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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코 Mar 25. 2024

기억될래? 배경될래? 맛집 되려면 이것부터 결정해야

엄마표 김치찌개는 맛이 아니라 기억
'좋아요'의 보상이 '먹어요'의 보상을 초과하면 식당은 배경에 위치
기억 맛집은 축적, 배경 맛집은 축제의 정서
서로 다른 목적의 손님을 한 공간에 부르려 해서는 안 돼
창업의 Day 1, 기억될지 배경 될지 정하고 투자를 시작할 것


맛의 절반은 기억이다. 혹자는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도 한다. 주어와 서술어를 서로 바꿔도 말이 되는 것을 보면 맛과 기억은 꽤 긴밀하다. 그러고 보니 '엄마표 된장찌개'는 일편단심 자식 뒷바라지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 '아빠표 스팸볶음밥'은 일과 가정사이에서 고군분투한 아버지에 대한 애잔함의 정서가 담겨 담겨있다.  

<쇠고기 다시다> TV 광고 중 한 장면

그 옛날 다시다 TV광고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찌개를 한 숟갈 떠먹으며 했던 말, '그래, 이 맛이야'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다. 감히 조미료가 기술의 힘을 빌어서 내고 싶었던 '이 맛'은 혹시 '그 기억'이 아닐까.


엄밀히 말하면, 맛은 기억이 맞다. 신체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이미지가 되고, 여기에 감정 정보가 붙어 하나의 이야기 Episode형태로 뇌에 저장된다. 이를 일화 기억 Episodic Memory이라 한다. 매운맛을 기억하려고 뇌가 캡사이신을 분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른 아침 주방에서 탕탕탕 도마 소리와 함께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적대며 일어나 한 껏 부아가 난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떠 넣으니 그제야 새벽녘부터 분주했을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대뇌 속에 저장된 된장찌개의 '맛'이다. 


어른이 되어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맛보고 '엄마가 끓여주던 찌개 맛이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맛'이 아니라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고 긍정적인 감정과 결합되어 있어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맛집은 엄밀히 말하면, 기억 맛집이다.   


한편 기억은 계속 쌓일 뿐, 당연한 말이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옛 기억을 떠올리기를 반복하는 걸까. 그런데 만약 그 기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행동은 어떻게 바뀔까? 

폰유유서의 시대다. 폰이 음식을 한 술 뜨면 그제야 우리는 식사를 시작한다. 폰에 감각을 위임하고 SNS에 기억을 위탁하니, 감각은 Visual에 한정되고 기억은 Share 함으로써 그 수명을 다한다. '좋아요'가 주는 보상이 '먹어요'가 주는 보상을 초과하면서 오늘날 식당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맛집은 엄밀히 말하면 배경 맛집이다. 


기억 맛집은 축적, 배경 맛집은 축제의 정서다.  


기억 맛집은 간판도 글자도 큼직하다. 투박한 테이블과 적당히 폭신한 의자가 눈에 띄지도 거슬리지도 않는다. 취향과 세월이 버무려져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필요한 것들만 적자생존한 탓에 가게를 나서면 안다.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동네에 자주 찾는 빵집이 있어 가까운 친구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시장 통에 빵집이 있는데 그 집 빵은 속이 편해서 좋더라" 검색해 보니 나만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자신들의 강점이고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한 줄 카피를 만들어 둔 게다. 나는 이곳에서 3년째 매주, 기억을 축적한다. 

'소화 잘되는 빵집'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어느 블로거의 글

배경 맛집은 30분짜리 축제다. 입구부터 흥을 돋워야 하는 법, 간판은 아주 작은 영문으로 여성 키 정도 높이에 달았다. 여기서 사진 찍으라는 말. 모조품이면 어떤가 미드 센츄리 스타일 빈티지 가구에 눈은 즐겁고 몸은 불편해서 회전이 빠르다. 한철 축제에서 회전율은 생명이다.

성수에 위치한 <누데이크>의 입구와 파사드

나는 다시 갈 마음이 없고 가게도 다시 오게 할 생각이 없다. 그럼 어떤가. 달고달고달디단 디저트는 기약 없는 웨이팅도, 응대 대신 하대하는 직원의 선 넘는 태도도 잊게 만드는 도파민 축제다.   


기억 맛집이 될 것인가? 배경 맛집이 될 것인가?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유러피언 배경은 담을 수 있어도 여유로운 기억은 담을 수 없다. 기억 맛집과 배경 맛집을 찾은 손님은 다른 목적으로 입장해서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마음으로 퇴장한다. 아주 다, 르, 다. 식당을 준비한다면 둘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의 피 같은 돈을 투자해서 가게를 차린다면, Day1에 나는 이 질문에 답하고 비용을 쓰기 시작하겠다. "기억될까? 배경 될까?"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는 선택만 집중적으로 쌓아 나가야 퀄리티가 나오지 않겠는가. 주인이 혼란하면 손님은 외면한다.  



TIP

어떤 식당이 될 것인지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 가에 달려 있다. 창업을 할 때 크게 3가지가 필요하다. 장사 밑천, 음식을 만들 전문적 기술, 그리고 잘 팔기 위한 고도의 고객 지향 감각(인테리어, 마케팅과 같은 활동)이다. 모든 항목이 최상위 수준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의 팀이 어디에 가장 강점이 있는지 파악하여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배경 맛집은 신규 브랜드 확대, 기억 맛집은 지역 대표 식당, 프랜차이즈는 복붙 하며 성장한다.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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