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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윤 Oct 12. 2020

7. 이제야 설악산을 만났어요.


어린 시절 " 바다가 좋아? 산이 좋아?"라고 물어보면 저는 언제나 "바다가 좋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역시 "바다에 갈래? 산에 갈래?"라고 물으면" 바다에 갈래"라고 대답했습니다.

산보다 바다에 더 끌리는 이유는 제 사주에 목(木)이 많은데 비해 수(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산에 오르면 체력적으로 힘겨웠기 때문입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내륙도시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바다 가까이 머물 수 없어 항상 아쉬웠고 바다를 보면 반갑고 좋았습니다. 더군다나  출산 이후, 무릎 관절이 부실해지면서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기가 부담되어 등산은 점점 기피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에 있는 명산입니다. 하지만 등산을 내켜하지 않는 데다가 제가 거주하는 대구와 거리가 멀기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강릉에 거주하게 되었고,  남편이 가고싶어하는 데다가 이번이 아니면 기회 만들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아 속초 바다를 둘러 본 후, 설악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설악산 인근 도로의 차들이 밀리기 시작합니다. 입구 쪽에 가까워지자 들어가려는 차량만큼 등반했다 내려오는 인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 오늘 얼마나 많이들 방문했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라고 말을 건네자
" 설악산 단풍은 아직 멀었는데, 연휴를 맞아 몰려온 것 같아."남편이 대답합니다.
밀리는 차량을 감수하며 간신히 주차를 하려니까
" 오늘 케이블카는 매진되었습니다"라고 안내원이 알려줍니다. 애초에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을 등반하려던 남편과 저는 당황스러웠으니 돌아갔다 다음날 다시오기도 어려워 케이블카 탑승을 포기하고 걸어서 탐방하기로 했습니다.  

결혼 전 설악산에 와 보고 30년 지나 방문하게 된 남편은
" 엄청 많이 달라졌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계곡도 더 넓어진 것 같아"
아닌게 아니라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무려 30년 만이니 산은 변함이 없어도 입구 쪽 시설은 많이 확충되어 변화가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울산 바위를 거쳐 비선대로 가는 방향은 사람들많고, 비룡폭포 쪽으로 향하는 발길은 적었지만 우리는 그리 가기로 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탈 수 없는데다가 일몰시간이 멀지 않았고 비선대 쪽으로 왕복하기에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선대 쪽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지는 모르겠지만 가파른 산길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 더 좋았고, 폭포에 마음이 더 끌렸습니다.

비룡폭포를 향해 걸으면서,  탐방 후 나오는 사람들과 드문드문 마주쳤습니다. 완만한 흙길을 걷다 거친 돌로 형성된 가파른 산길을 만났을 때는 남편이 손을 잡고 이끌어 주어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출렁다리와 절벽이 보이는 아찔한 계곡길을 지나 육담 폭포에 이르었을 때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맑은 물줄기에 경탄했고, 오르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비룡폭포에 도착했을 때는 뿌듯하였습니다. 다리쉼을 한 후 천천히 내려가고 싶었으나
"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길이 험하니 바로 내려가자. 어두워지면 위험해" 남편의 말에 발길을 서둘러  돌이 많은 가파른 산길을 15분만에 내려왔습니다. 화장실에 들른 후 잠깐 쉬었다가 완만한 흙길을 걷다보니 어둠이 몰려와 시야를 가렸습니다. 남편이 핸드폰 플래시로 길을 비춘 후, 함께 손을 잡고 걸어나갔습니다.

" 울산 바위를 거쳐 비선대 쪽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비룡폭포를 다녀왔으니 설악산 절반은 다녀온거나 마찬가지네"
남편의 말에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오늘 잘 다녀온 것 같아. 넉넉하게 시간 잡아 왔더라면 얼마나 많은 인파를 겪었겠어. 그렇게되면 그건 설악산 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지"

사람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저는 인적 드문 곳을 좋아하기에 오후 늦게 등반한 산행이지만 만족스러웠고 입구에서 비룡 폭포까지 2.3km여서 왕복 거리가 크게 길지 않아 다행스러웠습니다. 이로써 저는 설악산 코빼기도 구경 못한 사람에서 설악산 등반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담폭포

비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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