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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Jun 20. 2021

왕십리 이디야부터 대학로 스타벅스까지

열십자 복판들을 지나 캐러멜 프라푸치노

[만보 산책 일지]

'성동구 왕십리 _ 종로구  이화동'

100분 코스

왕십리 광장 ~ 마장 축산시장 입구 ~ 용두공원 ~ 서울문화재단 ~ 청계천 ~ 동대문 청평화, 동평화 시장 ~ 동대문 ~ 창신동 거리 ~ 율곡로 ~ 대학로 초입


5월 주말에 걷고 멈춘 왕십리역 이디야부터 다시

6월 만 보를 걸어 대학로 스타벅스에 도착해

방금 걸은 만 보 길을 기록할 참이다.

대학로 스벅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간략히.

Bgm. 빅조윌리엄스, 세이잇이즌소

이 카페는 그래도 자주 오던 곳이라 좀 익숙하고,

오늘은 꽤 오랜만에 오긴 했는데,

원래 자주 앉던

문 앞 테이블 자리, 평상 같이 넓은 자리

앉았다가

문득

누군가(연극인) 내게 이 자리는 ,

문 앞자리라 복이 달아나는 곳이라 한 게  기억나,

그냥 옆으로 좀 옮겨 창가 자리에 앉았다.

빨간 벽돌 모퉁이가 입구를 다소 막아준 자리.

그래도 기분 상

벽이 내 운을 지켜주는 자리겠지(?) 고 여기며.

방금까지 오전이라도 볕이 세어 너무 덥고 목이 말랐는데,

들어와서 캐러멜 프라푸치노 몇 모금 마셨더니

에어컨 바람도 강 너무 춥다. 

얼른 적고 나가야겠다.


주말마다 다른 곳들을 걷느라

거의 한 달 만에 '이어걷기' 만 보를 했다.

왕십리 이디야 지점에서 출발해,

광장에 설치된 소녀상을 보고

으로 만든 동물상을 지나

샛길로 빠졌다.

느린 우체통이 있었는데,

1년이 이젠 너무 빠르게 느껴져

10년, 15년쯤 되어야 느린 우체통 같다.

그러기엔 편지를 오래 관해야 하니

공간적으로 기술적으로 불편할 것 같긴 했다.

왕십리에서 출발하기 직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쇠 종을 울리는 교회 건물이 있는 걸까.

육중한 거대종아홉 번 울리는 걸 듣고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광장을 마주하고 북동쪽으로 난 작은 길로 빠졌고

그 길로 주욱 나가자

주말 새벽부터 일에 착수한 어르신 노동자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었고,

그 앞을 보니 성동구청이었다.

구청과 의회, 도서관, 보건소 등이 가득했다.

기관 정원이 쉬어 가기 꽤 넓고

주민 도서관도 있었다.

공공기관이 주는 감흥 크지 않아

춰 구경하 않은 채 그냥 걸었다.

걷다가 문득 검은 까마귀 두 마리를 보았는데,

덩치도 크고 소리도 큰 데

지상에 내려와 길가 쓰레기까지 집고 지나갔다.

약간 괴기스러웠는데

"까마귀 까악 까악 울며 새었소"라는

김소월 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시다.

아니 한국인이라는 지칭이 낫겠다.

김소월은 늘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인 1위니깐.


김소월, 길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 까악 울며 새었소


오늘은

몇 십 리

또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난 이 시에서 '열십자 복판'이라는 시어와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라는 애수 어린 맘을

좋아한다.

어딘가 마음에 품은 곳은 있지만

(그에겐 고향)

나그네 마음이 되어 떠도는 이의 심정이,

길 위에서 너무 와닿는 시다.

여보소,라는 투박하나 절실한 호칭도 멋지다.

김소월은 민요조 시조 어투라서

소리내어 읽어도 그대로 입에 착착 붙어서,

물 흐르듯 문장도 노래로 흘러간다.


왕십리 오기 전 잠시 들른 뚝섬역에서

김소월 시인 시를 만나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 나의 산책 파트너소월 형님인가 싶기도 했다.

