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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n 07. 2021

제자리 뛰다 문득 떠오른

달밤의 줄넘기 기억

<생활 체육의 사적 기록 2>

어느날 한밤중
줄넘기를 하곤 집으로 돌아가 끄적였습니다.
20210521
운동 잡념? 집념!


간밤에 줄넘기를 2천 개, 30분 동안 했다.

달밤 날궂이도 아니고.

한번 하면 평소 500개에서 1천 개를 했는데

다소 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에 다달아,

2천 개를 한 자리에서 했다.

별달리 힘들다 느낀 체력 변화는 없었다.

1천 개와 2천 개는 멀어보이면서도

그렇게 또 먼 것도 아었다.

줄넘기는 1백 개씩 끊어서 스무 번 했고,

딴생각을 하다 숫자 잊었을 땐

작은 숫자로 셈했다.

6백 개 한 거야, 7백 개 한 거야,

헷갈리면 6백 개로 세어 진행했다.


줄넘기는 꽤 담백한 운동다.

줄만 있으면 소음이 개의치 않을 곳으로 찾아가 

제자리 뛰면 된다.

별 목적 없이 줄을 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다.

예전에는 물 옆에 살아 물길 흙길 가서 뛰다가

요샌 헬스장 그룹 운동실이나 복도에서  한다 .

물길은 몇 분 더 가야 해서 시간이 있을 때 간다.

가끔 어떤 세와 고민으로

한없이 예민해질 때가 있다.  

런 날 줄넘기를 택다.

차라딱딱거리는  소리를 택하는 교환치.


오래 전, 대학 4학년 2학기 물 취준생일  

다이어트 대본을 쓰고 돈을 벌었다.

줄을 넘는데 줄넘기 습관을 생성한, 그때가 문득 올라

그 시기 친구들 얼굴을 생각하다 보니

쉽사리 2천 개를  넘다.


당시 맡은  줄넘기였다.

출연진이 강사 시범에 맞추어 줄을 넘고

마지막에 뮤직비디오처럼 정리를 한다.

음악에 맞 강사와 진행자가 뛴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이었다.

중간중간 들어갈 멘트와 운동법에 관한 질문, 대답을 챙겼고, 오프닝 엔딩 멘트를 다.

마지막에 들어갈 댄스 음악골랐다.

작가가 교체돼, 친구 소개로 투입된 였다.

포맷은 정해져 있었고 거기 맞춰 일하면

아주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대중 매체 진로를 택한 취준생이었고

사수도 독특했고 제작 현장을 경험해 즐거웠다.

씨지를 맡은 디자이너 동료와 특히 친해

우리는 화가 끝나면

같이 스튜디오 옥상에 가서 줄넘기를 다.

출연진 강사였던 체육 선생님이 선물로 준 줄넘기를 사용했고

지금도 집에 보관하고 가끔 용한다.

연두색의 구슬 줄넘기. 이사할 적에도

꼭꼭 내 짐 리스트로 챙겼다.

친구랑 옥상 줄넘기를 할 때면

주변 동네가 내려다 보였다.

많이 깔깔거렸고, 미래를 떠올리며 얘기했다.

둘 다 그 시기 어떤 사람을 각사랑했고,

둘 다  순간 방송 일 매몰되어 파트너가

잠시 사라다 돌아온 공통 경험을 해서

엄청나게 밀스레 돈독해진, 웃픈 관계이기도 했다.


친구는 아침이면 회사에서 날밤을 샜다며

과로를 호소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친구의 과중한 업무를

보며 같이 한숨 쉬곤 했다.  역시

집으로 일을 한아름 들고 갔다 들고 왔다.

그래도 우린 환상 콤비.

빨리빨리 대본을 써내면 친구가 그에 맞는

화면 자료를 리릭 만들었다.

다이어트만 쓴 건 아니고 흥미로운 다른 것들도 썼

둘이 죽이 잘 맞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운세 대본이다.

범띠, 양, 말띠 등 각종 띠에 맞춰

오늘의 운세를 나이마다 했고,

출연 진행자는 오늘의 날씨를 말하듯 예쁘게 전달하며

촬영 임했다.

