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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Jul 03. 2023

오렌지색 지구(부제 Planet Earth 2075)

1화 운명적인 만남.

"늦었다 어서 서둘러라."

"네 알겠어요."

"산소 필터 챙기고."

아침 시간의 분주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아침 시간은 늘 바쁘다.

"엄마 산소 공급기 고장 났어요?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요."

제일 낮은 등급인 지상층 C섹터의 아파트 전체에 자동 공급되는 산소량은 늘 부족하다.그 때문에 매일마다 취침 후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아침 상황에 재원은 짜증이 난다.

"요즘 비상시국이라 산소 공급량을 줄여서 그렇다고 하더라. 우리가 어쩌겠니 참아야지..."

"빌어먹을 놈들 자기들은 빵빵하게 틀어놓고 살면서."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 그 인간들이 지금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노력했다면 이런 세상이 됐겠니? 하기야 그들에겐 어떤 상황이라도  별 차이가 없겠지만 말이다."

재원은 점심 도시락 캡슐을 챙기며 우주인이 입는 것과 비슷한 방호복을 챙겨 입고 부리나케 문을 나선다.

"반찬 캡슐이랑 연막탄도 잘 챙겼지? 조심히 다녀와라. 곰들 조심하고."

"네 알겠어요."

기후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50년 전인 2025년부터 북극의 모든 얼음이 녹아 버리자 대부분의 곰들은 멸종됐지만, 일부 살아남은 곰들은 악화된 환경과 그해 발발한 3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핵 전쟁의 후폭풍으로 변한 극악한 환경 속에서 그리즐리 베어와 북극곰과의 잡종인 그롤라베어 종은 변태와 변이 되면서 자기 동족은 물론 인간에게도 위협적인 괴물같은 존재가 되어 바다조차 거의 사라져버린 사막화된 지구 위의 최고 포식자가 되어버렸다. 재수 없이 그들과 마주칠때 대응한다는 것은 시속 40킬로미터 이상의 빠른 움직임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도망갈 시간을 확보할수 있는 마취 연막탄은 이제 외출시에 필수품이 된 것이다. 50여 년 전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챙기고 외출하듯이...

재원은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클린 룸에서 먼지와 세균,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에어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학교와 번화가가 밀집한 지하 도시로 통하는 게이트 앞에 도달하기까지 3킬로미터 남짓의 거리 안에는 최대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사막화된 지구와  구름 한점 없이 자외선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열이 작렬하는 하늘. 마치 화성처럼 오렌지색으로 변한 지구. 재원은 늘 마주치는 삭막한 지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산소 필터 장치에 가동 버튼을 누르고는 거북이 등짝처럼 말라버린 땅 위를 한 발짝 디뎌본다. 붉은 모래와 먼지가 갑자기 밀가루 포대를 바닥에 터뜨린 것 같이 무릎 위로 퍼진다.

산소 필터는 외부에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정화과정을 거쳐서 산소를 만들어서 머리에 쓴 헬멧에 공급해 주는 1시간짜리 교체 필터다. 그래서 재원은 등교와 하교시에 쓸 두 개의 필터를 가지고 나왔다. 재원이 태어난 시기는 19년 전인 2056년이다. 재원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지구는 전쟁과 기후 악화로 엉망인 상태였기에 익숙한 상황이긴 했어도, 답답한 보호구는 늘 짜증이 났다. 게다가 천국 같은 모습의 오래전 푸른 지구 사진과 영상을 볼 때면 언젠가 다시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지만 입맛은 씁쓸하다. 붉은색 먼지가 풀풀 날리는 거리를 걸어가다가 본능적인 감각으로 발걸음을 멈추며 몸을 수그린다. 대략 50미터쯤 앞에 커다란 몸집에 진회색 털로 덮인 곰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연막탄 사용법을 배우긴 했어도 자신이 직접 써볼 일은 없었기에 꼼짝을 못 하고 서있는 재원이다. 그 이유는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 도시 쪽은 아니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먹이사냥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느릿느릿 재원에게 걸어오는 곰은 붉은 눈빛과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 아래로 점성이 높은 젤리 같은 거품을 길게 늘어뜨리며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재원은 떨리는 손으로 연막탄을 손에 쥐고 안전핀을 뽑을 준비를 하고, 곰을 주시했다.