심지어,

김소월 유명 시 중에 왕십리도 있다.


뚝섬역 스크린 도어 새겨진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예전엔 미몰랐어요, 를 읽으면서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도 함께 떠올랐다.

정말 예전엔 미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냐 누나야 강변 살자

심경에 종종 빠지곤 한다.

서울보다 어느 지방 소도시.

익명성은 보장되나, 서울처럼 번잡하진 않은,

모두 죽어라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조금은 괜찮은,

여유롭고 시간 초월적

강변에 살고 싶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전원주택을 짓고 가족끼리 평온히 사는 꿈.

물론 요샌 지방 친구들도 서울이나 마찬가지 바삐 사니

어디도 유토피아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 김소월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평범한 이에게도 와닿는 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왕십리' 시도 좋다.


비가 오나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오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나 오면 좋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이 시 때문에 나는 왕십리 이디야에서 멈춘 주말,

다음에 걸을 땐

비가 올 때 걸을까 싶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을 좋아다.

곱슬머리라 비가 오면 더 머리가 곱슬해져서

곱슬 헤어인들은 극히 싫어하는 비 오는 날이지만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날궂이 하듯 돌아다녔다.

비를 맞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을 만큼

비 오는 날을 그렇게 꺼리진 않은 편이다.

그런데 대학 시절 어떤 이가 비만 오면

모든 일정을 자체 폐쇄하고

 학교에 오지 않 신기하게 느껴졌다.

절대 안 나왔다.

대학생이니 가능했던 일 같은데

나오기 싫다고 안 나오고

비 오면 칩거하고,

그런 게

나랑 너무 달라 사랑했던 적이 있다.

비 오는 날은 음이온이 공중에 가득해

사람이 솔직해진다는 어떤 설을 읽던 것도 같다 .

비 오는 날이나 태풍이 치는 날

충동적으로 고백을 했고 사랑을 만나곤 했다.


십 대 사춘기 시절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오는 날 서점 같은 데를 가며

홀로 풀었다.

김소월 시를 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걸었다.

줄곧

근대 작가들을 참 존경 왔다.

(친일파 제외. 좋아하던 작가가 친일 전력을 세게

한 걸 보고 십 대 시절 심히 고민에 잠기고

결국 마음에서 떠나보낸 날들이 있었다.)

동주나 육사 등 식민지 시대에도 굳건히 글을 써 왔다는 게

멋있사람들을 사랑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남산 도서관에

가서 근대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었는데

어릴 적 습관이라 그런지

어른이 되고 나이가 계속 들어도

학창 시절 좋아한 시나 소설들은 마음에 남아 있다.


왕십리는 90년대 중반 대영 EMI라는 커다란

단과학원이 있던 곳이다.

선릉역에 한국학원이,

왕십리에 대영학원이 제법 규모가 큰

단과 학원으로 위치해 있었다.

서태지 사진이 들어간 책받침 등을 나눠 주며

학생들을 끌었고,

학 시절 왕십리 단과 문학 강좌를 끊고

고등학교에 가서

배울 문학작품을 선학습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중학교에서 배울

문학을 미리 찾아 보았다.

문학은 늘 내겐 공부라기보다는 취미처럼

느껴져 다량으로 볼수록 즐거웠고

볼 수 없는 날은 답답했다.

중 3 겨울 방학 왕십리에서 문학 강좌를,

선릉역에서 독일어 강좌를 하나씩 끊어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나는

어릴 때 역시 서울시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경의선 철로가 보이는 도선 사거리

왕십리를 지나자, 아니 정확히는

왕십리의 까마귀를 보자,

김소월이 떠올랐고,

김소월 시들에서 간접 체험한 자연 풍광들이

졌다. 왕십리 시에서는

무기력한 듯 축 늘어져 울어대는 벌새와,

그에 완전히 이입하진 못한 채

음울한 정조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 하지만

가도 가도(왕십리) 비가 온다는 슬 심경을

노래한 김소월 맘이 너무 애틋하게 다가온다.

