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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유 Mar 12. 2022

치팅데이! 치킨 먹는 날?!

운동사심_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운동하는 사람들

 치팅데이(Cheating Day)란 ‘(몸을) 속인다.’라는 뜻의 ‘Cheating’과 ‘날’을 뜻하는 ‘Day'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식단 조절 중 부족했던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1~2주에 한 번 정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날을 뜻한다. 다이어트를 하면 아무래도 운동만큼이나 식단 하는 것이 힘든데 꼭 다이어트만 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왜 이리 많은지 평소 먹지 않던 음식까지 생각날 정도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위해 먹고 싶은 것을 먹게 해주는 ‘치팅데이’는 다이어터들에게 금 같은 날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 식단을 몇 주간 꾸준히 하다 지쳐 일주일에 한 번 치팅데이를 가지기 시작했다. 너무 꿈에 그리던 날이라 그런지 치팅을 치킨으로 잘 못 들을 정도로 간절히 원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다른 음식들보다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건 다름 아닌 ‘술’이었다. 다이어트와 몸이 안 좋아서 동시에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산 것은 아니다. 희한하게 운동만 하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나의 첫 치팅은 피자와 맥주! 피맥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과 톡 쏘는 맥주를 마시니 이보다 더 맛있게 먹은 날은 없을 것이다. 피자를 먹기 위해 전 날까지 하체 운동은 물론 스텝박스까지 있는 땀, 없는 땀 다 배출하면서 오로지 ‘피자’ 하나 만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며 운동을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치팅데이 날, 눈앞에 피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음식 앞에 환호를 질렀던 것 같다. 마치 피자를 처음 본 사람 마냥 눈이 동그래지며, 미각이 곤두서 모든 맛을 다 느낄 정도였다. 음식이 주는 그 행복감을 그 때 느꼈다. 역시 행복이란 별 거 아니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쉽게 나에게 행복을 주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땐 알지 못했다. 그 날이 내가 술을 마지막으로 먹게 되는 날이라는 걸. 이후 공황장애가 심해져 술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맥주 좀 더 마실 걸. 그 와중에 몸 생각한다고 정말 딱 한 캔만 마셨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술만큼이나 운동하면서 정말 먹고 싶은 것은 ‘커피’였다. 커피 애호가인 나는 커피만큼은 빵과 과자만큼이나 끊기 힘들다. 그래도 나름 나에게 준 규칙은 ‘하루에 커피 세 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계속 마실 거라는 걸 알기에 이렇게 정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만 입에 달고 살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일단 라떼 종류는 다 끊고 아메리카노만 (설탕, 시럽 넣지 않고) 마셨다. 물론 아메리카노보다 우유가 들어간 라떼류를 더 좋아하지만 일단 참았다. 믹스 커피 또한 치우고 오로지 원두 본연의 맛만 즐겼다. 아마 이때 커피의 맛을 좀 더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커피마저 끊을 수밖에 없는 시련이 찾아왔다. 공황장애로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받다가 어지러움 증상이 심해지자 커피도 마시지 말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긴 했다. 알코올과 카페인이 얼마나 자극을 주는지 알고 있지만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끊어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의사 선생님 말은 잘 듣는 편이다.) 술과 커피를 끊고 살게 되면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모든 상황과 물체들이 다 음식으로 보였다. 운동을 하다 천장에 달린 작은 조명이 에그타르트로 보이지 않나, 에어컨 모양이 갈빗집 불판 같아 보이고, 한 기업 물류 창고를 지나다가 그 기업의 냉동식품들, 심지어 브랜드 이름을 모두 읊을 정도로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먹고 싶게 만들었다. 가끔 센터에 커피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커피 향에 혼이 나갈 때도 종종 있다.

 요즘은 몸이 많이 좋아져 술은 가끔 조금씩, 커피도 다시 마시긴 하는데 그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운동만 끝나면 커피 생각이 먼저 난다. 손끝까지 저릿저릿 카페인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주저 하지 않고 커피를 마신다. 이제는 예전처럼 치팅데이를 정해 놓고 먹는 날은 없다. 음식을 먹는 날을 정하고 그 날을 기다린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운동을 좀 더 하면 더 했지만 먹는 걸로 나를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친구들은 한 동안 나의 치팅데이를 기다린 적이 있다. 본인들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니 나의 치팅데이 날을 맞춰 먹겠다는 생각인데,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불편함을 겪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나의 치팅데이는 끝나지 않는다. 음식 가지고 내 몸을 속이면서 먹고 싶지 않다. 먹을 것을 고르고 세팅하고, 먹는 행위, 그리고 맛을 느끼며, 함께 먹는 사람과의 그 시간을 보내는 그 행복감을 어떤 날로 정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삶을 살 것이다.


치팅데이는 이제 그만 허니스트데이(Honest Day) 내 몸에 솔직함을 주겠다. 그래야 나 자신에게 당당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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