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05
저마다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 다르니 사람마다 알차게 쓰는 준비물에도 차이가 있다. 옷, 비상식량 등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준비물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 외 아래 물건들을 내가 어떻게 활용했는지 참고 삼아 공유하고자 한다.
아프리카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손 씻을 물이 없고 용변 후 뒤처리를 할 휴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 공공 화장실이라도 손 씻을 물은커녕 변기를 내릴 물 자체가 안 나오곤 한다. 이런 비상 상황을 대비하여 손 세정제와 휴지는 꼭 필요하다.
물론 전략적으로 물 먹는 양을 조절하며 괜찮은 식당이나 숙소를 이용할 때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낭여행 중 긴 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라도 생기면 유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이 경우는 정말 복불복이다.
위 사진은 내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잠비아 공공 화장실 영수증이다. 리빙스톤에서 버스로 루사카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예상보다 1.5배가 더 걸렸다. 중간에 버스가 멈추는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3콰차를 내고 공공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어떤 서양인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화장실 변기에 물이 안 나와요."
생리현상은 피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갔건만 변기 상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볼일을 본 채 물이 내려가지 않은 서양식 변기가 있었다. 그런데 변기 커버는 물론이고 엉덩이를 걸터앉는 받침 자체가 없었다. 물이 귀한 지역인 건지 내가 여행을 하는 요즘이 건기라서 물이 안 나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손 세정제 대신 물티슈를 엄청 많이 챙겨가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가급적 손 세정제를 권하고 싶다. 안 그래도 아프리카를 가보면 현지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거리에 넘쳐난다. 여행을 한다는 이유로 재활용이 어려운 물티슈를 챙겨간다면 아프리카 자연에 해가 될 수 밖엔 없다. 또한 물티슈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챙기면 챙길수록 무게가 많이 나간다.
내 경우 손바닥 크기 1/2 만한 휴대용 손 세정제 1개, 여행용 티슈 2개를 챙겨갔다. 한 달 사용량으론 부족해 보였지만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이 정도만 준비했다. 그런데 너무나 조금씩 아껴 사용하다 보니 한 달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손 세정제는 1/3 분량이, 여행용 티슈는 1/2개 정도가 남았다. 준비한 분량이 다 떨어지는 게 내겐 공포였기에 그만큼 아껴서 사용한 결과다.
혹시라도 다시 아프리카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때도 반드시 침낭을 갖고 갈 것이다. 꼭 등산이나 캠핑을 하지 않더라도 침낭은 이불 그 자체로 유용하다. 여러 숙소를 거치다 보면 과연 '주인이 이 방 이불을 제대로 세탁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많다. 또한 타자라(TAZARA) 열차 침대칸에서 며칠 자야 할 때도 침낭이 있으면 이걸 이불 삼으면 된다. 열차에서 기본으로 제공해 주는 담요는 전혀 빨지 않고 그냥 개어놓은 듯한 상태다.
여행 준비를 할 때 침낭을 고르는 데만 1개월 정도 걸렸다. 결정장애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러 나라를 경유해야 해서 지역별로 기후가 달라 적절한 침낭 모델을 선택하기 힘들어서였다.
결국 소위 '3 계절용 침낭'을 선택했다. 처음엔 험하게 쓸 수 있는 값싼 솜 침낭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솜 침낭은 무게가 나가고 압축력이 좋지 않기에 아주 추운 겨울철을 제외하면 여러 국가를 경유하는 데 무난하게 쓸 만하고 압축력이 좋은 650g짜리 구스 침낭을 골랐다.
손을 씻고 나서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습관이 있었기에 매일 샤워할 때 손수건을 비누로 빨아서 다시 썼다. 이렇게 하면 휴지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태양이 낮에 내리쬐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차양 넓은 모자 아래에 손수건을 펼쳐서 얼굴 가리개로 활용했다. 얼굴이 타지 않기 위한 미용 목적도 있겠지만 해가 작열할 때 열기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비상식량으로 싸 간 컵라면 등을 먹을 때, 위생 상태가 의심스러운 식기를 사용하기 껄끄러울 때 내 수저를 활용했다.
의의로 쓸모가 많다. 아프리카를 구경할 때면 꼭 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야외에서 숙박하는 투어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칡흙 같은 어둠을 뚫고 야외 화장실에 갈 때면 빛이 필요하다.
또한 갑자기 숙소나 열차 등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단전이 되면 나도 모르게 헤드렌턴을 끄집어냈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겠냐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배낭여행 중 실제로 이런 일을 종종 겪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전력 상황이 좋지 못한 경우가 꽤 많다.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 손전등을 켜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헤드렌턴이 필요한 대자연 속에서 관광할 때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느라 휴대폰 배터리를 아껴야 할 경우가 많다. 전기가 부족한 환경이니 전자기기를 그때그때 충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휴대폰 손전등을 이용할 경우 한 손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헤드렌턴을 사용하면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현지에서 생수를 사 먹으면 자연히 플라스틱 생수병을 쓰게 된다. 그런데 이집트처럼 무더위가 심한 지역을 여행할 때면 차가운 생수가 자주 그리워진다.