뮤지컬 랭보에서 베를렌느를 연기한 김재범 노래하던 장면

2019년 '랭보' 뮤지컬에 심취했던 난

거기 베를렌느가 늘 울적함에 잠겨

노래를 부르는데, 그럴 적엔

김소월 비슷하다 느낀 적이 있다.

보고 또 보고 일적으로나 갠적으로 거의

다 외울 만큼 보아 버린 작품.

주인공 배우가 우울한 역일 때 사람을

미친 듯 끌어당기는 김재범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고.

김재범은 뮤지컬에서 김유정을 변형한 인물 김해진

맡았던 배우인데

한국 시인 역할도 어울 이다.

이상을 작품화한 뮤지컬 '스모크'를 못 본 게

좀 한스럽다. 다음에도 이상 뮤지컬 스모크에

김재범이 나오면 꼭 봐야겠다.


청계천에서 만난 고고한 새
청계천 옛 고가다리 위 막대로 머리 긁적이는 새. 108 번뇌 중

왕십리는 무학대사가 수도가 될 명당으로 생각했다가

어느 노인, 도선 대사가 나타나 십리를 더 가라

(그곳이 경복궁) 했다는

견지를 준 곳으로,  지명에 대한 이 유명하다.

그래서 주변 학교들이 무학여중, 여고도 있고

걷다 보니 도선 사거리가 나왔다.


김소월의 시 열십자 시어처럼

열십자가 자주 나타나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스타벅스 밖 이화사거리도

또! 열십자 길이다.

왕십리 공공기관들을 지나

마장동 쪽으로 도선 사거리를

쭉쭉 걸었다.

옛날 길스럽게 반가운 육교가 나타났다.

육교는 올라서면 멀리 바라볼 수 있기에

일면 낭만적인 데가 있는 건출 구조물이라

좋아해 왔는데,

사실 육교가 없어진 건 시민 위주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라한다.

시민들이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자동차 중심이 아닌 보행 중심으로

도로를 개편하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

어느 책에서 읽고는

나도 생각을 좀 고쳐 먹었다.

그래도 좀 반가운 마음에 육교 사진을 찍고

마장동 축산시장을 지났다.

가족과 한 번 축산시장 내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고기를 사면 옛날 고깃집처럼

그대로 이층에 올라가서 구워 먹을 수 있다.

회식하는 이들이 꽤 많았고

다른 곳보다 질 좋고 가성비 좋은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 같다.

작년인가 마장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한 편 나왔는데

'파파야'에서 음악그룹 멤버였던 강세정 배우가

나이차 많이 나는

부자 박인환(부나 면옥, 유명 냉면집주인)과 

위장 결혼을 해서

박인환 아저씨의 아들들이

돈만 노리는 이들이 되지 않도록,

효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로 나왔다.

사랑은 그 아들과 빠져 결국 둘이 사랑을 이루며

헤피엔딩으로 막을 내다.

그때 여주인공이 마장동 축산 그룹에서

일하는 부지런하고 똘똘한 여자로 나왔고

사랑하는 남자, 정확히는 박인환 아들과

시장에서 오토바이 물 튀기다

처음 만난 사이로 등장한다.

주인공 목소리가 특히 좋아 계속  드라마.

성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기막힌 유산이 잠깐 떠오른 거리에서 찻길을 건너

청계천으로 향했다.

이 길은 김정호 이름을 따서 `고산자로`라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박아놓은 청계천 횡단보도 앞 거리

구가 바뀌는 길목이다.

성동구에서 동대문구로.

동대문구 초입은 늘 정보석 배우가 지키고 있다.

한독 패션 광고인데,

동대문 파크랜드 조인성 사진과 함께

이 두 사진은 시간이 흘러도

늘 같은 자리 그대로 있어 신기하다.

마을 초입을 지키는 서낭당 앞 나무나 바위스러운 사진이다.

광고주가

사진 빛이 완전히 바랠 때까지 절 떼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보석도 모든 영화와 시트콤, 드라마를 다 보았을 정도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좋아한 배.