원천 소스삼성동 코엑스 ㅂㄹㄷㅅ라는

점술업체에서

받아 작성했다. 자료가 나이대마다 겹치는 게 너무 많고,

행운의 아이템이라는 것도 여름인데

겨울 소품 나오고, 중년 나이에 청년기 사람들

유행 소품 나오는 등 이상해 보여서,

자료가 부실하다 항의했더니,

컴퓨터 알고리즘이라 어쩔 수 없단 답변 받았다.

이후 행운의 아이템이나 조언 등

어떤 문구들은 자료를 바탕으로 운세를 짓기 시작했다.

그 운세 씨지를 또 친구가 만들었다.

나이별로 들어가다보니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기술 감독님들은 애초에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이 아이템을 택한 이들을 질책했다.

한번 쓰면 버릴 텐데, 이게 효용이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돌아보니 그 말이 더 맞았다.

하지만 그 일을 추진한 상사는 다른 플랫폼에 제공해

인기를 끌겠단 기대에 차 있었는데,

그 맘처럼 되진 않았다.

분량은 많았지만 씨지 디자이너랑 친해서 재미있었다.

대학 졸업 무렵  일을 그만두었는데,

마지막까지 해 넘기고도

재택으로 운세를 써댔다.

출력대본들은 기억용으로 한 본 정도

파일에 담아두고 모두 버렸다.

지금도 코엑스 실내를 걷다 보면 문득

그 점술업체의 위치가 기억나곤 한다.

온라인 전화 통화만 했지만

메가박스 영화관에 갔다가 위치를 확인한

경험 때문이었다.

대학 4학년 끝무렵, 20대 억.

그때 이상한 대본 요청만 안 들어왔어도

몇 계절 더 다녔을 것 같다.

회사에선 밤 토크쇼를 유흥업계 종사자 대상으로

만들어 프로그램화 하자고 했고,

아침마다 작사 대표와 독대 회의를 했다.

그리고 자료를 요청했.

이십대로서 참 껄끄럽고 싫은 자리는데,

지금 했어도 마찬가지일 정도로 나완 안 맞았다.

그 자리의 정황10분의 일 정도만

당시 만나던 친구와 가족에게 잠시 얘기했가,

나는

 다음날 바로 출근을 차단 당했다.

그런 경력을 만들진 말라고. 신신당부.

나중에 이력서 알바 경력에 넣지도 않았다.

그래도 씨지하는 친구와 늦은 밤까지 함께 떠들던

다른 기억이 시간에 흘러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이 텐프로 유흥업소 토크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보자

야심차게 말하던

세월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

예술 브랜드로 전향 있었다.

그 회사 직원을 일 관계로 만났으나 그때 경험은

말하지 않았다. 대표와 일했으나 몰랐던 사람처럼.

가끔 일에 대해 추이를 떠올려보고

직업관을 정리해볼 적이면

그 대학 4학년 겨울 아르바이트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스태프들 덕분에 특한 에피소드 기억이 더 게 남아서다.

시간은 기억의 질을 분류해 거게 한다.

어수선함을 지극히 칭찬해주던 상사와

뭐든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해주던 친한 동료들.

일이 많다 보니 서로 묘한 동지애가 생겼다.

물론 이간질과 소문의 아수라장이기도.

그리고 내가 그때 앉았던 자리가 꽤 요상하게

낮은 천장 아래 묘한 좌석 배치를 보였는데,

그 자리가 홍ㅅㅅ  감독 영화에 등장한다.

그때 그 자리에 앉기 전,

그 영화 촬영이 진행됐던 까닭이다.

좋아하던 배우가 일하던 자리로 나왔다.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사회 초년생 기억을 정리할 때

그 영화를 다시 봐야지 했지만

아직  적은 없다. 미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일 테고.

종이처럼 얇던 마음이 좀 더 두터워진 이기도 할 것 같다.

많은 것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가고 또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음과 몸은 다소 반비한다.

물리적 시간은 거스를 수 없 것 같다.

그러기에 마음처럼 몸도 단단해지려

그때의 줄넘기를 지금도 해야 한다는 것.

런 사소한 습관의 사실만큼은

그래도 지금 안 변고 있다.


그때의 달은 아님. 2021년 5월의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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