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어느 날, 언니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바로 우리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보라고 했다. 함께 근무해 온 교수님과 동료 간호사들만큼 믿을만한 의료진이 따로 있을까.
사실 의료진뿐만 아니라 내가 무려 대학병원 분만실 간호사니까 언니가 응급상황이 생겨도 즉시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내가 다니던 병원으로 오는 게 좋았다.
물론 내가 분만실 간호사가 되었을 때부터, 언니가 임신 계획을 했던 순간부터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대학병원 분만실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상황의 산모들을 많이 보게 되어 언니의 임신기간 내내 사실 마음 한편에서는 항상 불안함이 컸다.
처음엔 그저 내가 잘 아는 곳이니까 하며 단순하게 권했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이 아닌 내 친언니가 임산부로 진료를 보러 다니게 되자 은근 부담이 있었다.
주수마다 하는 모든 검사와 그 검사결과에 따른 아기의 상태 등 모르는 것이 없다 보니 검사하는 매 순간 긴장상태였다.
물론 언니가 지레 겁먹을까 항상 좋은 방향으로 설명했지만 혹시나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하며 나 혼자 속으로는 꽤나 앓았다.
다행히도 언니는 건강하게 임산부 기간을 보냈고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는 Breech(역아)로 엄마 심장 가까이에 딱 붙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수술이 결정되었다.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우리 언니에게 자연분만은 무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내 입장에선 내 조카가 아주 복덩이였다.
수술날짜를 잡고 기다리던 와중 2022년 4월 18일, 나는 데이 근무가 끝난 후 남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한가롭게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울리는 진동소리에 흠칫 잠이 깼다.
핸드폰 화면에 뜬 "우리 언니"를 보자 전화를 받기도 전에 순간 '어? 양수 터졌나?' 하는 생각이 들며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 당황이 잔뜩 묻은 채로 양수가 터진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하는 언니에게 나는 침착하게 준비해야 하는 물품들,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하고는.
난 전화를 끊자마자 옷을 입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졸음은 다 날아가고 병원까지 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며 설렘과 걱정이 마구 뒤섞이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미리 분만실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받을 준비를 부탁했다. 병원 바로 앞에 살던 나는 5분도 안 돼서 분만실에 도착했고 언니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PROM(Premature rupture of membranes, 예상보다 이른 양막 파수) 산모가 으레 그러하듯 언니는 진통이 슬슬 시작되는 상태로 분만실에 도착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오신 교수님은 지금 바로 수술을 할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할지 언니에게 의사를 물어보셨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수술을 진행하면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을까 시간을 주기 위해 배려해 주셨던 것 같다.
그 순간 진통으로 아파하던 언니와 눈이 마주친 나는 교수님께 "지금 바로..!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외쳤다.
28년간 봐온 우리 언니인데 표정만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보였다.
'이걸 밤새 참으라니, 절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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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수술을 위한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언니는 금방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2022년 4월 18일 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내 조카가 태어났다.
분만실에서 근무하며 수없이 많은 아기들을 받아왔기 때문에 언니의 분만도 나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수술실 문을 열고 인큐베이터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곧 아기를 만날 것이 확 실감 나며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들어가자 이미 마취된 상태로 누워있는 언니가 보였고 '잘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신규 간호사 시절 외웠던 제왕절개수술 분만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한 치의 실수도 스스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중의 신중을 기해 아기침대를 준비했다.
수술실 안은 고요한 가운데 기구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옮겨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고 나는 수술대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모두 눈에 담았다.
아기가 세상을 처음 만나는 그 순간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가족이며 다시 볼 수 없는 유일한 순간이기에 훗날 아기가 태어난 그날을 궁금해할 때 기억에 잘 담아두었다가 모두 말해주리라 생각하고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처음 조카를 마주하자마자 어라? 너무 익숙한 얼굴이 바로 보였다.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리며 낯가림도 없이 그저 반가운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평생을 보고 산 얼굴이, 아기 때 앨범에서 항상 봤던 그 모습이 이 자그마한 아기에게 보이자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너무 신비롭고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다.
작은 점에서 시작되어 무럭무럭 언니의 뱃속에서 자라난 아기가 실체가 되어 눈앞에 딱 나타나니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생겼음을 실감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던 나에게 처음으로 첫눈에 반한 대상이 생긴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나의 조카는 울어도 웃어도 눈을 떠도 감아도 그냥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언니에게 조카를 처음 만난 소감을 말할 때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타인을 만날 때 마음이 100% 사랑만으로 가득 차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 조카가 나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줬다고. 사랑이 가득 차있는 마음은 꽤나 무겁지만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 언니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자라는 중에는 티격태격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쌈닭들이었지만 언니가 결혼하고 나도 기숙사로 나가게 되면서 떨어져 지내니 점점 언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자 친구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언니의 소중함을 느끼며 차마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온 시절을 아쉬워하고 있던 와중에 주지 못하고 마음에 남겨뒀던 사랑까지 탈탈 털어서 듬뿍 쏟아부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꺼내와 조건 없이 건네주는 그러한 깊고 진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내 조카는
지금도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존재만으로 행복과 웃음을 넘치게 주는, 그래서 나 스스로 항상 부족한 이모라고 느끼게 하고 더 좋은 이모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조카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은 내가 "분만실 간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결국엔 이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버텨냈던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에 포기하지 못했던 것도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한 행복한 추억이 되어야 하니까, 그때까지 내가 버텨내야 하니까 그럴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 소중한 추억이 앞으로 분만실 간호사가 아닌 삶을 살게 될 나에게 그때 내가 분만실 간호사였던 것에 후회 없이 그저 마음 가득히 감사할 수 있도록, 그런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새로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