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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Aug 30. 2019

이건 사랑이냐 집착이냐

이렇게까지 엄마를 좋아하는 게 정상인가요?

"원래 이렇게까지 엄마를 좋아하는 게 정상인가요?"

라는 질문글을 맘카페에 진지하게 쓰다가 문득 피식 웃으며 그냥 창을 닫았다. 두 돌도 안 된 아기가 엄마 좋아한다는데 정상 비정상을 논하고 있다니. 요즘 나의 가장 고민거리가 '애가 날 너무 좋아하는 거'여서 그게 얼마나 문제행동인지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정답 없는 정답을 구하고 있다니. 난 아직 좋은 엄마 되려면 한참 멀었다 멀었어.


에미야 날 안으란 말이다. 지금. 당장.


그러나 그냥 현실육아 얘기를 하자면 이게 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다. 원래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무지 좋아하던 소율이는, 아무런 계기 없이 돌연 엄마랑만 책을 읽어야 하고 엄마랑만 외출을 해야 하고 엄마랑만 손을 잡아야 하고 엄마가 안아줘야만 하는 아기가 되어 버렸다. 그 중 '엄마가 안아줘야만 하는 것'은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원인이다. 소율이는 걸음마 이후 스스로 걷고 뛰는 것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문득 엄마가 자길 안아주는 것을 자기에 대한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다리가 아프거나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안아달라 한다. 유모차도 소용 없고 아빠가 있어도 소용 없다. 무조건 엄마를 향해 손을 뻗고 그게 마음대로 안되면 제멋대로 발차기를 하며 엉엉 운다. 집에서는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밖에서 안아달라고 떼를 쓰면 사람들 시선도 있고 하여 결국 안아줄 수 밖에 없는데, 이 무자비한 아기는 계단이건 내리막이건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내가 짐을 들고 있던 말던, 유모차를 끌고 있건 말건 "무조건 안으라"인 거다. 소율이를 안고 있는 내 팔에는 내 가방과 장바구니와 애착인형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다반사다. 어깨와 팔이 빠질 것 같고 허리가 욱신거린다. 나는 현재 5개월에 접어드는 임산부이고 임신 후 다시 허리 디스크가 도져 있는데다 아기는 무려 14키로에 육박하기 때문에, 정말로 위험할 것 같은 순간들도 종종 있다. 내가 너무 위태위태해 보이는지 이 삭막한 세상에서도 요새는 가방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내 관절 건강 외에 또 걱정되는 것은, 소율이가 엄마를 편애하게 되면서 발달의 퇴행이 생기는 것이다. 첫 번째는 잠 퇴행이다. 소율이는 6개월부터 누워서만 자는 아기여서 오히려 외출시 안아주면 잠을 못 자서 문제였는데, 갑자기 낮잠도 밤잠도 엄마에게 안겨서 자려고 한다. 이제까지 해온 수면교육, 수면습관 들이기가 모두 헛수고가 된 느낌이다. 두번째는 어린이집 퇴행이다. 지난 학기부터 어린이집에 잘 다니면서 사교성도 늘었고 낮 시간에는 엄마 없이도 안정감을 찾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낯가림도 무척 심해지고 등원할 때 다시 울면서 등원하게 되는 맘아픈 상황이 벌어졌다.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어린이집 문을 닫고 나가는 그 죄책감은 정말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또한, 월령이 증가하면서 혼자 노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는데 엄마 집착 이후 절대 혼자 놀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엄마가 같이 하거나 최소한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화장실 앞에서 날 쳐다보며 기다린다. 내가 화장실 문을 닫으면 자기가 다시 문을 열고 또 지켜보고,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있는 내 무릎에 앉혀달라 한다. (하아.. 나의 사라진 인권이여 ㅠㅠ)


이유없는 떼도 늘었다. 안된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기 것에 대한 욕심이 매우 세져서 조금이라도 못하게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오면 주저앉아 우는 일이 늘어났다.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아무리 달래고 들어주려 해도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다. 공공장소에서 상황이 발생하는 날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곤 한다. ‘대체 왜 그러나. 이제 알거 다 알면서. 말 다 알아들으면서. 그저 날 괴롭히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아기가 정말 밉고 원망스럽다. “나는 너 때매 이렇게 고생하는데 대체 뭐가 불만인 거니. 어떻게 해줘야 만족하는 거니” 하며 나도 같이 울기도 했다.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이럴 땐 스스로 그치길 기다리는 수 밖에..


사랑보다 집착에 가까워 보이는 아기의 열렬한 엄마 사랑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도 식을 기미가 없다. 소율이가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무조건적인 수용의 경험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떼를 써도 그런 방식으로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닫는 게 필요한 것인지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럽다. 언제나 그렇듯 적당한 선에서 수용해 주고 적당한 선에서 저지해 주게 된다. 정답은 알 수가 없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기를 그저 바랄 뿐.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아기는 병도 확실히 주고 약은 더 확실히 준다. 집착 행동들을 살짝 걷어내고 보면 아이의 사랑은 무섭게 느끼기엔 너무 솔직하고 달콤한 것이다. 하원하러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소율이는 아주 활짝 핀 해바라기같은 얼굴을 하고 달려와 폭 안기고 작은 팔로 내 목을 한껏 끌어안는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 눈을 올려다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려는 듯 아직 외계어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무엇인가를 종알거리는데, 이때만큼은 하원시간이 하나도 안 기다려졌던 지난 몇 시간의 기억을 싹 다 잊고 "네가 너무 보고싶었다"고 말하게 되는 거다. 이렇게 누군가가 아무런 마음의 장벽 없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인 것을. 그 행복을 잠시 만끽하고 있노라면 잠깐이라도 이 사랑을 고민이라 여겼던 내가 어리석다. 나는 이 어린 아이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때와 장소를 생각하게 하고 눈치보게 하려 했던 것인가. 그저 내가 더 사랑해주면 해결될 것을. 아이는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뿐인 건데.


네가 화내고 울어도 널 사랑해


실제로 나에 대한 소율이의 사랑은 나의 그것보다도 더 맹목적이다. 내가 가끔 참지 못하고 욱해서 화내고 짜증을 내도 아기는 나를 사랑한다. 잠깐 무서워하거나 울더라도 여전히 날 끌어안고 나에게 볼을 부빈다. 오죽하면 남편이 지난번에 소율이를 보며 얘기하길, "넌 엄마가 그렇게 짜증내는데도 엄마가 좋니?"라고. 그런 걸 생각하면 소율이가 꾀를 부리며 떼를 쓸 때도 화를 낼 때도 "엄마는 널 사랑해. 네가 화가 났을 때도, 엉엉 울 때도 널 사랑해"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해주면 70% 정도는 소율이의 마음도 풀리며 진정이 된다. 내가 화내는 건 소율이의 행동이 미워서이지만, 소율이가 화내는 건 나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함인 것이다. 정말이지 짠한 너의 사랑. 오늘도 나는 이렇게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반성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오간다. 누가 엄마의 삶이 단조롭다 했던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되는 감정은 어디까지 다양해진단 말인가.


사랑해 아가야. 적어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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