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의 싱크로니시티, 공시성의 원리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융은 공시성을 둘 혹은 그 이상의 사건의 의미 있는 동시 발생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그 안에는 우연한 가능성, 즉 확률 이상의 무엇인가가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그 우연을 의미 있는 연결로 이해하고 개인의 발전과 성장과 연관 짓기도 한다. 현재의 행동과 미래의 성장 또는 결과 간에는 유기적인 연결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당신이 현재 열심히 어떤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와 관련된 미래의 기회나 성취가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면, 이것이 공시성의 원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내가 현재 무언가를 실행하면, 동시에 미래에도 똑같은 것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10년, 15년이 지난 후에 그곳엘 가보면, 내가 만들어 둔 뭔가를 그때 만날 수 있다고..
포기했던 모래덩이들이 언덕을 형성하지 못한 채 그저 흩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이라도 뭔가 실행해서 하나라도 작은 산이 될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싶다. 꿈을 이루는 곳은 현재이지만, 꿈을 만나는 곳은 미래라는 말은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든다.
하루를 어떻게 살지는 모두에게 자유이다. 그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느냐도 모두에게 자유롭게 주어진다. 자유에는 반드시 선택이 따라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먹기로 선택한 음식, 보낸 시간,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며, 그 선택은 바로 내 몫이다. 이런 일상의 선택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만약 내가 하루를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면, 즐거운 감정, 내가 좋아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 긍정적인 마인드를 느낄 수 있는 감정, 배울 수 있는 감정에 무게를 두게 될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었던 평범한 어느 날 내가 선택한 하루는 이러하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공복에 물 한잔을 마신 후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낭독한다. 6시 10분에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6시 50분에 둘째를 깨워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아침마다 썰어먹는 사과 하나 그리고, 베리 몇 가지와 미리 오븐에 구워둔 피칸과 호박씨를 넣고 꿀을 한 바퀴 두른 그릭 요거트를 먹는다. 마지막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카페인 공급을 하고 나면 하루의 에너지가 풀가동 될 준비를 마친다.
7시 30분, 그리고 8시 10분에 차례로 세 아이들을 모두 학교로 보내고 나면, 드디어 고요한 내 세상이 돌아온다. 아침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나면 내 방에 올라가서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악기 연습은 특히나, 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30분 정도 연습을 하고 나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재택근무로 업무를 시작한다.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회사들의 북키핑을 해주며 점심 전까지 일한다. 12시부터 어김없이 고동치는 배꼽시계를 잠재우기 위해 간단하게 혼자 점심을 차려먹고, 점심을 먹은 후엔 따뜻한 홍차 한잔을 가지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서 이렇게 조용히 글 쓰는 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이 몰려 들어오는 3시 이후엔 내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지인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그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던지 간에 배드민턴을 치는 1시간 동안만큼은 고민 따위는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같이 농담하며 배꼽 빠지게 웃다가, 제대로 들어간 스매싱 한 방에 모든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 자그마한 라켓하나로 이 정도로 땀이 많이 나고, 운동 효과가 좋은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다.
화요일 저녁엔 혼자서 수영을 하러 가는 날로 정해 놓았다. 20대 때 매일 새벽 수영을 다닐 때는 800미터를 논스톱으로 도는 것이 가능했는데, 25년이 지난 지금은 50m만 가도 숨이 찬다. 그래서 요즘 다시 조금씩 감을 익혀가며 연습 중이며, 점점 물속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즐기고 있다. 500미터를 다 돌고 난 후 뜨끈한 핫텁에 몸을 담그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수요일엔 스케이트를 배우러 간다. 배운 지 3개월 만에 드디어 혼자서 천천히 스케이트 타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직은 갈길이 멀다.
저녁 운동을 하는 날엔 잠이 솔솔 쏟아진다. 보통 9시 30분이면 잠잘 준비를 대충 마치는데 침대에서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거나, 미드를 한편 보기도 하고, 잠들기 전 마지막 30분은 책을 읽고 그날의 하루를 마감한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마음대로 산다는 해석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규칙과 제약 속에서 안정감과 질서를 느끼는 편이라, 내가 정한 틀대로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자유라고 본다. 그래서 정해놓은 하루 일과대로 따라가면 뭔가 뿌듯한 감정이 들곤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래의 내 모습을 자꾸 그려보게 된다. 지금 현재의 노력과 미래의 성취 사이에 상호 연결된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운동을 꾸준히 해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건강한 내 모습 그리고 영어공부와 악기 연습을 꾸준히 해서, 미래에 만들어져 있을 어떤 역량으로 이루게 될 뭔가를 그때 만나고 싶다.
특히, 요즘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평소 내 잡다한 생각과 헛헛한 마음들이 많이 사라진다는 걸 느낀다.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고, 크게 불행한 적도 없는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이 있겠는가? 처음부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었으니 훨씬 더 내 이야기를 잘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릴 때 이러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 이때의 감정이 지금 현재 이런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거구나, 내가 좋아하는 게 이런 거였네 등등 나 스스로도 몰랐던 감정들을 알게 되었고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글을 쓸 때는 글의 주제에 맞게 어떤 전개로 써나가야 하는지,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주제로 글을 쓰던지 내 이야기와 맞물려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치 정신과 상담사와 밑도 끝도 없는 내 과거를 이야기하듯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정화된 느낌이 들고,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또한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활자판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김영하 작가는 한 강연에서 "글쓰기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라고 말했다.
자유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시간과 선택의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소소한 선택들이 이어지는 일상은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나타내는 작은 결정들의 연속인 거 같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도 내 안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며 새로운 자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똑같이 주어진 공통된 자유가 있다.
"10년 뒤의 내 모습을 지금부터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걸 지금 해도 되는 자유"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