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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윤 Oct 08. 2020

 2. 솔향에 깃들고 파도 소리에 가슴 기울이다.

아침의 흐린 날씨는 저녁 무렵이 되자 약간의 푸른빛을 하늘에 돌려주었습니다. 고즈넉한 능선 위에 솜털같이 부드러운 흰 구름이 따스한 위로처럼 잔잔하게 펼쳐져 일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역시 몸이 고단한데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 두 시 넘어 눈 뜬 까닭은 낯선 잠자리 때문이었습니다. 장시간 운전과 여행의 여정으로 곯아떨어진 남편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어둠 속 작은 조명등에 의지해 스마트폰에 활자를 입력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가 흐려 동해 일출을 보기는 틀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금진해변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형광등을 켰더니 남편이 때마침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오전 7시 반쯤 숙소를 나섰습니다. 여성수련원 정문을 나서자 옥계 산림욕장의 나무 데크길이 울창한 솔숲 사이로 발길을 이끕니다. 키 큰 소나무 아래 차박을 하는 야영객들의 간이텐트가 드문드문 보이고 코 고는 소리도 들립니다.


솔숲 사이 오솔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흙길에는 온갖 잡풀들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소나무 아래에는 묘소가 간간이 보입니다. 오솔길을 지나 포장된 도로로 이동하여 금진초등학교 쪽으로 걷다 보니 양쪽 소나무 그늘 아래 무덤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 공동묘지가 따로 없네. 길가에서 이렇게 많은 무덤을 보긴 처음이야." 남편의 말마따나 무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언젠가 팔공산 불로동에서 보았던 고분군이 연상됩니다. 무덤 옆에서 도라지와 옥수수가 자라고 호박도 꽃을 피웠습니다. 무덤의 지척에서 자라는 산 자들의 먹거리를 보니 생과 사의 경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소에서 20여분 떨어진 금진해변에 도착했습니다. 풍차 모양의 화장실에 들렀더니 세면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고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인근에 수제버거와 토스트, 커피를 파는 카페도 보이고 서핑 도구를 대여하는 상점도 보입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나중에 천천히 마을 구경을 하기로 하고 여성수련원 주차장으로 돌아온 후, 차량을 이용해 망상해수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망상해수욕장은 끝이 아득할 정도로 긴 해변을 보여주었습니다. 파도 소리가 어찌나 큰지 모래사장에 밀려와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웅장합니다. 바람은 잔잔한데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세찬 파도가 멸치 떼 무리를 흔들어 그 일부를 해변가에 연거푸 쏟아냅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멸치들은 펄떡거리기도 하고 모래사장을 데구루루 구르기도 하지만 몰아치는 파도 때문에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모래 위에서 움직임을 멈춥니다. 남편이 팔딱거리는 멸치 서너 마리를 손으로 집어 바닷물에 던져 넣어 주었지만 해변에 밀려온 숫자가 너무 많아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바구니 들고 해변가의 멸치를 주워 담으면 싱싱한 멸치회를 실컷 먹을 수도 있겠다."는 남편의 농담 섞인 말을 들으며 모래 위에서 숨 거둔 멸치를 보니 측은하기도 했지만 파도가 일시에 쏟아놓은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멸치 구경에 계속 재미 붙이다가는 시간이 마냥 지체될 것 같아 전날 가려다 가지 못한 능파대 촛대바위를 보기 위해 해변을 뒤로하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몰았습니다.

 금진 소나무 숲


금진 소나무 숲
파도에 해변으로 밀려온 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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