‘미지근한 걸 넘어서 금방 따뜻해지네..?! 아, 찬물 먹고 싶어..;;;;;;’
야외 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인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 더위를 식힐 만한 찬물 한 모금이 간절할 때가 많다. 이때마다 텀블러에 미리 쟁여둔 찬 생수를 아껴 먹었다.
반대로 추운 날씨를 견뎌야 할 때도 텀블러를 알차게 활용했다. 나미비아 사막 투어 때나 세렝게티 및 응고릉고르 국립공원 내에서 숙박 및 식사를 할 때 의외로 진짜 춥다. 뜨끈한 물 한 통이 있으면 몸을 녹일 수 있으니 마음도 든든했다.
참고로 내 경우 뚜껑을 컵으로 쓸 수 있는 야외 활동용 텀블러를 준비했다.
파스는 상비약으로 분류 가능하니 별도로 적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걸 현지인에게 선물용으로도 쓸 줄은 예상 못했다. 무릎 관절이 안 좋은 잠비아 현지 사람과 친해진 후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마침 갖고 있던 파스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또한 킬리만자로 등반을 할 때도 어깨와 허리에 붙이는 등 파스는 유용하게 썼다. 더운 나라에서 살다가 등반 도중 찬 기후 적응에 실패해서 발과 무릎 관절이 시린 통증을 경험하는 인도인에게도 우리나라 파스를 나누어 주었다. 그 결과 넉넉히 가져간 파스는 남김없이 다 썼다.
DEET 성분으로 된 야외 활동용 모기퇴치제를 추천한다. 제품 검색을 해보면 몸에 해롭지 않은 천연 성분으로 만든 제품 등 요즘은 여러 모기퇴치제들이 많다. 다만 내가 알기론 DEET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지속 시간과 퇴치력이 가장 강하다. 모기퇴치제를 사용하는 목적은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요런 걸 다이소에서 판다. 철로 된 원형 틀이 있는 빨래망이다. 이런 틀 한쪽 끝에는 자그마한 원형 천 고리가 달려 있다.
배낭 무게를 줄이려면 여행자는 옷을 많이 가져갈 수가 없다. 숙소에서 매일 속옷이나 반팔 옷 정도는 빨아서 다음날 입었다. 만일 옷이 마를 만한 시간이 부족한 경우엔 빨래망에 담아서 갖고 다녔다.
빨래망에 저렇게 천으로 된 원형 고리가 달려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 숙소를 전전하다 보면 샤워 장소에 소지품 등을 놓아둘 받침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저 빨래망을 샤워 장소 어딘가에 고리를 걸 수 있는 지점에 걸어두고 유용하게 사용했다. 세면도구, 작은 소지품, 혹은 방금 손빨래를 마친 속옷 등을 집어넣으면 다른 곳에 놓아두는 것보다 위생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빨래망 자체도 손빨래를 할 수 있고 금방 마른다.
엄밀히 말하면 캠핑용 시계인데 요즘은 군 입대 예정자들이 기상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구입하는 필수품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군인시계' 등으로 검색하면 인기 브랜드를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시계는 적을까 말까 하다가 일단 적는다. 난 한 번 잠을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잠보'다. 때문에 안 그래도 새벽 비행기나 버스를 타야 하는 빡빡한 여행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충분히 큰 알람 소리가 나는 시계가 절실했기에 처음에는 여행용 아날로그 미니 알람 시계를 미친 듯이 검색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상품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대안으로 이걸 샀다.
결과적으로 보면 꽤 잘 활용했다. 사실 알람 진동이 내가 기대한 만큼 세지는 않았고 진동 지속 시간도 좀 짧았다. 다만 이건 내 주관적 기준이다. 야간에는 특정 버튼을 누르면 시계 화면이 밝아져서 보기 편했다. 사실 여행 중에는 이 시계 덕분에 제때 일어난 게 아니다. 정신적 긴장도가 높으니 그냥 저절로 눈이 떠졌다.
사실 내가 유심(USIM)을 구입하지 못했을 때 국가 이동 시 시간대가 바뀌면 급한 대로 스마트폰 시간이 아닌 이 손목시계에 의지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국가로 입국해도 도착 시간대가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유심을 못 사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비행기를 많이 타야 할 때는 짐 검색을 할 때마다 이런 전자 기기는 항상 풀어서 검색대를 통과시켜야 하므로 좀 귀찮은 면도 있다.
사파리에서 동물 구경을 하려면 필수 품목이다.
사막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왜 이런 전통옷을 입고 다니는지 이번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낮에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사막 지역을 구경하다 보면 이러다 정말 타 죽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든다. 그만큼 뜨겁다. 이런 지역에 있는 관광지는 왜 새벽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한지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유적지에 가고 싶을 땐 태양이 본격적으로 강해지기 전 이른 아침에 구경하는 게 시원해서 훨씬 좋았다. 한낮에 구경을 할 거라면 긴팔 얇은 남방을 하나 챙겨가자.
배낭 무게는 가벼울수록 여행을 더 즐길 수 있다. 위 물품들은 내 배낭여행 방식 상 유용했던 준비물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난 Notion 앱을 이용해서 필요한 물품 목록, 판매처 링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서 가격 비교 시 참고했다. 먼 곳을 떠나는 준비 과정이니만큼 천천히 나만의 물품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자.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나 혼자 잠보! 아프리카 배낭여행] 2023.09.03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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