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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zzy Sep 30. 2021

의식적 반복

데드리프트를 시작, '필사적 노력을 요하는 상황'



오늘 처음으로 '데드리프트'라는 운동의

기초 자세를 배웠다.

옆으로 긴 간이 막대를 들고 서서

아래로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인데,

나중에 바벨을 들고 하기 위한

자세를 미리 학습하는 시간였다.

바른 포즈를 익히기 전에 바벨을 잡으면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빈 봉을 들고서도 그 자세가 나올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피티 선생님 지도에 맞춰 움직여 보았다.

우선 먼저

가슴을 웅크리지 않고 활짝 편 뒤

등 뒤의 광배근을 잡아준다.

어깨를 수그리지 않고

그 자세로 막대를 잡은 채

허리를 천천히 굽혀준다.

이때 발은 골반 너비로 착지하고

막대를 잡은 팔엔 힘을 주고

막대가 뜨지 않게 허벅지에 붙여준다.

햄스트링이 당기는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골반을 접어주는 동시에 무릎도 굽힌 뒤

거기서 다시 엉덩이를 펴서 올라온다.


운동 선생님의 시범 자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는데. 내가 하면 뚝뚝 끊겼다.

(목각 인형도 아니고)

일단 허리가 쉽게 뒤로 빠졌고,

무릎부터 발목 사이가 고정돼야 하는데,

무릎을 앞으로 튀어나오게 굽히게 됐고,

가슴과 어깨는 쉽게 안으로 말렸다.


잘 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해야지 하니깐,

급해지고

빨라지면 자세가 다 흐트러지고,

또 다시 집중해서 하면

우연히 바른 자세가 나왔다가도

내가 그걸 감각적으로 기억하질 못하니

다시 포즈는 흐트러졌다.

총체적 난관.

블랙홀.


이름이 데드리프트인 건

움직이지 않는 바벨을 들어올리는 상황을

묘사하는 영어식 운동 명칭이었는데,

내게는 전 동작을 계속 데드해가는 운동처럼,

어렵게 다가왔다.


가슴을 연다. 바를 내린다.

골반과 무릎을 동시에 접는다. 제자리로.

이 동작만 연거푸 거의 40분 정도를 했다.

전혀 내 동작화되진 못했지만,

간혹가다가

열에 한 번 정도는 바른 자세가

나왔다고 듣게 되었다.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1% 확률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더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깐,

제로는 아닌 상태로 운동을 마칠 수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3대 운동이라고 한다.

데드 리프트, 벤치 프레스, 스쿼트.


이렇게 시작해서

나중에 루마니안 데드 리프트를 하면

되게 뿌듯할 것 같다.

헬스장에 (내 시각에서)

운동 잘하는 여성 회원이 2명이 있다.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겹치는 분들인데,

그들이 루마니안 데드 리프트를 자주 하고 있어

아, 저런 운동이 있구나,하고 알게 됐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 탈의실에서 보면

나도 모르게 사회적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운동 진짜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할 뻔하다가,

여기는 고독을 즐기는 개인 운동 공간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따로 얘기를 건네진 않았으나

(난 모르는 이에게 말을 잘 거는 타입이다.

그런 일을 할 땐 좋은 습관인데

일이 아닐 땐 오지랖 같아 자제한다.)

운동을 스스로 열심히 하는 회원들은

약간 존재만으로도 헬스장 갈 때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이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나오고

명절 전에도 빠지지 않고

무척 끈기있게 하는 특정 회원들이 있는데,

나도 저렇게 잘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응원이 되는 타인이다.


혼자 헬스장에 가면

이젠 또 나도 빈 봉으로

데드리프트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가슴을 활짝 피고 어깨도 피고!

막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막대는 허벅지에 꽉 붙이고...

햄스트링이 당기는 지점 정도에서

허리를 무릎과 함께 숙여주고

다시 엉덩이를 펴고 올라오기!

반복 반복.

머리보다 몸의 감각이 반응하고 외워주기를

간절히 바랄 다.


그저 앉았다 일어났다 한 것 같은데,

얼마나 집중한 건지,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정말 땀이 많이 났다.

사이클링 한 시간 탈 때와 비슷하게

정적인 운동에서 흠뻑 땀을 흘렸다.


느낌을 모르니 너무 어려웠지만

느낌을 느낄 사이도 없이 집중하기 바빴고,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 가버렸다.


p.s.

이런 집중의 순간을 마치고

휴대폰 자판을 누르다보니

지금, 문득 떠오르는 퍼포머의 시연 순간이 있다.

바로 컨템포러리 서커스 아티스트 안재현 씨다.

오늘 9월 30일자 kbs 데일리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문득 빈 봉을 들고 운동을 마치니

오전에 스친 봉앤줄의 퍼포밍아트가 생각난다.

티브이에선 리포터이자 트로트가수 김재롱이

전해주는 '우와!한' 인물로 등장했다.

구의 서커스센터 난간을 걷고

공중의 줄 위를 걷고 그 위에 눕기도 하며

하늘을 걷는 남자로 소개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무관하게 줄 위에서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기예자. 줄뿐 아니라 봉도 타는데,

갖가지 기술로 줄 위에서 낙하하는 순간을 그려낸다.

아슬아슬하지만 아름답게, 인간의 신체로

드러낼 수 있는 균형 속에 버티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연극을 하던 중 자신만의 특색을 갖고 싶어

기예를 시작했고 5년 간 실력을 쌓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도 스토리가 있는 가을 공연을 준비 중이며

담달에는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으며

세계적 컨템포러리 서커스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방송 코너가 마무리될 때

아나운서들은 아이들은 tv보고 절대 따라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리포터는 몸이 멋있다고 칭찬하며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가을 서커스 소식 속 기예자의 모습을 보면서

줄을 타고 봉을 타는 한 순간 순간이

인내로 이뤄졌으리란 데에 감탄했고,

코어 운동의 흔적으로 가득한 그의 몸도

결국 그 자신이 일궈낸 것인 걸 보면,

사람은 인내와 훈련 속에서 더 나은 이로

제어되고 확장될 수 있구나란 믿음 같은 게 생겨,

열정적 에너지를

전해 받을 수 있었다.

꿈을 꾸는 이들은 아름답다.

그가 스스로 더 만족하고 세계 속 관객들에게

더 많이 사랑받는 서커스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없는 집중의 순간이 타인들에게 공유되기를...

kbs 대한민국 라이즈, 우와~한 인생 0930 출연진 안재현 퍼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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