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이케아에서 처음 산 물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by 레이지살롱

오늘 집에 필요한 생활용품과 소형 가구가 있어서 집에서 가까운 이케아 매장에 다녀왔다. 나의 첫 이케아 방문은 15년 전 호주 시드니에 있는 매장이었다. 시드니 시티에서 지하철 + 버스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버스비를 아끼려고 지하철부터 버스로 가야 하는 구간을 걸어갔다. 한국에서부터 친했던 친구가 나보다 늦게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그 친구와 구경삼아 이케아 매장을 방문했는데 우린 가진 게 시간밖에 없었고 너무 돈이 없었다. 초행길에 구글맵도 없던 시절이다. 종이 지도를 보고 간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가는 길에 숲을 헤쳐 가기도 하고 호수가 있는 아파트 단지 같은 건물들을 지나기도 해서 겨우 겨우 한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그 길과 우리 처지가 웃겨서 그 친구와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시드니 시티에 있는 셰어하우스에서 방 한 칸에 외국애들과 3-4명이 같이 살던 때였는데 사고 싶고 꾸미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현실을 그렇지 않아서 이케아 쇼룸을 구경하는 동안 머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뭘 사던 내 공간이 없던 시절이라 그렇게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하고는 겨우 목각 구체 관절 모형 인형을 하나 사 왔다. 왠지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그게 있으면 멋져 보일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그 인형으로 어떤 포즈를 취해서 인체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다. 언제나 폼으로 내방 책상 위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 호주 달러 7달러(그 당시 시세로 5600원이다)에 사 왔던 것 같은데 오늘 이케아 매장 가서 보니 6900원 하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오르질 않았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 모형은 호주에서 한국으로, 원룸에서 신혼집으로, 그리고 지금 집의 작업실까지 와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물건인데도 호주에서 들고 와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물건이다. 지금은 버릴 수 없는 물건 중에 하나가 되었다.


호주를 떠나온 지 15년 동안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생을 다 했지만 이 목각인형은 아직도 상한 곳 없이 살아남아 있다. 부피가 크지도 않고 그때의 기억이 있는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때처럼 걸어서 가지 않아도 되고, 적당히 꾸밀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건 원하면 살 수 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한국에서 파주에 이케아 정식 매장이 아닌 몇 개만 떼다가 만들어놓은 매장에서부터 정식 매장이 들어온 지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구매해 오고 있다. 지금은 생필품과 가구를 가성비 있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그때 이케아는 나의 꿈의 공간이었다. 언젠가는 내 공간을 갖고 멋진 공간을 꾸미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작업실 한쪽에 차지하고 있는 그 목각 인형을 보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한동안 그 목각 인형을 보며 꿈을 키우기도 했던 내가 떠 오르기도 하고, 호주에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해 봤던 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리고 풋풋했던 것만으로도 예뻤던 내가 떠오르기도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혼 후 나의 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