곰은 잠시 머뭇거리며 재원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속력을 내며 재원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재원이 긴장한 탓에 연막탄을 놓쳐버리고, 곰은 괴성을 지르며 재원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재원의 숨이 가빠 오면서 바닥에 떨어진 연막탄을 더듬거리며 찾고 있었다. 손에 잡힌 연막탄을 잡고서 안전핀을 뽑았을 때 곰은 10여 미터까지 다가왔다.

재원은 있는 힘껏 곰을 향해서 연막탄을 던졌고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섬광이 터지면서 하얀 가루가 곰의 주변에 자욱했다. 그러자 곰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덩치의 곰이 달려오는 것을 잠시 멈추는 것을 확인한 재원은 지하 게이트 쪽으로 있는힘껏 달렸다. 산소 필터는 걷는 기준으로 1시간의 짜리였기에, 달릴 경우에는 30분 정도 빨리 소모된다. 거리상으로 아슬아슬한 상태다. 물론 지하에 위치한 학교 주변에서도 산소 필터를 구매할 수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기에 재원은 전력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곰은 달려오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기에 재원은 계속 뛰었다.

지하 게이트 앞.

재원은 두꺼운 문이 설치된 입구 앞에서 손바닥 인식과 홍채인식을 했다. 문이 열리고 에어커튼을 지나서 에어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쾅!!)

재원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서 외부를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통해서 밖을 보았다. 곰이었다. 곰은 엄청난 힘으로 게이트를 앞발로 쳤지만, 다행히 게이트는 두꺼운 합금으로 만들어졌기에 약간의 휘어짐 말고는 잘 버텨주고 있었다. 곰은 억울했는지 아니면 약이 올랐는지 게이트 밖에서 거품 같은 침을 늘어뜨리며 한동안 울부짖었다. 재원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곰을 쳐다보고 있었다.

<학생 뒤로 돌아서서 빨리 안으로 들어 오세요. 기동대가 진압하러 출동할 겁니다>

스피커에서 재원에게 안내 방송을 했다.

재원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면서 환복을 하고 진입통로를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지하 도시.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밝은 분위기다. 게다가 지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꽃향기도 은은하게 퍼졌다. 공무원들이나 관료들은 나랏일을 한답시고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된 지하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게다가 돈 많은 부자들까지 꼽사리 껴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기생하는 경제적 기득권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우위를 선점하는 것은 당연한 세상 이치였다.

"오늘은 아슬아슬하게 지각은 면했네?"

교문 앞에서 출입을 관리하는 경비병이 놀리듯이 인사를 건넨다.

"아저씨가 아까 그런 상황이었어도 그런 농담이 나오는지 궁금하네요."

재원은 홍채인식을 하면서 쏘아붙이듯이 말을 받아치며 걸음을 재촉한다.

"참내 계집애가 한 번을 안 지네. 애송이한테도 당하다니 멍청한 곰 새끼 같으니라구."

당차게 맞받아치며 돌아서는 재원을 보며 경비병이 툴툴거린다.

오후 남녀공학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자자 모두들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라."

담임선생님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 시킨다. 학생들은 평일에 늘상하는 일반적인 종례지만 오늘따라 선생님에게 풍기는 왠지 모를 낯선 표정에 긴장을 하며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오늘부터 진압 기동대 지원 신청을 받는다."

선생님의 선전포고와도 같은 갑작스러운 발표에 모두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원자에겐 무슨 혜택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기동대는 차출이거나 제비뽑기로 선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못 참는 성격인 재원은 손을 번쩍 들어서 질문을 한다.

"물론 특혜는 있다."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매달 무료로 산소 필터를 지급하고, 가정에도 산소 공급 시간을 네 시간 추가로 공급한다."

선생님의 자신 있는 어투에 재원은 양팔을 들어서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시큰둥하게 덧붙인다.

"설마.. 그게 다는 아니겠죠?"

선생님은 콧바람을 내쉬며 팔짱을 낀 채 재원을 노려보며 말한다.

"넌 뭘 더 바라는 거니...?"

