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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Jun 06. 2021

신사 빽다방부터 왕십리 이디야까지

사막스러운 동호


산책이라는 단어를 툭툭 휴대폰 자판으로

눌러놓고 보니, 자 뜻이'살아있는 책' 임말 같다.

죽은 활자가 아닌 숨쉬는 거리와 행인을 읽는 일.

5월 주말 오전, 이전 주에 멈췄던 신사역 4번 출구,

빽다방부터 왕십리 이디야까지 만 보 어 보았다.


<만 보 경로>

신사역 4번 출구 - 한강 잠원 지구 - 동호대교 - 옥수역

- 금남시장 - 응봉산 부근 - 왕십리 역사


그날 걷기 테마는 홀로 '다이어트'로 삼았다.

시작 지점 부근에서 본 간판 광고 문구 이었다.

'살이 아닌 삶의 변화'라니,  첨가만으로

좀 그럴듯한 카피 보였다.

몇 걸음 더 가니 시력 변화 부추긴다.

문득 이곳이 신사역, 새로울 신자를 써서

환골탈, 육신을 새로 탈바꿈하길 바라는 터가 됐나,

생각 출구 사진을 찍곤 기 시작했다.

4번 출구에서 길을 건너  한남대교 방향으로 직진,

한강 잠원지구가 있는 방향으로 우회전했다.

인생 선배가 삶의 분기점에서 진로 상담해줄 때

먹을거리를 사주던 먹자골목을 지났다.

일적으로 지날 때는 욕망이 들뜷는 거리,

사적으로 지날 때는 연로한 작가나 문학청년이던

친구와 추상적 담소를 나누던,

극단적으로 인상 나뉜, 특이한 마을이었다. 신사.

한남대교 입구와 잠원나들목 길

 마음을 살의 변화로 삼 걸었더니

이내 재미가 없어졌다, 삶의 관점 변화로,

다른 생각을 하 싶어졌다.

무더운 초여름 걷기 산책을 애정하는 나로서도,

쉽게 지칠 만한 일이었다.

심지어 살빼기용이라고 생각했더니

금세 지루해졌다.

시간 투입 대비 효과를 가정해  능률성으로 치자

같은 시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빼야 돼?(물론 그렇겠지만)

반문하며 한강 초입에 접어들었다.

신사에서 고속터미널역으로 가는

아파트 큰 길 사이 통로가 나왔다.

잠원 한강공원 입구

거기서부턴 이제 지루하더라도 맘 먹은 거니깐,

달리기로 했다. 우회전한 뒤

맞은 편에 보이는 남산타워를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낯선 라이더들이 옆에서 한강대교까지 가자,

라는 을 스치며 지나쳤고 나도 몇 다리

거쳐 장시간 뛸까 다 기분이 별로 내키지 않아

동호대교에서 멈췄다.

이 지점부터가 극한 지루함의 시작이었다.

한적한 다리의 지리멸렬함을 몇 분 가량 험해 보았다.

사막을 달려본 적 없지만

사막 달리기 그랜드슬램을 이룬 이의

책을 읽은 적은 있는데

그런 고통의 만 분의 일 정도 느낀 것 같다.

물길이 아니라 모래길을 뛰는 기분이었다.

시작도 심지어, 신사(새로울 신 모래 사)였다.

동호대교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옆 차선으로 차가 마주오는 방향으로 쌩쌩 달리고

지하철 3호선 열차 역시 역방향에서 다가온다.

다리 옆으로 대형 덤프트럭들이 주차돼 있고,

고독하게 뛰기에 적절한 환경일 수도 있지만

다소 을씨년스러다. 볕만 강한 게 아니라

바람도 강해 몸이 밀리는 듯 (절대 밀릴 리 없으나)

 편으로 상체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고 차 안으로 객차 안으로 보이는

이들은 너무 먼 낯선 타인들이다.

예전에 제주 서귀포 해비치 호텔 근방을

일행보다 먼저 귀가하느라 자정 너머

바닷길을 혼자 걸은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슷한 적막감에 잠겼다.

한 밤에 호텔 저 안으로 사람들은 보이는데

길이 넓어서 인적 없는 바다 옆길이

기괴하게 가왔던 순간,

동호대교 다리 한가운데에서 기억이 났다.

정말 여기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런 공포심이 감도는 다리였다.

어찌나 다리가 물리적인 거리보다

길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출구가 보였을 땐 오아시스를 만난 듯했다.

옥수역과 곧장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어쩜 한 사람도 안 지나갈 수가 있지?

오히려 타인과 마주쳤다면 더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유치환의 시 사막처럼 가온 동호대교.

잊지 못할 것 같다.


생명의 서(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여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가까스로 통로를 만난 반가움에

옛날맛 요구르트를 사먹었다. 하나를 사려다

2+1이라 더 사버려 짐만 생겼다.

