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00 씨는 왜 조급할까요?

여덟번째 대화

by 상구

D : 왜 자꾸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까요?

P : 무언가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고 있다. 크던 작던 성취라는 것이 내겐 너무 중요해서, 성취가 없는 일상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막다른 길목에 서있는 기분이랄까. 다른 사람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때 나만 옴짝달싹 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D :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P : 나는 수능을 망쳤다. 붙은 곳이라곤 딱 한 군데. 지금의 내 학교였다.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대학은 논술도 보고 학생부종합전형이란 것으로도 지원을 했었는데,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했다. 재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날 받아준 대학으로 입학하기로 했다. 처음엔 여러 문제로 그 학교가 싫었다. 눈에 차지도 않았을뿐더러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운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도 학교가 싫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이 곳에 와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수전공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있는 캠퍼스를 오가기 시작했고 꿈꾸던 서울 라이프를 살았다. 본 전공을 탄탄히 배웠고 복수전공을 하는 과목의 수업들 또한 만족스럽게 수강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그렇게 원하던 학교, 그곳에 갔다면 나는 아마 지금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학교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그래서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D :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다. 그래요.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저번에 조금 더 긴 템포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했었죠. 어쩌면 미래에도 00 씨는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지'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을까요?

P :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은 아니다. '그때가 좋았다'라거나 '그렇게 되어서 지금 너무 다행이다'란 생각은 빈번하게 찾아오곤 하니까. 지금 취업을 못하고 도약 없이 한 군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조급하고 두렵지만, 미래의 난 나를 보고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또, 정말 '그때 그렇게 되어서 오히려 진짜 다행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내겐 아직 '때'라는 것이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아직 적당한 때가 오지 않은 것. 그러니 그때는 곧 내게 찾아올 것이란 믿음이 내겐 필요하다.


D : '아직 때가 아닌 거겠지'라는 거 참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