"정말 그게 전부라는 건가요? 지원자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고된 훈련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재원의 다부지면서도 힘 있는 항변이 먹인 것인지 선생님은 인심을 쓰는 듯이 대답을 해준다.

"그래 물론이지 더 있긴 하지... 특히 너처럼 말괄량이 여자애들을 더욱 필요로 하는 곳이니 어련하겠니."

선생님의 날선 한방에 주변 친구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추가적인 조건으로는 급여와 섹터 A 지역 프리 패스 특혜가 주어진다. 물론 급여는 협의가 가능한 사항이고..."

"그럼 저 지원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번쩍 든 재원의 모습에 선생님은 물론 같은 반 친구들은 순간 와하는 소리와 함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음... 용기는 가상하다만 아직은 안된다."

"왜요? 지원자 뽑는다면서요!"

"알면서 그러니! 부모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말로 네 뜻이 그러하다면 시간을 갖고 부모님과 상의 후에 오렴.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 알겠니? 자... 또 다른 사람은? 지원자 더 없니?"

몇몇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듯하였으나, 혹독한 훈련과 위험한 임무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뜻 자신 있게 지원하는 친구는 없었다. 선생님이 종례를 마치려는 순간 뒷자리에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고아도 받아주나요?"

평소 까칠한 성격과 항상 싸움질을 일삼기에 문제아로 찍힌 한 녀석의 돌발 질문에 선생님도 눈이 동그래진 상태로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대답한다.

"어? 어.... 그래... 글쎄다. 한번 알아보마."

재원은 고개를 돌려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시체같이 핏기 없는 창백하고도 하얀 얼굴에 흰색에 가까운 은빛 머릿결이 한쪽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 그리고 반항심으로 가득 찬 치켜뜬 눈동자는 짙푸른 코발트빛 눈동자였다. 살기가 느껴지는 얼굴빛 이었지만, 나름대로 몇몇 여자애들 간에는 인기가 있는 그런 녀석이 재원은 못마땅 했다. 게다가 같이 지원하는 동기가 된다니 재원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아.. 재수 없어!"

일과를 마친 재원은 집으로 가기 위해 커다랗고 둥근 빛의 공원을 지날 때였다.

누군가 재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은발의 그 녀석이었다. 재원은 놀라움 반 짜증반으로 녀석을 째려보았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넘어질 뻔했잖아!"

재원의 쏘아붙임에 녀석은 예상했다는 듯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꾸한다.

"너 정말 지원할 거냐?"

"왜 무슨 상관인데... 비켜."

녀석은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답해주면 비켜줄게."

"그래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래? 음... 근데 넌 왜 이렇게 쌀쌀맞냐? 내가 널 괴롭히기라도 했냐?"

"왜 그런지 말해줘?"

"그래!"

"난 너 같은 종류의 인간을 싫어해."

"나 같은 종류가 어떤 건데?"

"아 좀 그냥... 그냥 싫다고! 됐냐?"

"기집애 승질머리 하고는...나도 됐거든. 그저 지원한다니까 물어보고 싶었던 거야. 아 참 그리고 이거 받아라."

녀석의 손에는 산소필터가 있었다.그것도 꽃향기가 첨가된 고급이었다.

"오늘 등교할 때 다 쓰지 않았어? 있어도 가져가 넌 지역이 지상층인 C섹터라 가는 길에 무슨 일이 또 생길지 모르잖아."

재원은 녀석의 손에든 산소필터를 뿌리치며 지나친다.

"됐다 됐어."

"그러지 말고 가져가. 남아서 주는 거야. 매일 달라고 하지나 마라."

녀석은 재원의 손을 잡고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준다.

"참내 어이가 없어서... 뭐라는 거니?"

"그리고 내 이름은 율이야. 또 보자 동기!"

녀석은 반짝이는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재원에게 손을 흔들다가 이내 돌아서서 뛰어갔다.

"웃기는 자식이네.. 뭐? 율? 유리? 뭐야 이름하곤.. 쯧쯧."

재원은 뒤돌아서 뛰어가는 녀석을 잠시 힐끔 쳐다본 후 집으로 가기 위해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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