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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Sep 08. 2023

여행 중에만 선택적 불안장애?!

나 혼자 잠보! 아프리카 배낭여행-07

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워낙 잃어버리는 게 습관이 되니 이런 일이 한동안 없으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이번 글은 아프리카 여행 정보글이 아니라서 대다수 독자분들에겐 이 글을 읽는 게 시간 낭비이다. 부끄럽지만 워낙 내겐 큰 일이었기에 혼자 신나게 삽질한 사연을 적어본다.


평소엔 물건을 잃어버리는 걸로 이만큼 걱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행 준비를   마음속에 불안이 올라오는 편이다. 전공 관련 현업에서 불안장애 환자가 내게 호소하는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싸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졌다. 범불안장애(General Anxiety Disorder) 환자 등 매사에 걱정이 많은 사람은 어쩔 땐 걱정거리가 없는 것 자체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즉, ‘지금 미리 대비해야 할 뭔가를 내가 미처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잡념이 올라오며 다시금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내가 왜 이러나 싶게 짐을 쌀 수록 부족한 뭔가가 떠오르며 왠지 귀중품을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도 짙어졌다.


습관처럼 잃어버리는 이어폰 같은 건 아예 2개를 챙겨야 하나, 스마트폰은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낭패인데 2개를 챙겨가야 하나..?


물건 챙기기에 대한 고민은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날 직전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갑 잃어버리고 찾기, 식겁하다.

지갑 잃어버리고 찾기,

식겁하다



예감은 적중했다.

여행 2일 차부터 지갑을 찾느라 혼쭐이 났다. 숙소에서, 그리고 공항에서도.


거의 만 하루 동안 지구 반 바퀴를 비행기 안에서 보낸 후 잠깐 케이프타운 공항 근처 숙소에서 눈을 붙이고, 오늘 새벽엔 드디어 마지막 꼬마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나미비아로 가야 했다. 그런데 비몽사몽 일어나서 배낭 짐을 챙기는 중 지갑이 안 보이는 걸 깨달았다.


어제 입었던 바지나 점퍼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다음 배낭 짐과 소지품을 다 꺼내다시피 했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심장이 저절로 빨리 뛰며 머리가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구나.
잠잘 때 지갑을 눈에 보이는 데 두었어야 했는데.’




생각이라는 게 되지 않으면서 비상금이 남은 복대 지갑을 쳐다보며 망연자실해졌다. 분명 어제저녁 ATM 기계에서 돈을 찾을 때까지 나는 지갑을 갖고 있었다.


그 후에는 아무 데도 외출이라는 걸 하지 않았으니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다가 어디서 떨군 거였나? 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나를 저주하며 모든 짐을 휘졌는 순간 바로 침대 밑바닥, 그것도 발바닥이 닿는 지면이 아닌 침대 시트로 가려진 바닥 구석에 지갑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닥 쪽이어서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유심히 안 보았다면 못 알아보았을 수도 있었다. 순간 식은땀이 흐르며 한숨을 돌렸다. 단 10분 동안 잠시 지옥에 갔다가 다시 천국에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지갑을 찾기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비행기를 타려면 지갑을 더 찾지도 못하고 이 나라를 떠야 하는데, 왜 현금을 이렇게 많이 인출해 왔을까. 진짜 내가 미쳤나 보다.. 아주 혼자 삽질을 하는구나.


이런 잡념을 뒤로한 채 다시 지갑을 깊숙이 바지 앞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후 체크아웃을 하고 우버로 공항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 직전, 또 한 번 혼자서 지갑 찾기 대소동을 벌렸다.




아까 숙소에서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을까. 몇 번이나 두 눈으로 확인하며 보안 검색용 작은 소지품 배낭 안에 여권과 지갑 등을 모두 넣어 놓았는데, 체크인 후 단 몇 분 간 검색대로 이동하고 배낭 안을 다시 확인해 보니 또 지갑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기가 막혔다. 속으로 나를 있는 대로 욕하며 다시 두 손으로 마구 가방 휘젓기 놀이를 한 결과 결국 지갑이 배낭 안에 있는 걸 확인했다.


하도 연속으로 놀래서 원래는 공항에서 돈을 더는 안 쓰고 나미비아 돈으로 모두 환전하려다가 소위 '시발 비용'으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그런데 카드로 커피값을 결제한 후 지갑 속 지폐를 확인해 보니 내 계산으로는 아직 남아 있어야 할 100 란드 남아공 지폐가 보이지 않는 거였다. 이 지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여행 중
선택적 불안이 있다면
위로를



가끔 여행 중 꽤 오랫동안 소지품을 잘 챙기며 지내다 보면 괜히 찝찝해진다. 이럴 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틀림없이 뭔가를 밖에 떨구었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솟구쳐 오른다. 물건을 잘 간수하는 이에겐 이해가 안 될 거다. 이런 잡념은 혼자만의 상상임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뜬구름같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이런 생각들을 의식 아래로 꾹꾹 누르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땐 계속 지갑이나 노트북 같은 귀중품이 든 가방을 만지작 거리곤 한다.


모든 게 익숙한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들, 비행기를 잘 못 타는 사람들, 혹은 비행기 안에서 호흡 곤란이나 폐쇄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여행지에서 반드시 뭔가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타지에서는 계속 소지품을 체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에게 위로를.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나 혼자 잠보! l 아프리카 배낭여행] 2023.09.08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_AFMSZ7ssWoEItaft6s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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