최진실과 나온 영화를 시작으로 최근에 주말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고집 센 남편으로 나올 때까지 시청.

신세경과 애증의 콤비일 때 .막돼먹은 이영애 씨

깐깐한 상사일 때최고였다.

https://youtu.be/DQtQJGQVxtM)



동대문 초입에 늘 누워 계신 배우 블링블링 주얼리정
오랜 세월 동대문 역을 지키고 있는 파크랜드 조인성. 송혜교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옷은 우리 집 옷이 제일 예뻐라고 하며 간접광고를 하는데 그 시절에도 조인성은 파크랜드



정보석 사진 맞은편은

역 용두공원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 청계천으로 진입하는 길과

자전거 산책로가 있다.

자전거 탈 때 종종 애용하는 길였는데,

이번엔 걸었다.

용두공원, 청계천 만개한 자주천인국
무학교 아래 수문. 비가 많이 내일 때 수량 조절 차 열리는 문.

동대문 재래시장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전에 산책 나오신 어르신들과

젊은 마라토너들이 눈에 띄어 나도 거기서부턴

나도 뛰었다.

서울문화재단 옆 두물다리를 지나

무학교, 영도교 등을 지나 계속 달렸다.

두물다리는 청혼 이벤트를 하는 곳 같았는데,

인테리어하얀 하트가 다조악해

뭐랄까, 그렇게 로맨틱해 보이진 않았다. 훗.

밤에 보면 나으려나.


거기서 더 달려서 황학동 부근까지 왔고

오전 볕도 뜨거워지는 시점이라

얼른 다리 위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청계천을 청소하시는 분들이

집게와 파란 양동이를 들고

물속 쓰레기를 건져내고 계셨다.

집게는 우리 집에서 신발 정리할 때 쓰는 긴 막대였다.

성북구로 접어들 수 있는 경로. 나는 종로로 향해 걸었다.
영도교
다산교


더 달려서 드디어 다산 다리인 동대문 시장에

다다랐다. 동대문 시장은 특히 새벽 시간 대에

특히 애정 하는 곳이라 심적으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다리 위로 올라가 또 걸었다.

오전 10시경이었는데,

이미 주말 시장이 열렸고 손님들도 꽤

길을 채우고 있었다.

황학시장은 좀 너무 번잡해 보여

동대문 시장을 더 좋아하는데,

이 곳에도 구제 시장이나 도매 제품 장이 열린다.

10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옷과

운동화, 각종 용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옷과 신발, 잡화류 등을 고른다.

그 모습을 구경하는 게 흥미롭고

별의별 상품이 다 나와 있어 보게 된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치듯 

나는 또 도매시장 소매장에 스르르 들어서게 됐다.

재래시장 덕후. (대형 마트도 좋아하지만... )

완도 김부터 액정 닦이 스프레이까지

온갖 물품이 또 진열돼 있었다.

사고 싶은 건 딱 하나 있었는데 현금 뽑기 귀찮아

그냥 지나다. 욕실 슬리퍼 2개 3000원.

튼튼하고 핑크, 주황색으로 예뻐 보였다.

심지어 다이소보다 싸다.

이름 이쁜 청평화 동평화 시장 맞은편으로는,

골목 가득 신발 도매상이 있다.


양말 상가들 양말 구경하다 

신평화시장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동대문 쪽으로 향했다.

상가 구경 중 어느 차 래핑 광고를 보

창동에도 아레나 × 스퀘어

대형 매장이 생기 것을 알았다.

문화예술극장갤러리연습실 컨테이너 플랫폼 창동 61이

있던 곳이다. 친한 제주 친구가 살 마을이다.

자주 들렀던 산책지이기도 한데,

나중에 걷다가 지나면

들어가 봐야지 싶었다.


시장 구경을 마치니

이땐 만 보 중 나에게 약 삼천 보쯤이 남아 있었다.

삼천 보로 어디를 갈까?

거기선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게

왼쪽 남산도 좋아하고 직진 광화문도 좋아하고 우측

대학로도 너무 좋아는 까닭이다.

