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섭렵한 일대의 식당들에 서서히 싫증을 느끼던 어느 날, 나는 오늘의 소중한 한 끼를 새로운 도전에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국숫집 문을 열고 만 것이다. 종업원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입구에 서 있는 무인 주문기였다. 요즘 저렴한 식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무인 주문기가 작은 홀의 한편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었다. 손님 세 팀이 음식을 먹거나 기다리고 있었고 알바생인 듯 보이는 20대 초반 남자 종업원은 내게 특별한 반응 없이 다른 테이블에 묵묵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기계치이긴 하지만 맥도널드의 키오스크나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까지 거쳐본 몸, 친절한 지시로 지불을 유도하는 주문기를 못 다룰 정도는 아니어서 나는 당당히 기계 앞에 섰다. 이 집의 기본 메뉴를 고르고 홀 식사를 선택한 후 카드와 현금결제 중 카드를 터치하고 기계에 카드를 밀어 넣었다. ‘꼴깍’, 기계는 삼키는 소리를 내며 대기 번호표를 뱉어냈다. 주문 완료. 당당히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매우 빨리 나왔고 알바생이 서빙해주었다. 국수의 퀄리티는 내 예상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저렴하게 한 끼 때우기에 크게 부족하진 않지만 국수 한 그릇에서도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충분히 부족한 맛. 그래도 단무지와 김치를 셀프로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면을 우물거리던 그때,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손님이 입장했다. 새로 온 손님은 무인 주문기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곧장 한 테이블에 가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알바생은 홀을 바라보는 쪽으로 서서 여전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손님이 메뉴판을 읽어가는 시간이 길어갈수록 작은 홀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알바생이 주문받으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할머니와 셀프 주문 식당 종업원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알바생 간의 그 무언의 대치상태를 모두가 느끼는 듯했다.
종종 주체할 수 없는 오지랖이 발동하는 나는 망설였다. 내가 나서야 하는 걸까? ‘아무리 기다리셔도 주문을 받으러 오는 일은 없을 테니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기계로 주문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할까? 아니면 알바생을 향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주문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곳에도 룰이 있을 것이었다. 셀프 주문 시스템이 익숙지 않은 손님을 응대하는 매뉴얼이 없을 리 없다. 매뉴얼 상 아직 알바생이 나설 타이밍이 아닌 것 아닐까? 나는 오지랖을 밀어둔 채 생전 처음 국수를 먹어보는 사람인 냥 후루룩 쩝쩝 국수 먹기에만 매진했다. 그동안에도 할머니의 메뉴판 정독은 계속됐다. “여기요!” 혹은 “주문이요!” 하며 살짝 손을 들어 보일만도 하건만 적극적인 스타일의 손님은 아닌 듯했다. 내가 국수를 다 먹어갈 무렵, 꽤 긴 대치상태 끝에 스마트폰 탐색을 드디어 끝낸 걸까. 고개를 든 알바생이 서서히 할머니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뒷이야기는 다행히 훈훈하다. 알바생은 할머니에게 주문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더니 무인기기 앞으로 로 안내했다. 직접 카드나 현금을 받아서 화면을 터치하거나 지불하진 않았지만 끝까지 곁에서 지원했다. 그냥 대신 주문해주는 것이 훨씬 덜 번거로울 듯했다. ‘절대 먼저 나서서 주문을 도와주지 말되 주문이 어려워 발길을 돌리지는 않도록 되도록 오래 지켜보다가 옆에서 도울 것.’ 이 곳에 주문 관련 응대 매뉴얼이 있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긴장과 갈등이 해소되고 할머니와 알바생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홀엔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할머니의 음식도 빨리 나왔다. 곧 나는 약간의 배신감에 휩싸였는데 할머니 앞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의 최애 메뉴가 나왔기 때문이다. ‘쌀국수가 있었다니.’ 곁눈질로 살펴보니 양도 엄청나게 푸짐했다. 당당한 척했지만 나도 기계 메뉴판 앞에서 긴장하느라 메뉴를 제대로 훑지 못했던 것 같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던 것을... 할머니가 옳았다. 할머니는 종이 메뉴판을 뒤까지 정독하면서 메뉴 구성을 꼼꼼히 확인했을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할머니는 쌀국수를 맛있게 드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배신감을 털고 다시 한번 안도감을 느끼며 식당을 나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파리, 나는 그곳에서 외국어로 가득한 무인 계산대 앞에선 고독한 이방인의 숙명을 맛보았다. 파리의 마트는 무인 시스템이 흔했다. 특히 내가 가장 열광했던 마트 안의 샐러드 바에선 음식을 용기에 담고 무게를 재고 가격표를 붙여주는 직원 없이 스스로 해야 했다. 바 옆에 비치된 용기에 원하는 샐러드를 담고 비치된 전자저울을 샐러드용으로 맞춘 뒤 용기를 올려놓으면 저울이 무게에 따라 가격 스티커를 뱉어낸다. 이 스티커를 들고 셀프 계산대로 가서 바코드를 찍어 스스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이 간단한 과정에 헷갈릴 요소가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선 처음엔 시스템을 몰라 당황했고 샐러드를 올릴 때 세팅법을 몰라 두리번거렸다. 한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저울은 계속해서 텅 빈 스티커를 뱉어냈다. 이미 음식을 담았기에 무를 수도 없는데.... 돈이 있는데도 계산할 수 없는 울고 싶은 상황. 이런 상황은 지하철 매표소에서도 마트의 셀프 계산대에서도 이어졌다. 끝내 주문에 실패했는데 내 주머니 속의 휴대폰에선 세 번이나 중복 결제되었다는 카드 결제 알람 문자가 오는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인기 앞에서 실패를 맛보고 나면 꼭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었다. 끝까지 기다리다 실패의 징후가 분명해질 때. 그전까지 마트를 그렇게 빙빙 돌았어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직원이 반드시 튀어나왔다. 어디서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무인 기기 운영 매장의 종업원들에게 국제적인 매뉴얼 같은 게 있는 걸까. 기계가 낯선 노인이나 외국인들에게도 식사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먼저 다가가 그들의 실습권을 빼앗지는 말라는...(메뉴얼 같은게 있을리 없지만 있다해도 '해줘 버릇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지침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파리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도와주는 직원들 덕분에 매번 어리숙하게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사히 쇼핑을 마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 내가 자주 식사를 위해 찾는 학원가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때 그 국숫집엔 다시 가지 않았다. 쌀국수를 사 먹으러 한번 가볼 만도 한데, 또 발생할지 모를 대치 상태를 이번에도 느긋하게 지켜볼 자신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소고기 쌀국수에 싫증난 걸지도 모르겠다.
파리 시민들 사이에선 마트나 식당의 서비스직 인력을 대체하여 밀고 들어오는 무인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자본의 논리 아래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몇 해 전 철도 무인화 정책을 발표했고 하나하나 실행 중이다. 이런 바람은 철도에만, 프랑스에만 그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유례없는 장기 철도 파업이 이어지는 지금, 파리지앵의 발이 되어주는 것은 몇몇 무인으로 운행되는 지하철 호선과 우버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같은 공유 경제 네트워크다. 무엇이 바람직한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작은 고민은 이런 것이다. 어리숙한 이방인을 지켜보다 도와주러 나타나는 직원들이 없는 세상을 나 같은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세상 소식에 느린 사람이 그럭저럭 다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라도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빠릿빠릿 적자생존의 묘를 고민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