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그다지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심 은근히 세상 누구보다 이기적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적도 많았다.
분만실 간호사로서의 나는 현실의 나와 참 달랐다.
평소 나는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를 스치는 것조차 불쾌하게 느낄 정도로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한다.
하지만 분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멋도 없는 파란 간호사복으로 갈아입은 후에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
피와 양수가 덕지덕지 묻어 축축하고 냄새나는 환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진통하는 산모의 허리를 끝도 없이 쓸어내려주기도 하며 힘주기에 지쳐 손발이 다 축 늘어진 산모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한다.
힘주느라 피와 양수, 가끔은 생리적 현상까지 조절하지 못해 더러워진 치마도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가끔 너무 바쁠 때는 장갑낄 정신도 없어 맨손으로 척척 치워내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씻다가 스스로 놀란 적도 많았다.
끝도 없는 진통에 시달리다 분노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잡아 뜯던 산모에게 손이 붙잡혀 할큄 당하고 꼬집힌 날이 있었다.
정신없는 분만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손톱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된 손등을 발견하여 놀라고 속상하고 잠시 화도 났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 상처가 싫지 않았다.
몰아친 분만으로 늦게 퇴근한 나를 데리러 온 남편에게 상처투성이 손을 보여주며
"이것 좀 봐 오늘은 산모분이 내 손까지 뜯었다니깐" 하며 푸념처럼 늘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한 시간의 증거이자 건강한 아기의 탄생을 도왔다는 훈장같이 느껴졌던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손등의 상처를 마치 자랑하듯 보여주며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결론은 그 아기 참 예뻤어, 건강하게 빽빽 우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로 마무리했다.
그래서였는지 다른 상처들보다 더욱 오래 내 왼손에 남아주었던 반달모양의 훈장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문득 쳐다본 내 손등이 너무 깨끗해서 조금 속상했다.
분만실을 떠나온 지 수개월, 나는 가끔 깨끗해진 내 왼 손등을 손끝으로 만져보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분만실 간호사로서의 나를 떠올려보곤 한다. 이제는 입을 수 없는 투박한 파란색 간호사복도 가끔 그리워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호사로서의 내가 흐릿해지며 마치 내가 다정하고 따뜻한 간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런 간호사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결국 추억을 파고파고 그때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사소한 순간들을 사랑했었던 내가 떠오른다.
떠올린 생각들로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퍽 괜찮은 간호사였다고, 나는 그런 간호사라고 지금도 열심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