사거리에서 나름 고민하고 고민하다

몸이 이미 대학로 쪽으로 진입했음을 인지하곤,

그냥 동숭동으로 선로를 잡고

걸었다.

이때쯤은 목이 너무 말랐는데,

최근에 언변 달인으로

지적이고 센스 있 좋아하게 된,

천재 다분한 분이

스타벅스 캐러멜 프라푸치노 기프티콘을

선물로 줘서,

그걸 나름 의미 있게 쓰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대학로에 가서 마시자는 목적의식을 갖고 걸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빨리 가려고 동대문을 들어섰더니

진입로 없음 안내판이 떡하니 버티고 섰다.

이럴 수가!

다시 빨리 가려고 동대문역 지하차도로 들어갔더니

막혔다.

역시 돌아가라는 안내판.

급할수록 침착해야!!!

삶의 진리다.

도로 위로 올라와 신호등 쪽으로 걸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돌아봤는데,

예전에 인디가수와 래퍼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들 위한 공연 차

어느 양로원인지 종교 시설에 왔던 곳였다.

그때 내가 동대문 시장 너무 좋아, 라고

설레발 치고 있는데

어느 래퍼가 진지하게 누님은 서울 동네 다 좋아하잖아요,

싫어하는 동네가 없는 것 아니에요?라고 서,

맞는 것 같다 깔깔거리다, 

국내외 막론 동네 곳곳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향이 들킨 기억이 났다.

그 기억 끝에 차도를 건넜는데

작은 골목에서 아주머니들이 계속 나오기에

샛길로 접어들었다.

새로이 만난 골목이었다.

베트남 국숫집과 베트남 커피집들이 눈에 띄었다.

둘 다 또 좋아하는 음식이네, 하고 반갑게

지나쳐 올라갔다.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베트남 슈퍼도 있었다.

따뜻한 분위기의 80년대 옛날 골목 정취가 느껴져

조금 더 오르니 전태일 열사 기념관이 나왔다.

동대문과 대학로 사이 위치한 창신동 길. 다음에 따로 걷고 싶었다.
한양성곽 길 동대문 초입 골목에 위치한 전태일 재단

청계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1970년 이십 대 분신한

선각자적인 그분 기념관을 지나 더 오르니,

서울 성곽길이 나왔다. 오전이라 사람이 좀 뜸했고

나는 다시 성곽길 입구로 갔다.

동대문 통로 없음 안내길의 맞은 편이었다.

성곽길 초입 도시 갤러리.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그린 동물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도시 틈새 갤러리 너무 좋다.

발달장애인들의 고양이 및 낙타 등등의 그림 전시를

잠시

관람하 여유를 찾았고

율곡로 오르막길을 향했다.

성곽길 낙산을 가고 싶긴 했는데,

만 보 중 내게 2천 보 가량이 남았고

낙산을 넘으면 만 보가 더 넘을 것 같았다.

날도 너무 더워 만 보 수치에 괜스레 집착하며

스스로 타협,

대학로 스타벅스를 향해 발 빠르게 걸었다.

드디어 저기 이화사거리가 보였다.

물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엄청 빨리 걸었다.

스벅에 도착하자마자

존경하는 이에게 받은

쿠폰을 폰에서 열어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나름 이벤트, 감동의 순간

주변 인물들도 도와준다.

매대의 여직원 어투가 너무 친절 것이다.

(e 프리퀀시 적립, 현금영수증 적립, 생크림 제거)

제품이 나왔을 때 번호를 불러주는 남직원 어투도

마찬가지다. 스윗하다.

역시 대학로야,

대학로 애정자인 나는

대학로에 발길이 닿자마자 모든 것에

우호적이 된다.

다음 주말엔 친절한 대학로 스벅부터

고궁을 향해 을 참이다.

드디어(?) 아차산에서 출발해 곳곳이 고궁인

오래된 도시 종로에 발길이 닿았다.

종로!

종모양 로고가 이쁜 종로.

곳곳을 또 다음에 만 보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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