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year diary

영감북, 그 세 번째 이야기

by 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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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 권의 다이어리를 샀다.


초록 버스를 타고 시청, 광화문과 웅장한 경복궁을 지나 버스에서 내린다. 내린 곳에서 굽은 골목길을 향해 걷다, 왼쪽에 위치한 더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어느새 도착해있는 올라이트 문구점. 한적한 도로에 위치한 작은 문구점은 사실 얼마 전 매장 위치를 옮겼다. 문구점이 있던 곳은 경의선 숲길에서 살짝 비켜간 골목. 문구점 사선 방향에는 유명한 카페가 있었다.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나는 그 골목길이 나는 갈 때마다 낯설었고 - 다이어리는 자주 사는 물건이 아니니까 - 그래서 좋았다. 바뀐 위치의 매장은 오늘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찾아가는 길이 이전과 같이 생경한 느낌이라 새롭기보단 오히려 반가웠다.


F0BE372F-1E16-47EA-BC3C-2612590DA370_1_105_c.jpeg 올라이트 매장


나는 2021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 이미 다이어리를 가진 사람이 왜 또 다른 다이어리를 사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내게 스타벅스의 다이어리가 일정 정리 노트로 쓰인다면, 올라이트의 다이어리는 diary, 영어 뜻 그대로 일기장으로 쓰인다. 짧은 일기를 쓰는 노트인 셈이다. 올라이트의 다이어리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게는 일기장으로 아주 그만이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올라이트의 다이어리는 1년, 1/2년, 1/4년 다이어리로 나뉘어 있다. 내가 사는 다이어리는 그중 1/4년 다이어리이다. 가격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합리적인 것은 아무래도 1년 다이어리겠지만, 나는 1/4년 다이어리를 고집한다. 단순한 이유로는 1년에 4번이나 새로운 디자인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맛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다이어리의 표지를 열어 monthly 칸에 년, 월, 일을 하나씩 적어나가는 희열은 엄청나다 (올라이트의 다이어리는 만년 다이어리로, 년, 월, 일을 스스로 적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마음먹으면 언제든 다이어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또, 1/4년 다이어리를 구매하면 1년에 4권의 서로 다른 일기장이 생긴다는 장점도 있다. 누구나 달마다, 분기마다 새로운 일을 겪고 새로운 마음다짐을 가지며 새로운 시간을 보낸다. 한 권마다의 주제가 다르고 채워지는 내용이 다르니, 다이어리 한 권을 다 쓰고 뒷 표지에 라벨링을 하여 3달을 일련의 단어들로 요약해두면 나중에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C89C0896-6A05-47AF-AC99-D265952E375E_1_201_a.jpeg 올라이트 다이어리 사용의 적절한 예시
9F24E6D6-74FF-4EC3-BAA8-EA72744B12CB_1_105_c.jpeg 올라이트 다이어리 위클리 페이지


올라이트 다이어리의 내지가 일기장으로 탁월한 이유는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여백이 많은 다이어리일수록 사용자가 다이어리에 맞추어 나가야 하는 다이어리들 - 예를 들면 하루 시간별 todo와 루틴 체크 박스, 날씨 기록 칸이 있는 스타벅스 다이어리 - 과 달리 사용자가 페이지를 커스터마이징 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나의 경우 여백을 정직하게 활용하여 위클리의 한 칸에 한 일자에 관한 문장을 담는다. 글씨를 억지로 작게 쓰지 않아도 대략 4-5 문장으로 하루를 표현할 수 있다. 짧은 일기를 쓰는 일기장으로 올라이트의 다이어리가 완벽한 이유가 되겠다.

먼슬리, 위클리를 다 넘기면 줄 노트, 격자 노트, 민자 노트 페이지가 나온다. 나는 줄 노트를 4-5 문장으로 담기 힘든 날의 일기를 쓸 때 사용한다. 이외 격자 노트와 민자 노트는 낙서장으로 활용한다 (영화표나 입장권을 붙여놓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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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세 권의 다이어리를 샀다. 1/4년 다이어리를 세 권 샀으니 9개월 동안의 일기장을 구비해둔 셈이다. 10월까지는 마음이 넉넉할 예정이다. 늦가을 즈음에 또 낯선 골목으로 들어가 낯선 마음으로 올라이트 문구점의 문을 두드리겠지. 부디 오래오래 다이어리를 찍어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을 가득 담아 글을 적어본다.


- 2월 15일 영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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