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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pea Jul 15. 2020

4. 워크홀릭

나의 매니저 E의 이메일은 밤 10시고 새벽 5시고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장 답을 원하는 이메일들은 아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보내 놓는 것이었다. 오전에 이메일을 체크할 때마다 그녀가 새벽 5시, 6시에 보낸 이메일들을 자주 접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가 퇴근하고서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업무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메일 외에도, 즉각적인 답장을 바라지 않는 수많은 이메일들이 회사의 공식적 근무 시간 외의 시간에 보내지고 확인되어진다.


얼마 전 미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미팅에서 논의된 사항들에 대한 이메일이 온 것을 보았다. 유럽과 아시아와 시간을 맞추느라고 밤 11시에 미팅이 잡혀서 미팅 초대를 못 보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시차 상 유럽은 밤이나 새벽이라 유럽 재무 담당자의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답장은 미국 근무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비스 관련 물류센터를 총괄하는 담당자와 나는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래서 첫 6개월은 한 달에 한 번씩 한 시간 거리인 물류센터로 출근하여 그에게 물어볼 것을 물어보고 논의할 것을 논의하고 오곤 했다. 최근 물류센터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면서 그가 매우 바빠져서 시간을 맞추기가 굉장히 힘들다. 가까스로 미팅을 할 때마다 그는 요즘 너무 바빠 거의 매일을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일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월등히 높다는 설문조사를 자주 접했는데 그럼 내가 겪은 주변 이들은 특별한 경우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존만 해도 워크 앤 라이프 발란스가 안 좋기로 악명이 높고, 구글 등 유명 테크 기업들도 회사 내 복지가 좋은 이유가 회사 내에서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제반 환경을 다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팩트 풀니스라는 책에서 보듯이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통계를 경계해야 한다. 야근을 권장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문화 속에서도 알고 보면 밤늦게까지 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칼퇴근을 하지만 사실 점심은 15분만 먹고 일 하는 사람들, 휴가를 가서도 밤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는 사람들, 단체는 추적하기 쉽지만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워크홀릭들은 추적하기 쉽지 않다.


개별적 워크홀릭들이 제일 못 참는 것은 바로 일하는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단체로 야근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일할 것이라는 자유를 침범한다. 병가와 휴가를 눈치 보며 써야 하는 일은 휴가지에서 자발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하는 열정을 꺾어버린다. NBA 출신의 유명 농구 선수 제이슨 키드(Jason Kidd)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어제의 나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운동하러 가서 가장 늦게 나왔다고 한다. 그가 만약 코치의 강요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면, 철저히 짜인 트레이닝 스케줄을 기계처럼 따라야 했다면 과연 그런 조언을 남길 수 있었을까?


외국 회사들이 조금은 널널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한 끗 차이인 자유와 방종의 줄다리기에서 자유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너의 일하는 스케줄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일만 제대로 끝내라는 것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별적 워크홀릭들이 제일 원하는 자유 및 문화이자 내가 이방인이 되기를 감수하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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