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 관점입니다만,
출생률 0.76명인 한국.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걸까.
이런 말을 하면 꼰대라고 할 수도 있겠고,
지금 시대에 어떻게 살 수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에 애들을 어떻게 낳고 키울 수 있겠냐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교육비는 또 어쩔 것이며,
부부가 감내해야 하는 건 어떨 것이냐, 이렇게 소리칠 수도 있겠다.
맞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모두 미래의 일이다.
그래도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주고 싶다.
낳건 낳지 않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분명히 후회한다.
나는 2030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보다 보면,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때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아이를 선택할까?
나 역시 멋모르고(누군들 알고 낳고 키우겠냐마는)
아이를 낳고 길렀다.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힘들었다고 말한다.
결혼할 때, 아무것도 없었다.
친정, 시댁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지방에서 7년간 일했다.
그래서 둘째는 영유아기때 제대로 아빠랑 같이 있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육아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을까?
바로,
사회제도
였다.
육아도 하면서 대학교도 다시 다니고, 자격증과 경력을 쌓고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디에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내가
지원해 주는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아이 낳기 전 이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다.
놀기 바쁜 철부지 아가씨였을 뿐이다.
월급 타면 어디로 놀러 갈까.
놀러 가면 뭐 하고 놀까.
누구랑 갈까.
나 역시 20대 때에는 노느라 바빴다.
나를 얽어맨 10대를 벗어던지듯이,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0년 후, 20대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디뎌보지 못한 나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불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내가 있었던 20대는
유튜브, SNS 없이 그저 TV방송만으로 세상을 알았던 것뿐이라,
노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한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보는 사람만 있고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다.
불행한 것만 있는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을까란 불안 때문에.
나쁜 것만 너무 많이 알려져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낳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