인은 못 하시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하시는지 알 것 같다. 수련생들은 눈을 감고 선생님의 지시어에 집중하고, 선생님은 수련생들을 자세히 보며 '영숙이는 다리를 붙이고, 영호는 다리를 넓게 벌려.'라는 식으로 체형과 숙련 정도에 따라 맞춤형 지도를 해 주신다.


오늘 나는 선생님이 잠시 다른 데 눈을 돌리는 사이 사고를 쳤다. 육중한 쿵! 소리에 어이쿠 놀라셨을 텐데 껄껄 웃으시며 나의 과욕을 눈감아주신 하타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만한 마음을 거두고 좀 더 느리게 집중하여 수련하겠습니다!


라고 쓰고 글을 잠시 멈춘 사이 또 한 번의 요가 수련을 했는데, 오늘 낙하 현장에 함께 계셨던 도연 선생님이 내 허리를 잡고 드롭 백 컴업을 다시 한번 시도하도록 도와주셨다. 허리를 잡아주시지 않았더라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어떤 느낌으로 하는지 감을 잡았으니 또다시 해보고 싶은 의욕이 솟구친다.


의욕과 자제심 사이에서 늘 갈등하게 만드는 하타요가. 좀 더 마음을 비우고 미세한 한 점까지 몸과 호흡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46세 요가 초년생

리즈



매거진의 이전글 오징어게임 코스튬, 꼭 입어야겠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