대형 요구르트를 든 채 또 걸었다.

일단 시작했으니 목표 만 보는 채우고 싶었다.

옥수역에서 공공미술이 설치된 광장을 지나

오르막길로 직진했다.

유일하게 길목에서 만난 관심 대상일 텐데

한강다리에 피곤하게 쏠린 라,

공공미술은 깊이 있게 감상하지 못했고

사람 없는 광장이 쓸쓸해 보였다.

미적 외관에 더불어 실용성까지 좀 높였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들었다.

시기도 시기인지라

작은 무대에 사람이 없는 건 더 쓸쓸히 다가왔다.

그냥 사적 심리였지도 모른다.

다리 밑 도서관

오르막길을 넘어서자 또 터널이 나왔다.

만만한 산책 코스아니었다.

한남대교 끄트머리와 동호대교부터

그 조짐을 알아차리고 강남 사거리로

우회 걸 그랬다.

장을 보시고 귀가하는 어느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짧은 터널을 빠져나갔다.

여의도와 창동, 중곡독 부근, 이따금씩 친구랑 걷다

꺼려했던 터널이 기억났다.

아무리 거울을 붙여 놓아도, 벽화를 그려 놓아도

지나기 내키지 않는 터널 길들.

그렇게 터널을 지나자

약수로 가는 터널이 또 나왔다.

이번엔 패스. 억지로 통과하지

오른쪽으로 우회하자 길고 긴 시장이 나왔다.

금남 시장. 오래되고 유명한 재래시장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생겼고 그곳에 김구 선생이

사비를 털어 만든 옛 배움터와 주택이

있던 자리, 이정표를 목표 삼아

시장 길목을 직진했다.

부근 부근도 구경하고 싶었으나 다음 기회로 삼고

큰 길로만 따라 주욱 걷자

로터리에서 백범 김구 기념비가 나왔다.

앞에 양말 가판이 있었고

사람 얼굴들을 피해 사진을 남겼다.

거기서부터 또 시장을 따라

왕십리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자,

응봉산 지점의 사거리가 나왔고

또 걸었다. 역시 오르막길이었다.

개나리산 촬영으로 유명한 응봉산 입구 골목이 나왔고.

그 산을 오른편에 두고 또 걸었다.

역시 또 오르막길.

해방 후, 강제이주 던 분들이

다시 돌아와 일마을 역사를 가졌는데,

그걸 상기하게 하기 위함인지 오르고 또 오르게

만드는 곳이었다. 아주 높진 않은데 은근 

오르막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걷고 있는데 손이 부은 것을 느끼곤

이 지대가 정말 높다는 것을 알았다.

양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었고

그 사이 길목을 따라 걸었다.

몸이 붇자 문득 우리나라 아니 지구에서 가장 고지대(?)를

경험해보았을,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 생각이 났다.

갓 우주를 다녀온 직후에 인터뷰로 만난 적이 있는데,

지구에 반한 에너지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돌이켜보니 그분 정신적 열정만이 아니라,

체력이 어마어마하게 엄청났겠구나, 싶은 생각이

약간 높은 지대인 성동구 응봉산 부근에서, 불쑥 들었다.

우리나라 우주인 준비자들과 이후 뒷얘기가

영화화되면 재밌겠단 생각을 하며 더 걸었다.

왼편으로 뚝섬 한강 방면 부근이 보였고

세종대왕이 관리들에게 책 읽는 휴가를 주던

사가독서제를 이곳에서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기도 했다.

독서당로 거리 이름을 보며 또 더 걸었다.

멀리 보며 잡념 없이 책을 읽기 좋은 지대로 보였다.

동부간선에서 반대쪽으로 보아도 아름다운 곳였다.

응봉산 방면은 뚝섬 쪽에서 바라봐도 경춘선 탄

느낌이 드는, 도심 속 강원도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자 왕십리에 다달았다.

유난히 길게 느껴진 만 보였다.

무더위와 다리, 터널, 언덕길을 지나왔다.

애초 목표를 살빼기로 둔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참아야 하는 무언가로 삼으니,

그 길은 길고 길었다.

참는 게 아니라 그저 목적없이 좋아하는 산책으로

삼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또 참다 보면 좋아하게 되는 것도 있으니,

다이어트도 그런 게 아닐까.

스스로 인내할 것을 정하고 지켜내다 보면

소소히 작은 결과들을 즐겨 축적겠지.

다이어트는 승부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목표한 것들에 대해 홀로 견뎌가는 과정이니,

사막 같은 다리 건너기도 한몫을 하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당분간 한적한 다리보다는

대중 발길 닿는 그늘 산길과 물길을

애용하리라 마음 먹곤,

기차 닮은 이디야 카페 앞에서 멈췄다.

다음엔 왕십리 역사 내 이디야부터 시작.

다른 길로 만 보 걸을 참이다.

진짜 산책(?)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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